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의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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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자람의 소리지금 이 칼럼을 쓰는 시점은 2024년의 첫 판소리 <노인과 바다> 공연을 무사히 마친 바로 다음 날 오후이다. 이 시간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는 소리꾼이며, 스스로 만든 2시간 넘는 판소리 <노인과 바다> 공연 다음날에 이렇게 사지가 적당히 멀쩡한 기분이 드는 것이 작품 탄생 후 5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 칼럼에서는 판소리가 소리꾼들에게 건네는 신체 부담, 흔히 직업병이라고 말하는 신체 소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전통 판소리꾼들의 극한의 훈련법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무수히 들어왔다. (그에 관해서라면 칼럼2-▶▶▶“진짜로 똥물 먹나요?”편을 참고하시라.) 한데 그렇게 얻은 놀라운 성음에 대한 이야기, 그 이후의 서사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 후에 소리꾼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았던가? 사랑받는 많은 이야기의 끝이 주인공의 승리나 성취에서 끝나지만 실상 그 이후 그들이 꾸려가는 삶이 더욱 어렵고 궁금하다. 예를 들어, 액션 영화 속 주인공들을 떠올려 보자면, 승리를 위해 주인공들이 그토록 고생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겪은 신체 부상과 통증들은 과연 그들을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는 해피 엔딩으로 내버려뒀을까? 3년 전, 이제는 은퇴하신 창극단원 선생님께서 연습실을 왔다 갔다 하는 필자를 불러 집에서 잘라 온 생 무를 건네주셨다. “몸에 좋아, 씹어 먹어.” 그러고는 툭 던지듯 하신 말씀이 “나 아는 어떤 소리 공부하는 지방 사람이 소리를 하도 지르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그대로 죽었댜. 긍께 소리꾼 덜언 항시 건강 조심해야혀.” 그때 그 다디단 생 무를 받아 아삭아삭 먹으며 ‘혈압이 확 오른다고 그렇게 바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다가 바쁜 현장 음악 연습 진행으로 금세 잊고 지냈다.
작년, 소리의 고장으로 이름난 지역에서 <노인과 바다>가 공연을 했다. 연초에 그 소식을 듣고 ‘과연 소리의 고장 관객들은 대체 얼마나 재미지게 공연을 보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근 반년을 기다렸던 공연이었다. 기대하고 기다리던 시간들이 훅 지나가 그 무대에 섰을 때, 필자는 참 주책맞게도 이 큰 기대감을 관객에게 발설해 버리고 말았다. “오래 기다렸던 무대입니다. 오늘 귀명창 분들이 던져주실 취임새가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몰라요.”와 같은 내용의 인사말을 말이다. 이 말이 관객 개개인에게 각자 다르게 줄 부담을 생각하지 못했다. 귀명창이라 할 수 있는 소리를 좀 배운 관객들은 자신들이 귀명창이어야 할 부담을 느꼈을 것이고, 가뜩이나 취임새를 던지는 것이 낯설고 부끄러운 관객들은 주변에 있을 귀명창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 - 무대 위의 사람이 있을 것이라 말해버린 그 존재 - 에게 혹여 책 잡힐까 더더욱 움츠려 들었을 것이다. 이유야 정말 여러 가지 였을 것이다. 공연은 시작되었고, 초반 10분 동안 그야말로 나는 진땀을 뺐다. 예상했던 ‘자유롭고 열렬한 반응’이 아니라 너무도 조용하고 긴장된 10분을 보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이 딱딱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관객은 못 느꼈을 수도 있을 테지만 이 공연을 5년간 해오는 내 몸은 안다. ‘오늘의 관객은 아주 조용하다. 나는 이 공기의 무게를 잘 들어 올리며 진행해야 한다.’ <노인과 바다> 공연은 총 140분이 소요되는 공연이다. 나는 그날, 140분 동안 그 조용한 분위기를 깨어보려 평소의 두 배가량의 에너지를 사용했고, 그로 인해 평소보다 전반적인 음의 높이가 높아졌다. 평소에도 무대 위에서 키(Key)가 올라가면 머리로 오는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늘 조심하곤 했었는데, 이날은 그런 조심을 할 겨를도 없이 음은 높아지고 나는 그 높은 음과 뻑뻑한 공기를 이겨내려 커다란 힘을 써 배의 압력을 최대치로 높여 버리고 말았다. 말 그대로 기를 쓰며 죽기 살기로 공연을 하고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공연의 표면은 내용이나 기술 면에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완주했다. 허나 그날 이후 내 몸은 지속적인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어지럼증이 좀 심해졌구나, 생각했다. 이전 작품의 투어로 인해 생긴 오른쪽 이명과 난청, 어지럼증은 늘 몸이 피로하거나 힘을 많이 쓴 공연 직후에 증세가 더 심해졌다가 돌아오곤 했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수상 하게도 심장 주변의 근육 통증이 있었다. 이 통증은 공연 직후 간헐적으로 있던 경미한 통증이었는데 위의 공연 이후로 통증이 찾아오는 간격도 좁아졌고 강도도 꽤 세었으며, 무엇보다 지속적 이었다. 