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기술 유출 걱정할 때 아냐…中 고급인재 유치 전략 시급"

월요 인터뷰
서울대 이차전지혁신연구소 강기석·최장욱 교수

중국의 막강한 '배터리 굴기'
中 소·부·장 내재화 완료
한국이 앞선 분야 몇개 안돼

K배터리 생존 묘수는
산·학·연 역량 총동원해야
차세대 경쟁 이기기 위한
'연구 허브' 활성화 절실
미국과 '한몸 전략' 유지해야
서울대의 배터리 학자인 강기석 재료공학부 교수(오른쪽)와 최장욱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가 글로벌 배터리산업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솔 기자
강기석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와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지난 2월 초 정부로부터 ‘긴급 면담 요청’을 받았다. 반도체 인력 해외 유출로 시끌시끌하던 때였다. 정부가 국내 배터리 학계의 ‘최고수’로 불리는 두 사람을 찾은 건 배터리 분야에도 인력 유출이 만연한지, 그렇다면 막을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부의 예상과 정반대 답변을 내놨다. “현재 전 세계에서 배터리 최강국은 중국입니다. 우리 인력의 유출을 걱정할 게 아니라 거꾸로 중국 배터리 엔지니어를 데려올 전략을 짜야 할 때입니다.”강 교수와 최 교수는 지난해 9월 출범한 서울대 이차전지혁신연구소의 소장과 부소장을 각각 맡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개 첨단 테크놀로지 중 하나인 배터리 분야의 ‘연구 허브’로 서울대를 낙점했다. 최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들은 “배터리를 포함한 국가 에너지 산업 육성정책 등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소는 어떤 일을 합니까.

(강)“학계와 산업계를 연결해주는 연구 허브 역할을 할 것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셀 제조사들은 서로 경쟁관계여서 고충을 터놓고 얘기하기 힘들잖아요. 학교 울타리에선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죠.”▷중소기업들도 참여합니까.

(최)“연구소 산하 혁신연구센터(IRC)를 중심으로 대·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배터리 소재나 장비 스타트업들은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테스트할 곳조차 찾기 힘듭니다. IRC가 본격 가동되면 이런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 미국 에너지부(DOE)는 2017년 차세대 배터리 시장 선점을 목표로 ‘배터리 500 연구 컨소시엄’을 설립했다. 리튬이온배터리(LIB) 개발로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스탠리 휘팅엄 뉴욕주립대 명예교수가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다.▷중국은 어떻게 배터리 강자가 됐습니까.

(강)“산업 태동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적극 개입했죠. 공장을 공짜로 지어주고, 시장도 만들어주고…. 기업 입장에선 초기 투자비용이 거의 없어요. 전기차 판매 보조금도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에 줍니다. 그러니 배터리 기업이 세질 수밖에요. 세계 1위인 CATL의 연구원 수가 국내 배터리 3사 연구원을 합친 것보다 몇 배 많습니다. 양과 질 모두 중국이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차세대 배터리 시장도 그런가요.(강)“중국은 거의 모든 미래 기술에 관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위인 건 몇몇 소재와 공정 정도입니다.”

쩡위췬 CATL 회장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차세대 소듐이온배터리를 곧 상용화할 것”이라고 했다. 리튬을 나트륨으로 대체한 소듐이온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와 함께 대표적인 차세대 배터리로 꼽힌다. 쩡 회장은 전고체에 집중하고 있는 도요타를 겨냥해 “CATL은 전고체 연구에만 10년 넘는 시간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그는 FT에 한국 업체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이 무엇을 놓친 것입니까.

(최)“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중국은 배터리 제조 장비를 일제에서 중국산으로 내재화했어요.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기초체력을 잘 다졌다는 게 무엇보다 위협적입니다.”

