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혁의 야구세상] 허구연 총재 "티빙이 유무선 사업자 선정된 배경은 숏폼 허용"

"ABS 추적 성공률은 99.9%…심판·선수·감독 스트레스 탈피할 것"
"ABS·피치클록 동시 도입은 무리…하지만 시간 단축은 필수"
"청라돔·잠실돔 완공되면 WBC 유치에도 유리"
"임기 동안 저변확대·산업화·국제화 추진하겠다"
지난 주말 2024 프로야구가 다양한 화제 속에 개막했다. 출범 43돌을 맞은 올 프로야구는 세계 최초로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ABS)을 1군 리그에 도입했다.

시범 운영 중이긴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는 '피치 클록(Pitch Clock)'을 점검 중이고, 베이스 크기는 확대하고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등 대대적인 규칙 변경을 단행했다.

여기에다 KBO리그가 동영상 스트리밍(OTT) 업체인 티빙을 통해 최초로 유료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야구팬들의 비판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처럼 극적인 변화를 한꺼번에 추진 중인 허구연 KBO 총재는 지난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ABS를 처음 도입하고 피치 클록도 점검하고 중계 유료화까지 진행되다 보니 사실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걱정이 많다"고 속내를 밝혔다.

현장 지도자들의 반대 속에 피치 클록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미룬 데 대해선 "화폐 개혁과 토지 개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라며 "올해는 ABS를 통해 판정의 정확성을 기하는 데 주력하고 내년에는 피치 클록으로 경기 시간 단축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허 총재는 티빙을 운영하는 CJ ENM이 새로운 유무선(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로 선정된 배경에 대해선 "이전 사업자와 달리 숏폼(Short-form)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 구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최근 티빙의 잦은 방송 사고에 대해선 "사실상 안타까운 인재"라며 "스포츠 전문 방송 인력을 적극 영입해야 중계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허구연 총재와 일문일답.
-- 올해 프로야구의 가장 큰 변화는 ABS 도입이다. 미국조차 시범 운영 중인데 KBO리그가 가장 먼저 도입하게 된 배경은.
▲ 사실 미국 메이저리그가 우리보다 한 해 앞서 ABS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재작년 말인가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를 만났더니 피치 클록을 먼저 도입한다고 하더라. 최근 메이저리그는 관중 감소와 시청률 저하로 위기의식이 있는데 경기 시간 단축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판단한 것 같다.

반면 우리는 판정 논란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했다.

미국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지만 우리는 볼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 참지 않는 분위기다.

-- ABS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인가.

▲ 지난해 KBO리그 심판들의 스트라이크 판정 정확도를 측정했을 때 91.2%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심판들은 92.5% 정도로 조금 더 높지만 큰 차이는 없다.

ABS의 투구 추적 성공률은 99.9%다.

심판보다 8% 이상 정확도가 크게 올라갔다.

ABS가 정착하면 과거 심판들이 판정 시비로 인해 받던 스트레스는 크게 줄 것이다.

선수나 감독도 오심으로 피해 본다는 생각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이고 팬들에게도 신뢰를 심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 ABS와 달리 피치 클록은 전반기 시범 운용 뒤 후반기 도입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가 최근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는데.
▲ ABS와 달리 피치 클록은 투수와 타자 모두 적응을 많이 해야 한다.

현장 감독들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선 반드시 도입하긴 해야 한다.

또 메이저리그가 먼저 피치 클록을 도입했기 때문에 장차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큰데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아마도 못 따라갈 것이다.

-- 최근 고척돔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 시리즈가 상당히 높은 관심을 받았는데.
▲ 3년 전인가 미국 커미셔너를 만났더니 일본 도쿄하고 서울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일본은 벌써 5번이나 했는데 서울에서 한번 하자고 설득했다.

메이저리그 입장에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게 도쿄돔이 5만석이 넘고 고척돔은 1만6천석밖에 안 된다.

거기에 굿즈(기념품)나 식음료 구입 비용까지 따지면 수익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

결국 다저스나 샌디에이고 구단은 홈구장에서 하는 것은 보다 적은 관중이 들어와 수입이 줄 수밖에 없는데 커미셔너 사무국에서 그 손해분을 보상해 주기로 했다.
-- 고척돔은 건립 당시부터 관중석이 너무 적고 주차 공간이나 편의시설도 협소해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높았다.

KBO리그에 제대로 된 돔구장은 언제 생기나.

▲ SSG그룹에서 추진 중인 인천 청라돔이 2028년이면 완공되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준비하는 잠실돔이 2030년 이후 완공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고척돔과 더불어 30∼40분 거리의 밀집된 지역에 돔구장이 세 개나 들어서게 된다.

미국에도 일본에도 돔구장이 밀집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 단독으로 WBC나 각종 국제대회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이 합동으로 WBC를 공동 유치하는 등 동아시아에 야구붐을 일으킬 수도 있다.
-- 유무선 사업자로 선정된 CJ ENM이 5월부터 티빙을 통해 야구중계를 유료화될 예정이어서 일부 논란이 있는데.
▲ 유무선 사업자는 KBOP를 포함해 10개 구단 관계자로 구성된 '입찰 평가위원회'에서 선정했다.

나도 기존 통신·포털 연합 대신 CJ가 선정됐다는 보고를 받고 조금 놀랐다.

얘기를 들어보니 평가위원들은 CJ가 팬들이 '숏폼'을 올리는 것을 허용하고 구단들도 경기 영상을 자체적으로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 것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

종전 사업자는 팬들은 물론 구단도 경기 영상을 일체 사용 못 하도록 했었다.

-- 온라인으로 야구를 보기 위해 티빙이 제시한 요금제가 5천500원이지만 추후 더 오를 수도 있지 않은가.

▲ 티빙이 마음대로 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CJ와는 세부 조건을 논의하다 협상 마감 1분 전에 최종 계약을 했다.

무리한 요금제 인상을 막는 조건을 넣기 위해 버티다가 협상이 결렬될 뻔도 했다.

-- 그런데 티빙이 중계하면서 최근 방송 사고가 나는 등 실수가 잦은데.
▲ 사실 안타까운 부분인데 인재라고 봐야 한다.

처음 하다 보니 실수가 나오는데 결국 야구 중계에 익숙한 전문 인력들을 뽑아 써야 한다.

예능이나 교양을 하다가 갑자기 스포츠 중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지난 시즌 뒤 연임되면서 향후 3년 더 KBO를 이끌게 된다.

임기 동안 가장 중점을 두는 야구는 무엇인가.

▲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저변 확대다.

단순히 야구팬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다 보니 운동하려는 선수는 더 줄고 있다.

그래서 티볼이나 유소년 야구 보급 등을 통해 저변을 넓혀야 한다.

여성 친화적인 경기장 시설과 문화 형성도 아주 중요하다.

두 번째는 본격적인 산업화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각 지자체와 긴밀하게 유대하면서 조례를 바꿀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또 스포츠토토 지원금도 좀 더 확대되어야 우리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 등 아마추어 스포츠가 살아갈 수 있다.

세 번째는 국제화를 통해 선진 기술을 빨리 습득해야 한다.

갈수록 미국이나 일본 야구와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스포츠 과학이나 의학은 한참 뒤떨어졌다.

일본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각 팀에 일반직이나 통역은 물론 트레이너 등 5명 이상 일본인 직원이 있다.

일본은 그래서 메이저리그의 신기술은 물론 최근 기계까지 즉각 수입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도 좀 더 적극적으로 메이저리그 교류해야 뒤처지지 않고 선진 야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