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소환된 전직 대통령들…불 붙은 정치 다큐 [김예랑의 무비인사이드]

'건국전쟁' 흥행 후 정치 다큐 '봇물'
중장년층 관객 늘어 극장선 소소한 '호재'
일각에선 여야 편가르기…정치적 피로감 '호소'
사진=연합뉴스
총선을 앞두고 전 대통령들이 스크린에 소환됐다. 역대 대통령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줄줄이 개봉된 것. 정치인들은 각 진영의 주요 인사를 소재로 삼은 영화를 관람하고 후기를 남기는 등 유권자들의 표심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일각에선 타깃층을 명확히 한 정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일종의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를 보인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누적 관객 수 100만 돌파는 상업영화 1000만 돌파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그 어려운 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담은 '건국전쟁'이 해냈다. 결론적으로 3억을 들여 만든 이 영화는 총매출액 100억 원을 넘었고, '가성비' 측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국전쟁'은 흥행에 힘입어 내년 3월 개봉을 목표로 2편을 제작할 계획이다.여권에선 앞다퉈 관람 인증을 하며 일종의 정치적 선전 효과를 누렸다. '건국전쟁'이 흥행한 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세워진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의 관람객도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칠곡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 동상이 있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관람객은 지난 1월 6767명에서 '건국전쟁' 영화가 개봉한 2월 7270명으로 10% 증가한데 이어 이달 들어 24일 기준 1만 279명으로 1월 대비 50% 이상 늘었다. 통상 1~3월은 관람 비수기로 방문객 수가 비슷한 것을 감안하면 '건국전쟁'의 나비효과로 분석된다.

다부동 전적기념관 운영팀장은 "이전에는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영화 개봉 이후 관람객이 급증하고 있으며 지금은 백선엽 장군 동상과 비슷한 수준으로 찾고 있다" 며 "영화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 일대기를 담은 '길위에 김대중'이 개봉돼 누적 관객 수 12만 명을 모았다. 지난해 5월 개봉한 '문재인입니다'는 총선 이슈와 맞물려 '건국전쟁', '길위에 김대중'과 함께 IPTV와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시 김대중-함께합시다'도 지난 28일 개봉했다. 다음달 3일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유가족이 직접 찍은 '바람의 세월'이 개봉한다.

가수 김흥국은 제작사 흥픽쳐스를 설립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그리고 하얀 목련이 필 때면'을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김흥국은 "건국전쟁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했다.
김흥국 제작 영화 '그리고 하얀 목련이 필때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권 도전기를 다룬 '다시 김대중-함께합시다' /사진=흥.픽쳐스, 메이플러스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가 나 홀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정치 다큐멘터리의 선전은 극장가의 일종의 호재로 꼽힌다. 특히 '건국전쟁'의 경우 50대 관람객이 44%, 40대가 27%로 과반수 이상의 관객이 중장년층이었다. 관객의 저변을 넓히는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이 제대로 통한 것.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이 어려운 상황인데 영화관에서 보는 장르로서 흥행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건국전쟁'이 흥행함으로써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장르의 영화가 개봉할 수 있고, 영화관에서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두 진영을 상징하는 영화들을 통해 일종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30대 직장인 임모 씨는 "'파묘'와 같이 엔터테이닝한 작품은 바쁜 일상에서도 여가 시간을 보내며 볼 수 있지만 정치 다큐멘터리의 경우 정치적으로 선동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부모님이 본다고 해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알게 됐다. 같이 보러 가자는 말을 들었지만, 정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보지 않았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모든 정치 소재 다큐를 뭉뚱그려 평가할 순 없다. 편향을 가지고서 제작된 작품이 있는 반면, 어떤 작품은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총선과 같은 정치 이슈가 있는 시점에 개봉을 결정하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시류를 타서 상업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도 분명히 있다"며 "분명한 관객층을 겨냥한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한 극장 관계자는 "이념적인 주제로 치우치는 작품은 반감이 있을 것 같다"며 "정치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관객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가 흥행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관객들은 (메시지가) 직접적이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들에 다가서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에 정치 다큐멘터리 제작사 측도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이고, 자체 평가를 한 후 선보이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