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는 자신도 모르게 꼬박 50~60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arte] 오범조•오경은의 그림으로 보는 의학코드

쿠사마 야요이
아동기 트라우마, 신경증, 그리고 치유 방편으로써의 폴카닷
[도판 1] 쿠사마 야요이, <호박(Kabocha)>, 나오시마 베세네 하우스 미술관 입구의 공공조각
"나는 고통, 공포, 불안과 매일 싸운다. 그리고 내 질환을 경감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예술을 창작하는 것이다. 예술의 가닥을 따라가던 중 내가 살 길을 발견하였다.”
- 쿠사마 야요이

이번 컬럼에서는 자신이 겪는 신경증적 증상을 탐구하여 그 원인을 고찰하고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작업하는 동시대 작가를 다뤄보고자 한다. 그 대상은 우리에게 폴카닷(polka dot) 무늬의 호박 조각으로 익숙한 인물, 쿠사마 야요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닌 정신질환 관련 증상과 그것이 작품에 미친 영향을 공적으로 알린 소수의 예술가 중 하나이다.

흥미로운 점은 쿠사마의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을 매료시킨다는 점이다. 쿠사마의 작품은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전시 때마다 인파 관리가 필요할만큼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든다. 2013년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 전시땐 관람객이 몰려 이례적으로 관객 당 감상시간을 45초로 한정해야 했고, 2012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의 전시의 1년치 티켓이 예매 시작 몇 분만에 매진되었으며, 로스앤젤레스 브로드 미술관에서 열린 2018년 전시에 첫날 하루에만도 9만개 표가 팔리는 등 쿠사마는 대단한 인기와 명성을 누리고 있다.
[도판 2] 쿠사마 야요이 <무한 거울방(Infinity Mirrored Room) – 수백만 광년 너머의 영혼(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 2013. 287.7 × 415.3 × 415.3 cm. 뉴욕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 © Yayoi Kusama
아마도 대중은 쿠사마 작품의 밝은 색과 반복된 단순한 패턴에 일차로 시선이 가고 그 후 이 반복적 형식이 강박이나 불안과 관련있음을 알게 되며 그것을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심리적 애착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쿠사마의 신경증적 증상은 대중의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고 그 정도가 가볍지 않다. 쿠사마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겪은 심리적 고통, 공황 발작, 환청과 환시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해왔고 수차례의 자살 시도 경험이 있음을 알렸을 뿐 아니라 1977년 도쿄 세이와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래 오늘날까지 퇴원하지 않은 상태다. 보통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입원 기간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하여 추이를 지켜보다 필요시 재입원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40년이 넘도록 장기 입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겠다.

그렇다면 쿠사마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상, 질환,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또한 그것은 어떤 배경에서 나타나게 되었을까?
[도판 3] 어린 시절 부모님, 언니 오빠들과 찍은 가족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아티스트 본인이다.
쿠사마는 1929년 일본의 마츠모토라는 소도시에서 종묘원을 경영하는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쿠사마의 자서전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가한 사람이다.[1] 어머니는 어린 쿠사마에게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아버지를 미행하고 자신에게 보고하게 시켰는데 이것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고 적었다.

7살부터는 제비꽃, 호박, 개 등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환청과 꽃에 사람 같은 얼굴이 있거나 주변 사물에 환하게 불이 켜지는 등의 환시를 보기 시작했고 한다. 이는 조현병(schizophrenia)의 증상으로 의심되는 지점이다.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리웠던 조현병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에 시작하여 만성적 경과를 보이는 정신적으로 혼란된 상태로,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능력의 약화를 유발하는 뇌 질환을 말한다.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뇌의 기질적 이상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2]

