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초점도 못 맞추던 연구원은 일본의 석학이 됐다 [서평]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오스미 요시노리·나가타 가즈히로 지음
구수영 옮김/마음친구
256쪽|1만8000원
Getty Images Banks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로 공개된 ‘삼체’는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지구를 노리는 외계 문명이 있다면, 어떻게 지구 문명의 힘을 미리 빼놓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과학 발전을 저지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선 지구의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입자 가속기 실험 결과도 교란된다.

그런데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A라는 국가가 B 나라를 견제하려면 과학과 기술 발전을 방해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과학 혹은 과학자가 주변부로 밀려난 국가는 미래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역사가 그랬다. <미래의 과학자들에게>는 일본의 두 석학이 함께 썼다.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는 오토파지 구조를 규명해 201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나가타 가즈히로는 교토대 명예교수다. 콜라겐 연구로 유명한 세포생물학자이며, 여러 권의 책을 낸 저술가다.

이들은 과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어야 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기준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말한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연구, 도움이 되는 연구만 하는 것은 오히려 과학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연구자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저자 중 한 명인 나가타 교수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원 입시에 떨어지고 모리나가유업 연구소에 취직했다. 유제품을 만드는 회사인데 신규 사업으로 바이오에 뛰어들었다. 신입인 그가 덜컥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를 맡게 됐다. 그를 비롯해 회사 내 아무도 바이오를 몰랐다. 무책임하고 무모했지만 그게 자유로움을 만들어냈다. 그는 전화로 각 방면에 물어 우선 세포를 배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도쿄대 한 교수에게 시험관이나 샬레를 가져가 묻기도 했다. “세포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교수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자네, 바보인가? 자네가 보는 것은 샬레의 바닥이잖아. 현미경 초점이 맞지 않았어.”

연구의 재미를 알게 된 그는 취직 5년 반이 지난 스물아홉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결혼도 하고 두 아이가 있을 때였다. 서른여섯 살에 미국 국립위생연구소(NIH)에 속한 국립암연구소에 객원 준교수로 유학했다. 다들 피브로넥틴 단백질 수용체를 찾는 일에 몰두하는데 그는 혼자 콜라겐을 연구했다. 그렇게 열충격 단백질 중 하나인 ‘HSP47’을 발견했다.

열충격 단백질은 세포가 열충격 등 스트레스를 받을 때 증가하는 단백질이다. 암 치료와도 연관이 있다. 암세포에 열을 가하는 온열치료가 효과를 보려면 암세포의 열충격 단백질 합성을 방해해야 한다. 연구가 재미있어 공부를 시작했고 남과 다른 연구를 했던 여정이, 돌고 돌아 이런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오스미 교수도 “내가 오토파지를 연구한 이유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 아니었다”며 “눈앞에 보이는 세포 내 대상을 분해하는 구조와 그 의미를 규명하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1980~90년대 연구 분위기가 도움이 됐다. “좋은 연구를 한다고 평가받은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목적에서 다소 벗어나더라도 넉넉한 자금을 내어주던 시기였다. 그것은 시대가 가진 여유이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일본이 노벨 과학상을 많이 타고 있는데, 그 바탕이 된 연구가 주로 이 시기에 이뤄진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일본도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도움이 되는 연구’가 장려된다. 실패를 허용하는 분위기도 줄었다. 다들 몸을 사리고 남들이 가는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한다. 과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저자들은 “사회 전체가 정신적 여유를 갖추는 것이 과학자가 자유롭고 즐겁게 연구하는 데 중요하다”고 했다.기초 과학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업 경영진도 관심 가져볼 만한 책이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모바일 시대에 맞는 ARM의 저전력 칩, 인공지능 시대에 급부상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은 이전에 비주류에 속했다. 한때 유망했던 것이 한물간 것으로 전락하고, 관심을 못 받던 것이 시대가 변하며 주목받는 것은 과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