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과·바나나·감자 값 세계 1위…날씨 아닌 유통구조의 문제

한국의 사과값이 1㎏ 기준 6.80달러로 주요 95개국 중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고물가로 유명한 미국(5.31달러) 일본(4.52달러) 싱가포르(4.20달러) 등을 멀찌감치 따돌린 부끄러운 1위다. 사과만이 아니다. 바나나(3.44달러) 오렌지(5.71달러) 감자(3.93달러) 가격도 세계 최고다. 토마토(5.46달러)와 양파(2.95달러)는 95개국 중 2위에 올랐다.

이런 고공행진은 농수산물에 관한 한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고물가국으로 전락했다는 우울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부는 이번 파동을 ‘기후위기로 인한 작황 부진 탓’으로 설명해 왔지만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과일값은 10여 년 전부터 최상위권을 들락거리다 이제 여러 품목이 상위권을 동시에 도배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선거와 겹치며 올해 유난히 부각되긴 했지만 과일·채소값 폭등은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작년에는 우유값이 14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고, 재작년에는 배추 파동이 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해마다 품목별 할인 지원 확대, 비축분 방출 등 자금 투입 및 단기 공급 확대책만 반복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품목을 바꿔가며 파동이 재연되고 농가에선 생산원가도 건지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긴급 자금 1500억원을 투입하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까지 백방으로 뛰지만 가격 급등세가 쉬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후진적인 농수산물 유통체계 등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과점적 경매업체나 대형 유통체인 등에 가격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대증요법에만 매달려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수입 확대 등 공급 경로 다변화도 소수 카르텔이 지배하는 유통시장 비효율 개선의 선결조건이다. 남미·미국산 등이 돌아가며 수입돼 국내 생산 비수기를 메운 덕분에 포도값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데서 그 위력이 잘 확인된다. 기후위기는 갈수록 깊어질 것이고 과수농가의 인력 부족도 점점 심화하고 있는 만큼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농민 보호가 아니라 소비자 후생을 최우선 목표로 농가의 자동화·스마트화 지원에도 박차를 가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