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와 샤넬이 반한 '길바닥 그래피티 작가'가 서울에 떴다
입력
수정
시릴 콩고 뮤지엄웨이브 개인전‘공공시설물에 낙서를 할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피티의 연금술사' 6월 1일까지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쓰레기통 위에서, 벽 앞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경고 문구’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거리나 시설물에 그림과 글자를 적어넣는 작업, 불법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장르 ‘그래피티’를 향한 경고다. 과거부터 그래피티 작가들은 스스로 ‘우리의 예술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들키거나, 혹은 작품을 완성하거나.
프랑스 화가 시릴 콩고도 그래피티를 그리는 작가다. 그도 다른 그래피티 작가들과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 홍콩, 멕시코 등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예술을 몰래 거리에 수놓았다. 그가 오늘날까지도 ‘내 그림은 길바닥에서 시작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길바닥을 전전하던 콩고의 인생은 2011년에 뒤집혔다. 그 날도 그는 프랑스 파리의 한 길거리에서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열중하던 콩고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곤 이내 콩고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순찰을 돌던 경찰도, 시 공무원도 아니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우연히 길을 걷다 거리에서 벽화를 그리는 콩고의 모습을 보게됐다. 그의 그림세계를 한참 지켜보다 대뜸 다가가 ‘힘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콩고는 그렇게 ‘길바닥’에서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인 에르메스의 눈에 띄었다. 그렇게 그는 이듬해 ‘에르메스의 상징’이라고도 불리는 실크 스카프에 자신의 그래피티 그림을 새기게 됐다.
빛나는 실크 스카프 위에 새겨진 길거리 예술은 명품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완판됐다. 그림을 그린 작가 콩고조차도 한 장을 겨우 구했을 정도였다.그래피티로 인생을 바꾼 작가 시릴 콩고의 작업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서울 성북동 뮤지엄웨이브에서 열리는 개인전 '그래피티의 연금술사'에서다. 그는 에르메스 스카프를 비롯한 자신의 그래피티 작품 45여 점을 서울로 가져왔다.
콩고의 에르메스 작업을 보고 또 한명의 거장이 반응했다. 2019년까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던 '샤넬의 아버지' 칼 라거펠트였다. 그는 콩고에게 자신의 작업실을 4개월이나 내 주며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다. 콩고와 샤넬의 콜라보는 라거펠트 생전 마지막 작업으로 남았다.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뤄졌던 샤넬 쇼. 콩고는 이집트 신전을 본뜬 관에서 쇼가 이뤄진다는 것에 영감을 받아 이집트 문양을 옷과 스카프 등에 새겨넣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당시 퍼렐 윌리엄스가 파라오 분장을 하고 쇼에 나타나며 런웨이는 큰 화제를 모았다. 그렇게 콩고는 ‘명품이 택한 길바닥 작가’로 다시 한 번 조명받게 됐다.이번 전시에서도 한 층을 모두 털어 샤넬과의 콜라보 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라거펠트의 집에 살며 만들었던 드레스, 가방 등이 소개된다.
그는 아직도 길바닥을 돌아다닌다. 세계를 떠돌며 자신의 작품을 새긴다. 그가 "나는 거리에서 배웠고, 내 작품은 다 길바닥에서 시작했다"고 줄곧 말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엔 그가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도시들을 그래피티로 표현한 대형 작품이 걸렸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도시를 표현한 글자를 포착할 수 있다.콩고는 스스로를 ‘사랑을 말하는 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전쟁 등 사회정치적 문제를 향해 사랑이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대답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LOVE’ 설치작 등 사랑을 말하는 작품들이 대거 놓였다. 그의 인생이 담긴 전시는 6월 1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