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음식 재료로…한국의 사계절 과일로…훔쳤다, 세계인의 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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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요리 올림픽 '독일 IKA'서 나란히 금·은메달
신지훈 셰프
남는 껍질·지느러미도 재료로
'제로 웨이스트' 콘셉트 눈길
한 접시에 인생 담고 싶어
배영산 파티시에
한국 사계절을 디저트로
딸기봄꽃·가을빛 밤 타르트
웹툰 보고 셰프의 길 걸어

이런 세계적인 행사에서 올해 젊은 한국인 셰프 두 명이 금·은메달을 따냈다. 주인공은 서울 롯데호텔 피에르가니에르에서 일하는 신지훈 셰프(30)와 배영산 베이커리 파티시에(27). 신 셰프는 컬리너리 아트 부문에서 5코스 메뉴와 핑거푸드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배 파티시에는 페이스트리 아트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땄다.새우 껍질로 만든 젤리, 딸기로 만들어낸 봄꽃까지. 67개국, 1800여 명을 제치고 메달을 따낸 비결은 신선한 메뉴 콘셉트다. 신 셰프는 버리는 재료들로 완성한 ‘제로 웨이스트’ 메뉴를, 배 파티시에는 한국의 사계절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선보였다.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란 느낌마저 든다. 요리 올림픽에서 선보인 메뉴는 오는 4월 13일까지 서울 롯데호텔, 롯데호텔월드 라세느에서 맛볼 수 있다. 지난 27일 서울 올림픽로 롯데호텔월드에서 그들을 만나 그간의 준비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 앞으로의 꿈을 들었다.
▷IKA 출품작에선 어떤 점에 주력했습니까.
▷메뉴를 고안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듣고 보니 예술 작품에 가까운데요.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기억에 남는 심사평이 있나요.
(신) “심사위원이 제 앞에 서서 ‘너, 이 음식에 자신 있어?’라고 묻더라고요. 손을 덜덜 떨면서 ‘5코스는 자신 있는데 카나페에서 좀 완성도가 떨어진 것 같다’고 답했더니 심사위원이 웃으며 ‘굉장히 잘했다’고 했어요. 그간 힘들었던 걸 보상받은 느낌이었죠.”(배) “사실 제 전공은 베이커리가 아니거든요. 양식을 하다가 베이커리로 넘어왔는데, 심사위원이 먹어본 순간 ‘맛, 밸런스, 모양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어요. 그때 결심했죠. 앞으로 베이커리를 계속해야겠다고.”
▷세계적인 대회인 만큼 다른 참가자들의 작품도 쟁쟁했을 것 같은데요.
(신) “맞아요. IKA는 전시 형태라 음식뿐 아니라 접시부터 테이블을 직접 다 꾸며야 해요. 영국 대표팀을 보니 아예 정원을 만들어놨더라고요. 잔디를 깔고, 새 소리를 틀어놓고, 향수도 뿌리고. 깜짝 놀랐죠. 그걸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요.”(배) “스위스 대표팀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보통 무스와 아이스크림을 같이 쓰지 않는데 그 팀은 동시에 둘을 올려놨는데도 모양이 잘 잡혀 있고 먹음직스럽더라고요. 눈으로만 봐도 ‘아, 이건 무조건 맛있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상도 못 한 조합이라 신기해서 동영상도 찍어놨어요.”
▷어떻게 셰프가 됐나요.
(신) “전 조리고를 나오지도 않았고, 원래 직업군인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에드워드 권 셰프를 봤는데 그분의 눈빛, 카리스마, 리더십에 한눈에 반했죠. 사실 손님이 맛있게 먹는 것도 보람 있지만 제가 새로운 조합을 떠올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플레이팅할 때 너무 행복해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 그게 요리의 매력이거든요.”(배) “저도 비슷해요. 원래 중학생 때까진 태권도 선수였어요. 그러다 엄청난 스타가 되지 않는 이상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걸 찾아봤죠. 그때 웹툰 ‘역전 야매요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밥솥으로 케이크를 만드는 법 등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알려주거든요. 그걸 집에서 따라 해보는데 ‘나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죠.”
▷앞으로 어떤 셰프, 어떤 파티시에가 되고 싶나요.
(배) “아직도 선배님들을 보면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회사에서 따로 스터디 모임을 구성해 퇴근 후에도 연구합니다. 실력을 갈고닦아서 ‘롯데호텔이 베이커리로는 최고지’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신) “나만의 무기를 갖고 싶어요. 결국 사람들은 셰프를 보고 찾아오거든요. 요즘 양산형 레스토랑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내가 굳이 왜 여기를 가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은데, 그 질문에 ‘신지훈이니까’라는 답을 주고 싶어요. 음악, 미술처럼 요리사는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한 접시에 담아내야 하거든요.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그걸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음식으로 구현하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