쿠사마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내가 본 것을 그렸다. […] 본 것을 기록하는 것은 발생한 에피소드의 쇼크와 공포를 경감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이것이 내 회화의 근본이다.”라 밝힌다. 보고 들은 기묘한 것을 기록하고자 낙서에 몰두하는 어린 쿠사마를 위해 아버지가 물감, 붓 등 재료를 사주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여성은 얌전히 커서 결혼하고 가정주부가 되어야지 화가가 되어선 안된다고 꾸짖으며 쿠사마의 그림을 찢어버리곤 했다. 아동기의 쿠사마에게 정서적인 학대로 작용했을만한 부양자의 폭력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쿠사마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 공장에 차출되어 일했는데 낮에 고된 노동을 해도 집에 돌아오면 밤에도 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948년 전쟁이 종료되고 쿠사마는 교토시립예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전통적 교습 방식과 니혼가(일본화)만을 고집하는 커리큘럼에 강한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다른 한편 부모가 자신을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정략결혼을 시키려 하여 심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쿠사마는 자신의 20대를 회고하며 신경쇠약증에 수없이 시달린 시기였고 “나는 점점 이인증(depersonalization, 자기 지각에 이상이 생겨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상태)의 커튼에 포위당한 듯 했다”고 말한다. 앞서 쿠사마의 성장과정을 볼 때 정신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지만, 이러한 표현을 하는 시기는 조현병의 증상이 서서히 발현되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고 추측하게 된다. 조현병 환자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설득이 불가능한 망상에 시달리는 일이 잦은데, 청년기의 갑작스런 변화들과 맞물려 증상이 더 심해지게 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작품활동에 몰두하여 1952년 첫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이 전시가 마츠모토시의 신슈대학 의학대학 정신과 교수인 니시마루 시호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업을 분석하여 정신병학 학회에서 “조현병 경향성을 가진 천재 여성 아티스트”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쿠사마에게서 조현병 증상은 매우 명확히 드러났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니시마루는 쿠사마에게 신경증이 악화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 조언했다고 쿠사마는 적고 있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1955년 미국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화집을 보고 매료된 쿠사마가 자신의 수채화 그림을 동봉하여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연이 되어 미국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57년 뉴욕으로 이주 후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화단, 그리고 전후 미국 내 강한 반일감정과 맞서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금 그림에 몰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종종 음식을 섭취하지도 수면을 취하지도 않으며 50-60시간씩 그림에 골몰했다. 아마 이 시기 양극성장애(bipolar disorder)의 조증(躁症, mania) 단계가 발현된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정을 해볼 수 있다. 조증은 심한 흥분에 따른 고양감, 불안감, 충동성, 사고의 비약과 같은 증상을 특징으로 하며, 심한 조증 삽화 (Manic episode)의 진단을 위한 단서로는 수면 욕구 감소, 목표 지향적 활동의 증가, 쾌락적인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 과장된 자신감, 주의 산만 등이 있다.

이 시기에 그린 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한 망(Infinity Net)> 시리즈이다. <무한 망>은 검은 바탕 위에 흰 물감으로 작고 균질한 크기의 호(arc)를 촘촘히 연결하여 멀리서 보았을 때 마치 흰 레이스 천이 검은 캔버스 위에 올려진 듯 보이는 회화다. 앞서 이인화의 커튼 이야기에서 파생되듯, “나와 내 주변 사이에 불특정 회색의 얇은 실크커튼 같은 막이 생기는 환상을 보게 되어” 이를 시각화 한 것이었다.

캔버스 전체를 망으로 뒤덮다 못해 점차 그걸 책상에도 그리고 바닥에도 그리고 종국엔 자신의 몸 위에도 그렸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망이 무한으로 증식하더라고 쿠사마는 회고한다. 1959년 브라타 갤러리(Brata Gallery)에서 이 작품들을 선보이며 뉴욕 화단에 성공적으로 입성했지만 쿠사마는 자신의 조현병 증세가 심화되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매일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날 아침에 깨서 눈을 떠보니 전날 그린 망이 창문에도 있더라는 것이다. 이에 손을 뻗어 만져보려 했더니 그 무늬가 살아 움직이며 기어서 자신의 피부로 옮겨 오더라고 그녀는 회술한다. 이로 인해 공황장애 발작(panic attack)이 오고, 스스로 앰뷸런스를 불러 벨뷰(Bellevue)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이후로도 며칠에 한번씩 같은 일이 반복됐다.
[도판 4] &lt;무한 망(Infinity Net)&gt;을 그리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 2013. Photo © Gautier Deblonde. Courtesy Yayoi Kusama Studio Inc., Ota Fine Arts, Toyko / Singapore and Victoria Miro, London. © Yayoi Kusama.
며칠씩 멈추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안정을 찾는 쿠사마의 이러한 행위를 조증 삽화와 연관하여 생각해보면, 이 작업 방식은 점점 더 강박적으로 그림을 그림으로써 세상은 마음대로 되는 곳이 아니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피하고자 애써 노력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무한 망과 유사하게 속칭 ‘땡땡이’ 점무늬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폴카닷(polka dot) 시리즈 또한 이 시기에 제작하기 시작했다.

