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만들던 회사의 반전…日 제치고 세계 '1위' 넘본다 [최형창의 中企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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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 고무신 만들던 회사벼를 수확하는 대형 농기계 콤바인, 시내 공사에 쓰이는 도시형 굴착기. 용도는 다르지만 이 중장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강철(스틸)트랙 대신 고무(러버)트랙을 바퀴로 사용한다. 스틸트랙에 비해 저소음과 저충격으로 노면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장에서는 고무를 주재료로 한 러버트랙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이젠 러버트랙 세계 1위 '눈앞'
고무벨트 분야 독보적인 동일고무벨트
고무 활용한 지진 최소화 제품까지 진출
KAIST 손잡고 AI·VR스케칭 센터 열어
80년 전통의 동일고무벨트는 러버트랙 분야 세계 1위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 1위 건설기계 제조기업 캐터필러, 글로벌 1위 농기계 브랜드 존디어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인정을 받고 있어서다. 이 회사는 미국 조지아주에 필드 시험장을 갖출 정도로 북미 지역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이윤환 동일고무벨트 대표는 지난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글로벌 2위 수준이지만 혁신 경영으로 조금 더 노력하면 일본 회사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며 “올해 말 베트남 공장 증설이 끝나면 수요를 맞출 수 있어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동일고무벨트는 1945년 부산에서 고무신과 전기절연 면테이프를 제조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3선을 지낸 김세연 전 의원의 조부인 김도근 회장이 창업했다. 3세 경영인인 김 전 의원은 전략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동일고무벨트의 시작은 소비재였지만 미래성장성을 본 창업주는 산업용 고무벨트 제조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차량용 벨트와 웨더스트립(빗물, 먼지 유입을 막는 고무 부품), 1980년대에는 러버트랙 등 고무로 만들 수 있는 제품군을 계속해서 넓혀나갔다. 심지어 고무를 활용해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는 ‘면진시스템’을 개발해 토목·건축 분야까지 진출했다.
80년 ‘고무 외길’은 동일고무벨트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원동력이다. 이 대표는 “고무는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물성이 달라지는데 컨베이어벨트용 고무를 만드는 데에만 우리가 보유한 배합방식이 200개 이상”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빼어난 기술력 덕분에 포스코 제철소, 쌍용C&E 시멘트 공장 등에서 동일고무벨트의 컨베이어벨트가 매일 1500도 안팎의 고온을 견디며 산업 현장을 지키고 있다.동일고무벨트는 지난달 KAIST와 손잡고 DRB-KAIST 스케치더퓨처 연구센터를 열었다. 가상현실 몰입공간에서 사람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즉시 3차원 스케칭으로 시각화하면 인공지능(AI)이 이를 토대로 구체화해 실물을 제작하지 않고도 반복적으로 문제점을 수정해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동일고무벨트는 신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센터 설립에 약 50억원을 투자했다. 중견기업으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동일고무벨트는 지난해 매출 3577억원, 영업이익은 136억원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 대비 8% 줄었지만 원가 절감 등의 효과로 영업이익은 69% 늘었다. 로봇 사업을 하는 DRB오토메이션 등 5개 계열사 전체 매출은 약 7300억원이다. 1987년 입사한 이 대표는 2020년부터 대표를 맡아 동일고무벨트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80년을 넘어 100년 이상 이어갈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개척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부산=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