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를 홀리는 것은 악마일까, 과학의 탈을 쓴 악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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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윤성은의 Cinema 100장재현 감독의 <파묘>(2024)가 천만 관객의 고지를 넘어섰다. 한국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장르였던 오컬트 영화가, 더군다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처럼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단 세 편의 장편으로 이 장르의 장인이 된 장재현 감독의 연출력과 연결된다. ‘파묘’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영상으로도 충분히 긴장과 공포를 유발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한국의 토속 신앙이 현대적 캐릭터 및 우리 역사와 결합하였을 때 얼마나 흥미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영화
장재현 감독의 데뷔작은 <검은 사제들>(2015)이었다. 차기작들인 <사바하>(2019)나 <파묘>에 비하면 단선적인 서사라 할 수 있겠으나 소위 ‘한국형 오컬트’ 영화가 대중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검은 사제들>의 성공 이후 만들어진 유사한 작품들, 즉 구마 사제를 앞세운 <사자>(감독 김주환, 2019), <변신>(감독 김홍선, 2019) 등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외국 장르, 그것도 종교 의식이 중심에 있는 장르를 한국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알게 해준다.<검은 사제들>은 구마에 경험이 많은 신부, ‘김범신’(김윤석)이 사제 수업을 받고 있던 ‘최준호’(강동원) 부제와 함께 악령이 들린 소녀, ‘이영신’(박소담)을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엑소시즘 장르의 전형적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검은 사제들>에는 한국인들에게 보다 친근한 캐릭터와 배경이 존재한다. 사실, 한국의 천주교 신자가 약 11%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주변에서 많이 본 듯한 사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장재현 감독은 캐릭터 구축 단계에서 주인공들을 한국적 정서를 머금은 인물들로 각인시킨다.
먼저, 김범신 신부는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아왔던 외국 사제들과 달리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인물이다. 교구의 협조를 얻지 못한 채 악마와 벌였던 사투가 그를 지치게 만들었기에, 처음 최준호를 대할 때 그는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김범신은 사제 이전에 딸을 구하고자 하는 절박한 아버지나 제자를 구하고자 하는 엄한 스승으로서 인식되는데, 바로 이 점이 그를 보다 보편적인 인물로 만들어준다.
최준호라는 캐릭터는 잔꾀가 많고 능글맞은 사제 지망생으로, 하기 싫은 보조 구마사제 노릇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교구에서 내놓다시피 한 김범신과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최준호는 누가 봐도 코믹 버디 무비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물론, 이들은 오컬트라는 장르에서 서로를 도와 심각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진지한 동료로 변형되었고, 여기에 카톨릭 교구에서 김범신의 구마 의식을 의심하고 있다는 점, 최준호가 일종의 스파이로서 파견되었다는 점까지 합쳐져 대중들에게 익숙한 상업영화의 세팅이 완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의 명동 한복판에서 구마의식이 이루어지고, 명동성당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 등장한다는 점도 이 영화를 한국인의 생활 및 정서와 밀착시킨다.<검은 사제들>에서 무엇보다 어색할 수 있었던 것은 구마의식 장면들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서양인들이 굿판을 벌리는 모습처럼 우리 배우들이 엑소시즘을 할 때 느껴질 수 있는 이질감을 떨쳐버림으로써 흥행에 성공했는데, 여기에는 배우들이 한 몫을 했다. 영어와 이탈리아어는 물론 라틴어, 중국어까지 구사하면서 구마사제와 귀신 들린 여자를 연기한 김윤석, 강동원, 박소담 세 배우는 각기 다른 파장의 에너지로 영화의 밀도를 높였다.
<파묘>에서 개성 강한 주연들이 모난 데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면 이 또한 감독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방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다양한 앵글과 길이의 샷으로 편집하면서 변화를 주고, 대사와 사운드, 음악을 교묘히 뒤섞은 것도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연출이었다.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시점에서, <검은 사제들>은 이것이 장재현 유니버스의 시작이었다는 의의가 더해진다. <사바하>까지 세 작품이 조금씩 다른 방식의 서사와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뱀, 돼지, 숫자 등 이들을 관통하는 소재나 장면들도 많아서 계속 파고드는 재미가 있다. 언젠가는 인간과 종교, 영혼,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장재현 감독의 유니버스가 집대성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왜 계속 이런 영화들을 만드냐는 질문에 장재현 감독은 무종교의 시대에 악마는 합리주의, 과학, 숫자 등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그 숨어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은밀히 조종하고 있는 (험한) 것들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계속 좋은 영화로 완성되길 바라고 믿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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