쿠사마는 그러한 끝없는 반복을 통해 자신의 증세를 경감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하며, 반복적으로 그려내는 행위를 “자기 말소(self-obliteration)”라 칭한다. 끝없는 반복이 머릿 속의 시끄러운 잡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삶의 불안을 지워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느꼈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남근 들판(Phalli-Field)> 또한 정신적 문제에 대한 쿠사마의 대응기제로 읽어볼 수 있다. 이 작업은 일종의 소프트 스컬프쳐(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조각)로 천에 솜을 채워 만든 수백개의 남근 형태의 오브제로 이루어져 있다. 쿠사마는 어린 시절 받은 가정교육의 영향으로 성(sex)에 대한 공포증(phobia)를 갖고 있었다.

결혼 전 방종을 막기 위해 어머니는 성이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라 가르쳤으며, 앞서 말했듯 아버지의 바람의 현장을 목격해와 어머니에게 보고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과정을 겪으며 성을 터부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쿠사마는 이 오랜 공포증을 물리치기 위해 공포의 대상을 작고 다루기 쉬운 사물로 치환하고 그것의 반복 생산 및 설치한다. 일종의 의식처럼 미술관 혹은 갤러리 공간 한가득 남성 생식기 모양 조각을 채워넣다보면 어느덧 성은 두려울 것도 없고 오히려 재밌고 즐거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쿠사마에게 예술은 발산의 기회이면서 정신적 문제에 대한 치유의 방편이 된다.
[도판 5] 자신의 작품 &lt;무한 거울방-남근 들판(Infinity Mirror Room-Phalli's Field)&gt; 안에 선 쿠사마 야요이, 1965, 다매체 설치, 설치 규모 가변적. © Yayoi Kusama.
이렇듯 자신의 정신증이 작품의 중요한 영감임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 증세를 완화하는 치유의 방식으로 예술을 논하는 쿠사마이지만, 다른 한편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조현병, 강박 장애, 양극성 장애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레이브스 병을 가지고 있어 나타나는 증세라 주장하기도 한다.

바제도 병(Basedow's disease)이라고도 불리는 그레이브스병(Graves' disease, toxic diffuse goiter)은 갑상샘 기능항진증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 발한, 설사, 근력약화 이외에도 불면, 손떨림, 과잉행동과 같은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일부 증세사 정신증적인 것과 유사하긴 하지만 그레이브스 병은 일종의 내분비 질환으로, 이를 조현병이나 조증삽화와 같은 정신건강의학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는가의 여부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최근에는 갑상샘 기능과 뇌기능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과 대규모 인구관찰 연구들이 수행되어 피해망상과 같은 조현병의 증상들이 갑상샘 기능항진으로 인해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한다.[3] 다른 한편 양극성 장애나 조현병을 가진 환자들에게서 갑상선 기능항진이 나타나는 빈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다.[4]

