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에 맞서 조그만 이야기 계속 내놓겠다는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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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김성태의 탐나는 책여기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라고 말하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의 이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어느 가족>에서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좀도둑질을 하며 한집에서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6년간 키웠던 아이가 산부인과에서 뒤바뀐 아이인 것을 알게 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2021, 바다출판사)
조그만, 그래서 소중한 이야기
나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에게 묻는다. ‘냉기와 온기가 흐르는 건 좀도둑 가족뿐일까? 쥔 것을 빼앗는 건 도둑뿐일까?’ ‘피보다 진한 건 함께 나눈 숨 아닌가? 아니, 품어 안은 시간 아닌가?’ 그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본 후, 내가 메모장에 남긴 한 줄 평은 이렇다. ‘버리려 애써도 버리려 애써도 끊어지지 가족이란 무엇인가.’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괴물> 속 주인공 ‘미나토’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괴물>은 아들 미나토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 엄마, 결백을 호소하는 담임선생님,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하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까지, 같은 서사를 다른 시선으로 보여준다.
▶▶▶(과거 인터뷰) 고레에다 감독 "작은 마을의 작은 사건으로 인간의 단절 그렸죠"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학교란…"모두가 누군가의 괴물이다"
나는 <괴물>을 보고 각자의 단면과 양면을 생각하며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 누가 괴물이고 괴물이 아닌가? 오해가 이해가 되는 길은 있는가?’ 사람의 눈이 몸의 뒷면에는 없어서일까. 사람은 양면을 보지 못하고 단면만 보는 착오를 범한다.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마음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읽지 못하는 편견이 괴물 아닐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관찰자이자 관객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내가 방관자이자 괴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레에다 감독은 작은 이야기를 하며 큰 질문을 낳는다. 그의 영화와 각본, 소설은 ‘좋은 예술 작품’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만든다. 어떤 예술 작품은 작은 이야기를 그리면서 큰 질문을 던지며 좋은 예술 작품이 된다. 거대한 욕망이 아니라 조그만 희망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게 한다. 이를테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네 아이의 이야기(<아무도 모른다>)는 이런 질문을 남긴다. ‘나는 어떤 이웃인가? 부모란 무엇인가? 분노와 불신이 가득한 사회는 누가 만드는가?’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 ‘림보’에서 망자들이 일주일간 머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이야기(<원더풀 라이프>)는 이런 질문을 남긴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등지고 앞만 보며 살고 있지 않은가? 소중한 것들이 풍화해 사라지지 않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길 바라는 삶을 살고, 어떻게 떠나야 할까?’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되돌아보다 그가 쓴 에세이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다시 펼쳤다. 오래전 내가 밑줄 그은 문장은 이것이다. “스스로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의식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깨닫게 되는 건 슬퍼하는 것보다 분노하는 게 더 강할 수 있고, 답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다, 확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책에서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 자세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선거철이다. 유세차 확성기에서 선거 송이 울려 퍼진다. 벽보와 현수막에 걸린 공약과 구호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눈과 귀를 강타하지 않는 작은 이야기를 생각한다. 무릎을 굽히고 들어야 들리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조그만 서사는 우리가 잊고 있는 외각의 서사다. 그런 서사에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껴있는 존재들, 인생에서 방치한 순간들, 가족이나 우정 같은 것들이 있다. ‘누가 옳고 바른가’를 따지는 것을 넘어 ‘무엇이 옳고 중요한가’를 살펴야 할 때다. 조그만, 그러나, 그래서 소중한 이야기가 우렁차게 퍼지길 바라며. /김성태 김영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