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 경제제재 강화 vs 해제…이견 분출하는 중립국 스위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두고 중립국 스위스 내부에서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스위스 연방의회에 따르면 연방하원 외교정책위원회는 지난 26일 표결을 거쳐 러시아 유력 인사의 재산을 추적·동결하기 위해 주요 7개국(G7)이 조직한 태스크포스에 스위스가 동참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이에 따라 연방하원은 내달 외교정책위원회가 찬성한 태스크포스 참가 동의안을 놓고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스위스는 자국산 군수품을 분쟁 지역으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군사 분야에서는 엄격하게 중립 원칙을 지키면서도 서방국가들의 대러시아 경제제재는 대체로 수용해왔다.

러시아는 외무부 논평 등을 통해 "스위스를 중립국으로 볼 수 없다"며 깎아내린다. 반면 서방 국가들은 스위스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본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부터 '러시아 엘리트·대리인·올리가르히 태스크포스'(REPO)에 구성원으로 들어와 달라는 서방국들의 요청을 스위스가 거부한 사실이다.

REPO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022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을 제재할 방안을 수립·실행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설립된 다국적 대러시아 제재 집행 기관이다. 이번에 스위스 연방하원 외교정책위원회가 REPO 동참에 긍정적 의견을 낸 것은 대러시아 제재 강도를 주요 서방국 수준으로 한층 더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그에 반해 스위스의 대러시아 제재가 중립성을 훼손하는 만큼 제재 자체를 무효로 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스위스 국민당의 발터 보브만 전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 21일 약 11만명의 유권자 서명을 받은 '중립성 수호' 발의안을 내달 의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 발의안은 스위스의 영구적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하고, 현행 법체계가 금지하는 군사적 방식뿐 아니라 비군사적인 방식으로도 분쟁 당사국에 대해 강압적 조치를 하는 것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용하면 지금처럼 교전국으로 자국산 무기 반입을 금지하는 것뿐 아니라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할 수 없게 된다.

스위스에서는 10만명 이상 서명한 법안은 국민투표 안건이 될 수 있다.

보브만 전 의원은 유권자 11만여명과 함께 대러시아 제재 무효화를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셈이다.

스위스의 연방장관 회의체인 연방평의회는 이 법안 취지에 반대하고 있다. 경제제재와 같은 비군사적 방식의 조처마저 할 수 없게 되면 스위스의 외교적 재량을 더 제약하게 되고, 국제질서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