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에 맞서 조그만 이야기 계속 내놓겠다는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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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김성태의 탐나는 책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2021, 바다출판사)
조그만, 그래서 소중한 이야기
나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에게 묻는다. ‘냉기와 온기가 흐르는 건 좀도둑 가족뿐일까? 쥔 것을 빼앗는 건 도둑뿐일까?’ ‘피보다 진한 건 함께 나눈 숨 아닌가? 아니, 품어 안은 시간 아닌가?’ 그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본 후, 내가 메모장에 남긴 한 줄 평은 이렇다. ‘버리려 애써도 버리려 애써도 끊어지지 가족이란 무엇인가.’
▶▶▶(과거 인터뷰) 고레에다 감독 "작은 마을의 작은 사건으로 인간의 단절 그렸죠"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학교란…"모두가 누군가의 괴물이다"
나는 <괴물>을 보고 각자의 단면과 양면을 생각하며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 누가 괴물이고 괴물이 아닌가? 오해가 이해가 되는 길은 있는가?’ 사람의 눈이 몸의 뒷면에는 없어서일까. 사람은 양면을 보지 못하고 단면만 보는 착오를 범한다.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마음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읽지 못하는 편견이 괴물 아닐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관찰자이자 관객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내가 방관자이자 괴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 ‘림보’에서 망자들이 일주일간 머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이야기(<원더풀 라이프>)는 이런 질문을 남긴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등지고 앞만 보며 살고 있지 않은가? 소중한 것들이 풍화해 사라지지 않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길 바라는 삶을 살고, 어떻게 떠나야 할까?’
선거철이다. 유세차 확성기에서 선거 송이 울려 퍼진다. 벽보와 현수막에 걸린 공약과 구호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눈과 귀를 강타하지 않는 작은 이야기를 생각한다. 무릎을 굽히고 들어야 들리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조그만 서사는 우리가 잊고 있는 외각의 서사다. 그런 서사에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껴있는 존재들, 인생에서 방치한 순간들, 가족이나 우정 같은 것들이 있다. ‘누가 옳고 바른가’를 따지는 것을 넘어 ‘무엇이 옳고 중요한가’를 살펴야 할 때다. 조그만, 그러나, 그래서 소중한 이야기가 우렁차게 퍼지길 바라며. /김성태 김영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