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색 살린 ‘1+1 ESG 프레임워크’…생태문명·농촌진흥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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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유럽과 미국의 ESG 정책을 주시하며 조용히 자국에 필요한 ESG 평가와 공시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2026년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태양광과 풍력, 수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보급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며 내실을 쌓고 있다[한경ESG] 이슈중국은 2020년 9월 국가 ‘쌍탄소(双碳)’ 목표와 공동 번영 전략을 선포했다. 2030년 탄소배출량이 정점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이후 이를 감소시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주요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주목하고 리스크 관리와 대응 역량을 높이는 이유다.유럽연합(EU)과 미국은 그간 ESG 관련 기준을 주도해왔다. 중국은 ESG를 자국을 우회적으로 배제하는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많은 서방국가가 중국을 기후 위기 책임이 큰 국가로 지목하거나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 기반을 둔 데이터 포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1750년부터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미국과 유럽에 이어 중국이 세 번째다.
중국 배제 전략으로 인식해 적극 대응
이에 중국은 2021년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를 제창한 이래 ESG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목표로 개발도상국과 대외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빈곤 감소, 식량안보, 방역·백신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국가와 개발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존에 추진해온 동반자 관계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중국이 개발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환영하면서도 글로벌 개발 협력 논의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중국만의 독특한 ESG 정책이 ‘1+1 ESG 프레임워크’다. 앞서 중국은 지난 2월 EU와 미국,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에 이어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나라의 대열에 합류했다. 2026년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얼핏 전 세계적 ESG 흐름에 편승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자국만의 특색 있는 기준을 준비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ESG 시장을 주도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6월에 발표한 중국 기업의 ESG 경영 정보공개 지침을 담은 ‘기업 ESG 공개 가이드라인(CN-ESG)’이 있다. CN-ESG는 3개 영역, 10개 범주, 118개 세부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K-ESG 가이드라인이 61개 진단 항목을 갖췄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보다 더 상세한 지표를 지닌 셈이다.
나아가 중국은 이러한 정보공개 지표를 토대로 정부와 기업이 양방향으로 ESG를 급속도로 발전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CN-ESG는 ‘1+1 ESG 프레임워크’로 구성된다. ‘1’은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 등 국제적 ESG 지표와 지침을 말한다. ‘+1‘은 중국 정책 지침과 시장 수요 변화에 따라 중국만의 여건과 전략을 고려한 특색 있는 ESG 지표를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중국만의 여건을 ESG에 통합
이를테면, 환경과 관련해 EU와 미국이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의 기후 행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중국은 초기 국가의 광범위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다루는 식이다.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물질적 번영을 넘어 정신적 풍요의 가치를 전파하는 ‘생태 문명(生態文明)의 사고방식으로 환경문제에 접근한다. 중국은 ’건설‘을 중요한 전략적 이슈로 보며, 기업의 녹색혁신, 오염방지, 에너지절약 및 배출 감축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를 생태학적 공동 건설을 위한 설계라는 관점으로 만들었다.
사회 부문은 공동체와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EU나 미국과 달리 빈곤 완화, 농촌 활성화, 공동 번영, 농업개발, 재해 구호 등 국가 거시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이 지역사회의 잠재적 위험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수행해야 하며, 공공 위기 대응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사회주의국가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지배구조 부문도 독특하다. 시장 선택 메커니즘, 기업의 자발적 행동을 강조하는 서구와 달리 중국은 국영기업이나 중앙기업 등이 존재하는 사회주의 시스템을 고려해 공통 주제를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부패 방지, 뇌물수수 방지, 불공정 경쟁 방지 등의 조항이 대표적이다. 상장기업에도 부패 및 뇌물수수 방지 리스크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권고한다.산업별 ESG 요소에서도 중국만의 특색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서비스) 산업은 일반적으로 에너지 관리, 고객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보호, 다양성 및 포용성 등이 핵심 관리 이슈에 포함된다. 그러나 중국은 여기에 더해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경영, 미성년자 보호 및 중독 방지, 지식재산권과 특허 보호, 인터넷 안전관리, 콘텐츠 표준화 등을 관리 이슈로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자체적인 사회적·문화적 여건을 ESG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EU와 미국의 ESG 정책만 봐왔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데다 글로벌 공급망 관점에서도 중국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상호 보완적 동반자 관계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ESG 정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기본적으로 중국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韬光养晦)‘ 정신으로 ESG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적 ESG 열풍을 주시하다 마치 근육을 키운 판다가 숲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준비된 모습으로 ESG 영역에서도 등장할 것이다. 이에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국의 ESG 평가, 공시 체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정혜섭 지속가능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