뭔가 세한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다시 <노인과 바다>를 올리는 공연 날, 분장실에서 나의 안색을 살핀 동료가 나의 증상을 물었고, “심장 주변이 자꾸 뭐에 찔리는것처럼 욱신거려요.” 라는 말을 듣고는 본인이 치료를 받는 내장기 도수치료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증세를 들은 도수치료사는 “어? 그건 뇌압이 올라갔다는 신호에요. 내가 그리로 갈게요.” 라 답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와 공연 직전 나의 온몸을 차분히 만져 경추 뒤에 잔뜩 뭉쳐있던 근육과 여러 순환계의 흐름을 다시금 원활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필자는 판소리라는 예술이 소리꾼의 신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사유를 시작했다. 하마터면 마비가 오거나 혹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커져, 한동안 판소리를 그만해야 하나 생각했다. 판소리 특유의 복압으로부터 질러내는 깊이감 있는 소리가 마치 차력쇼처럼 징그럽게 느껴졌고, 조선시대에도 소리꾼들이 이런 통증을 겪었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조선시대 이후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사그라드는 바람에 소리꾼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예적인 측면을 강화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인간문화재 송순섭 선생님은 1980년에 <흥보가> 완창을 무대에 올렸다가 관객 반응이 너무 좋아서 그 해 총 네 차례의 <흥보가> 완창을 강행했다가 왼쪽 전신에 마비가 오셨다고 했다. 또 현재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신 한 명창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처럼 미련하게 소리 많이 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신다고 한다. ‘완창’ 이라는 장시간의 판소리 공연 형태는 1960년대에 박동진 선생님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된 이후 판소리꾼들의 통과 의례와 같은 수련 방식이 되었다. 박동진 선생님이 유행시킨 ‘완창’은 1960~70년대 판소리에 대한 대중의 꺼져가는 관심의 불씨를 다시금 지피는데 커다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소리꾼들에게 장시간 무대 위에서 소리 하는 위험한 일을 당연시하게 만들기도 한 셈이다.그리고 필자는 5바탕의 전통 판소리 완창을 모두 경험 하고, 2시간 30분 짜리 창작 판소리 들을 만들어 온 세계를 다니며 공연을 강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세 번이나 이런 신체 위기를 겪고 나니(첫 번째는 8시간 완창 직후이며, 나머지 한 번은 <억척가>때이다.) 앞으로 무대 위에서 무사히 공연 해내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나는 이 사랑하는 예술을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간안에 멈출 수밖에 없게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2023년을 힘겹게 보낸 후, 바로 어제가 2024년의 첫 장시간 공연이었다. 오랜만의 공연인 데다가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바다 가까운 지역에서의 공연이었다. 관객은 대극장 2층까지 가득했으니 참으로 흥분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연 전날 갑자기 목 근육에 심각한 담이 찾아왔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공연 당일 인대 강화 주사며 근육이완제며 진통제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통증을 완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덕에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소리 하기 좋은 청(key)을 유지하며 공연을 진행했다. 근육의 통증이 나를 흥분하지 못하도록 제어해 줬고 그 때문에 음이 높이 올라가지 않은 채 2시간 30분 정도의 공연이 끝났다. 하도 여유를 부리며 너스레를 떨다 보니 평소보다 10분이나 늘어난 공연을 하고 내려왔다.
물론 공연 직후의 몸은 여느 때처럼 천근만근이었으나, 평소였다면 몸에 열이 올라 밤새 설쳤을 잠을 오늘 아침에는 달게 푹 자고 눈을 떴다. 공연 다음 날인 오늘이면 당연히 비가 내리듯 무거웠을 등짝도, 발바닥의 통증도 거의 없이 일상과 비슷한 몸의 컨디션이다. 아…… 이는 정말 놀랍고 반가운 발견이다. 어제의 공연은 여느 때보다도 관객과 다정하게 에너지를 주고받았으니, 음을 높여 큰 힘을 쓰며 공연하지 않더라도 작품은 관객과 얼마든지 훌륭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어두웠던 나의 판소리꾼으로서의 미래에 한줄기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다. 오늘도 이명, 뇌압, 등짝에 종종 찾아오는 담, 사지가 너덜거리는 듯한 신체 피로를 느끼며 판소리 공연을 하고 있을 소리꾼 동료들에게 또 한 번의 응원과 마음을 보낸다.
우리, 그 자체로 충분한 예술을 지니고 있으니 부디 몸 건강히, 되도록 오랫동안 행복하게 관객을 만나자고.
그렇게 높은 음이 꼭 필요한 것도, 놀라울 만큼의 커다란 성량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 우리의 몸이 허락하는 선 안에서 마음껏 이 소리를 가꿔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