[랜드마크vs랜드마크] 유혹하는 쇼핑 공간…더현대 서울과 일본 커낼시티
입력
수정
지면A33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탄광촌 석탄 더미의 차이는? 높은 삼각뿔 모양은 같다. 하지만 보통은 석탄 더미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피라미드는 대단하다고, 보고 싶다고 할 것이다. 비슷한 모양이라도 형태 뒤에 감춰진 의미가 미적 판단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삶의 궤적을 담은 건축
2021년 서울 여의도에 지어진 더현대백화점(더현대서울)은 겉으로 보기에 상자 형태인 일반적 백화점 건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탁 트인 실내 옥상 광장이 시야를 압도한다. 천장은 가벼운 방패연 모양 구조체로, 하늘의 빛을 건물로 투사해낸다. 그리고 각층 바닥에 뚫려 있는 7개의 커다란 오픈 스페이스가 건물을 1층까지 수직으로 연결된 듯 보이게 한다. 더현대 서울의 공간은 일반적인 상점 모습의 공식을 깨며 개방된 공간의 참신한 의미를 부여했다. 외부 세계와 차단돼 상품들로 가득한 상점이 아니다. 상품을 고르고 느끼면서 아이쇼핑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어 사람들에게 경험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디자인이다.상품 중심의 백화점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쇼핑문화의 변화를 일으킨 건축가가 있다. 197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축가 존 저드다. 그는 최대한의 면적에 최대한의 상점을 넣는 꽉 짜인 백화점 설계에서 ‘찐빵의 앙꼬’처럼 무언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쇼핑이라는 행위의 즐거움이다.
저드의 아이디어는 1985년 완공된 미국 샌디에이고의 호튼플라자에서 처음 실행됐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도록, 건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개방된 통로와 경사로를 설계했다. ‘성인이 안전하게 길을 잃는 것’의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운 쇼핑 경험을 만들어주고자 했다. 첫해 방문객 수가 예상한 900만 명을 훌쩍 넘는 3000만 명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그 후 일본 하카타의 커낼시티와 오사카의 난바 백화점, 롯폰기힐스 등에서도 그는 쇼핑센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저드는 쇼핑센터 뒤에 감춰진 경험의 의미를 살리는 디자인을 했다. 그가 젊은 시절 여행한 이탈리아에서 사람들이 아무 목적 없이 길거리를 거닐며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떠드는 모습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했고, 쇼핑이 그 결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깨달았다. 건축물의 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건축가와 달리 사람들의 움직임과 모임 등 삶의 궤적을 건축에 담으려는 그의 노력은 성공을 거뒀다.
쇼핑 욕구에 대응하는 공간
서울 여의도 파크원의 백화점은 2008년 리처드 로저스가 처음 디자인할 당시 이런 쇼핑 트렌드에 맞춰 고층 건물 사이를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쇼핑할 수 있는 몰로 계획됐다.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상점을 자유롭게 배열한 공간이다. 전체적 일관성보다 개별적 특성을 두드러지게 해 사용자의 기호에 맞추는 방식이다. 그러나 개별성보다 중앙집중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호와 임대 편의성을 위해 대형 임차인으로 백화점을 유치하게 됐다. 그 결과 더현대 서울은 몰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백화점으로 선보이게 됐다.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만남과 경험을 중시하는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며 폐쇄된 쇼핑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 구조인 더현대서울이 사람들에게 더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피라미드의 거대한 삼각뿔 모양이 그 내면에 가진 의미를 발휘할 때 매력적이듯, 백화점도 쇼핑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과 건축물이 하나로 통합될 때 성공이라는 결실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의 물결이 거세지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 쇼핑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어떻게 표현될지, 그리고 그에 따라 건축적 결과물이 어떤 모습으로 대응할지 궁금해진다. 2023년 완공된 일본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가 하나의 모델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