그러므로 쿠사마의 그레이브스병으로 정신질환 증세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정신증으로 인해 조증과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그레이브스병으로 인한 정신질환 유사 증상의 경우 갑상선의 문제를 치료할 때 증상도 효과적으로 사라지는데, 쿠사마의 경우 1973년 뉴욕에서 도쿄로 재이주하여 갑상선 수술을 받는 등 그 치료가 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시, 환청, 강박증이 지속되어 결국 1977년 세이와 정신병원에 입원해 오늘날까지 살고 있으니 아마도 갑상선 기능항진이 정신병적 증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 것이라 추정해볼 수는 있다. 게다가 그레이브스병은 성인이 되어 발생하므로 이미 7살에 환시와 환청에 시달린 것은 그레이브스병의 영향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쿠사마의 정신증은 어쩌면 갑상선 기능항진에 따른 증상보다는 어머니로부터의 정신적, 신체적 학대와 더 깊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와 불안 및 양극성 장애 증상은 유의미한 관련이 있다.[5] 아동기 학대는 만성적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양극성 장애를 조기에, 그리고 더 중도로 발현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장기간 혹은 심한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동의 경우 영구적으로 뇌구조와 기능 상의 변화가 생기고, 면역체계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신체 및 정신 이상에 쉽게 걸릴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이를 쿠사마에 적용하여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겪은 정신적 신체적 학대가 일찍부터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여러 요인 중 하나였으며 70년대에 그레이브스병이라는 자기면역질환과 같은 신체적 이상으로까지 발현된 것이 아닐까 추정해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정신질환과 창의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추정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친숙한 많은 수의 천재 아티스트들이 정신증, 신경증 증상을 갖고 있었다거나 특정 진단을 받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드바르 뭉크가 우울증, 불안장애 및 양극성 기분 장애에 시달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후앙 미로, 버지니아 울프, 살바토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등 여러 작가, 아티스트가 비슷한 질환을 앓았다는 것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 또한 이 주제에 대해 실험과 분석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경향은 대부분의 정신질환과 창의성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정신증적 증상과 예술 사이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고 배제하는 것 또한 어려운데, 왜냐하면 많은 예술가들의 사례에서 정서적 신체적 학대, 몰이해, 가난 등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을 겪으며 차후 정신증적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고 그 트라우마를 예술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다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퍼피츄아 니오(Perpetua Neo)는 어린 시절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던 아티스트들의 경우를 분석하며 “그들 중 대다수가 고통받은 자아를 의미 창출을 위해 사용하고 그것을 예술을 통해 실행한다”고 설명한다. 즉 정신질환으로 인해 천재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관련 증상을 유발시킨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그것에 대한 대응기제(coping mechanism)로 예술창작을 행하는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낸 작가들이 여럿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본고는 쿠사마의 자서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유추해본 것이므로 진실은 본인과 담당 정신과의만이 알고 있겠지만 정신과적 증상들로 평생 고통받은 것은 분명해보인다. 현대 의학이 정신과적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치료법과 성과를 내고 있지만 사실 가장 힘든 부분은 "본인이 정신병적 증상이 있음을 자각하고 치료받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아 많은 환자들이 조절되지 않는 증상으로 고통받고 또 이를 인정하지 않아서 치료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쿠사마는 본인의 증세를 인정, 수용했을 뿐 아니라 이를 평생의 숙명으로 짊어지고 살면서 그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의료인의 관점에서 대단히 훌륭하게 보인다.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정신질환을 핑계로 방치하지 않고 비범한 인내심과 열정으로 벼려내는 그 예술적 승화 과정이 오늘날의 쿠사마를 만들었구나 싶다. 이런 의학적, 예술적 지점들을 알고나면 쿠사마의 작업에 대해 막연히 갖던 우호적 감정이 각별해지지 않는가?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오경은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미술사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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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사마 야요이의 증세와 관련해서는 아티스트의 자서전인 Infinity Net: The Autobiography of Yayoi Kusam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를 참조했다.
[2] 조현병의 발병은 서서히 진행되며 주된 증상은 환청, 망상, 이상 행동, 횡설수설 등이 있다. 환자들은 흔히 환각, 환청을 경험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거나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 보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근거가 없는 엉뚱한 믿음을 갖게 되는 망상을 주증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과 연관시켜 개인적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 망상, 나를 감시하고 있다거나 누군가가 나를 조종한다고 느끼는 피해 망상, 과대망상, 내가 구세주이거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종교 망상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망상은 합리적인 설득이나 논쟁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3] “Causal link between thyroid function and schizophrenia: a two-sample Mendelian randomization study”, PSYCHIATRIC EPIDEMIOLOGY, Volume 38, pages 1081–1088, (2023) 참조
[4] “Thyroid functions in patients with bipolar disorder and the impact of quetiapine monotherapy: a retrospective, naturalistic study”, Neuropsychiatr Dis Treat. Volume 15: 2285–2290, (2019) 참조
[5] “The Impact of Childhood Trauma on Developing Bipolar Disorder: Current Understanding and Ensuring Continued Progress”, Neuropsychiatr Dis Treat. Volume 16: 3095–3115, (202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