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사이클' 바라보는 경기회복…소비부진 '온도차'

고물가·고금리 속 소비여력 부담…"반도체와 내수 따로 전개"
한국경제 버팀목 격인 반도체가 생산·수출뿐 아니라 투자도 견인하면서 실물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물가·고금리 속에 소비위축이 이어지면서 내수는 좀처럼 회복 모멘텀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내수가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판단이지만, 수출 제조업과 내수 소비의 온도차는 여전한 모습이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생산(계절조정)은 전월보다 4.8% 증가했다. 작년 3월(26.8%)을 기점으로 같은 해 8월(16.5%), 9월(11.8%), 11월(9.8%), 12월(3.6%) 등 증가하면서 월별 등락은 있었지만, 추세적으로 개선되는 흐름이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개선세가 더 뚜렷하다.

작년 8월(20.7%)부터 9월(33.5%), 10월(17.3%), 11월(40.7%), 12월(47.1%), 올해 1월(44.7%)·2월(65.3%) 등 7개월 연속 두 자릿수대 증가율을 보였다.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업계에서는 '빅사이클' 기대감도 확산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증가하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급증했던 정보기술(IT) 제품이 교체 주기를 맞은 데 기인한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가량에 달하는 반도체는 일찌감치 수출 개선세를 이끌었다. 올해 들어 수출은 1년 전보다 1월 18.0%, 2월 4.8%, 이달 1∼20일 11.2% 증가하는 등 안정적 흐름이다.

'반도체 온기'는 생산·수출에 이어 투자 부문까지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10.3% 증가했는데, 특히 반도체 투자와 밀접한 특수산업용 기계 설비투자가 15.6% 늘면서 기계류가 6.0% 증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물동량이 좋아 선박 투자가 크고 반도체 업황이 좋아서 반도체 제조용 기계, 특수기계도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투자 개선에는 작년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 반도체 경기가 세계적으로 나아진 점, 대중국 수출 증가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는 반도체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구조가 다시금 드러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도체 생산은 지난달 4.8% 늘었지만, 또다른 효자 품목인 자동차(1.3%) 증가세는 미약했다.

'반도체 제외' 제조업 생산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는 4.8% 줄기도 했다.

자동차는 1년 전보다 11.9% 급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생산 증가의 대부분은 반도체 수출에 기대고 있다"며 "반도체 독주로 지표를 끌어올리다 보니 전반적인 체감 지표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에 발목 잡힌 소비가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점도 향후 경기 회복을 불투명하게 한다.

지난달 재화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3.1% 줄었고 서비스업 생산도 0.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고가의 가전제품 등이 속한 내구재 소매판매는 3.2% 줄었다.

길어진 고물가에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비 여력이 제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는 물가상승률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과일 등 일부 먹거리 물가 급등세로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1% 올랐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관련이 있는 수출·생산은 증가했지만 내수 경기로는 아직 이어지지 못했고 향후에도 반도체 경기랑 내수가 따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