(강)“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시나리오는 하이니켈 배터리 등 프리미엄 시장을 먼저 잡은 뒤 점차 가격을 낮춰 리튬·인산철(LFP)이 휩쓸고 있는 중저가 시장까지 가져간다는 거였죠. 그런데 CATL이나 비야디(BYD)가 ‘셀투팩’(cell to pack·팩에 직접 셀을 조립해 빈 공간을 줄인 생산방식)이란 제조 혁신을 통해 LFP의 성능을 대폭 끌어올려 저가는 물론 중고가 시장까지 장악한 것입니다.”

▷어떤 혁신인가요.

(강)“중국이 잘하는 LFP는 하이니켈 배터리보다 열에 강해 촘촘히 쌓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셀투팩 아이디어가 나온 배경이죠. 중국은 이걸로 LFP의 낮은 에너지 밀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도 LFP를 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강)“국내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이 LFP를 만들기로 했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있습니다. ‘우리가 LFP를 고도화해 중국을 이길 수 있느냐’ ‘고도화 기술로 LFP 시장이 더 커지면 결국 중국만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과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한국이 잘하는 하이니켈을 미드니켈로 확장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묘수가 안 보입니다.

(최)“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중국이 아무리 잘해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미·중 갈등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유럽에선 지난해 중국산 배터리가 한국산을 앞질렀어요. 하지만 미국에선 한국 배터리의 점유율이 70%에 달합니다.”

▷답이 사실상 정해져 있네요.

(강)“미국과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중국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합니다. 조만간 중국에 공급 과잉으로 파산하는 업체들이 나올 겁니다. 이때 우수 인력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수요 정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을 이겨내면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못 버티면 한국도 미래 성장동력의 한 축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정부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미국 DOE 같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가 필요해요. 배터리만 해도 현행 기술과 미래 기술을 각각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따로 하고 있죠.”

▷배터리 3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네덜란드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 같은 ‘슈퍼 을’ 전략을 착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중국이 못하는 걸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품질이 중요해요. 중국 배터리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꽤 있을 겁니다. 한국 배터리가 품질로 신뢰를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배터리 기술은 진화중…젊은 연구자들 혁신 주도

정부는 지난해부터 배터리를 포함해 12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기관을 만든다는 취지로 혁신연구센터(IRC)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배터리 분야 IRC로는 서울대 2차전지혁신연구소가 낙점됐다. 연구소 산하 기관인 서울대 IRC는 배터리 기초과학 연구 플랫폼으로서 초고성능 리튬 이온 전지와 차세대 배터리 시스템,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정부는 서울대 IRC에 2033년까지 매년 50억원의 연구비를 비롯해 행정 인력과 연구장비, 통계데이터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전담 연구지원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배터리 외에 정부가 국가전략기술로 정한 분야는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첨단 이동수단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분야 등이다.

서울대 2차전지혁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강기석 재료공학부 교수는 하이니켈 배터리 상용화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셀 제조사를 비롯해 에코프로 등 양극재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오랫동안 진행 중이다. 강 교수는 현재 차세대 하이니켈 양극 소재와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최장욱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리튬이온전지 소재와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연구가 전공 분야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가 자문하는 교수로 알려져 있다.

비교적 젊은 학자인 강 교수와 최 교수가 국내 배터리 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배터리 산업의 특수성과 연관이 깊다. 강 교수는 “앞세대 배터리 연구자들은 주로 수소연료전지에 집중했다”며 “한국 배터리 학계의 역사도 20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기술이 여전히 진화 중이라는 점도 젊은 학자의 활약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반도체 분야만 해도 삼성전자 등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배터리 산업은 제조 기업의 수율뿐만 아니라 차세대 제품을 어떤 소재를 활용해 만들어내느냐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 강기석 교수

△1976년생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재료공학 박사
△KAIST 재료공학과 교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2014~)
△서울대 차세대이차전지센터장(2021~)
△이달의 과학기술인상(2016)
△대한민국 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2019)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2023)

■ 최장욱 교수△1975년생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캘리포니아공대 화학공학 박사
△KAIST EEWS 교수(2010~2017)
△서울대 화학공학부 교수(2017~)
△대한민국 젊은 과학자상 (2015)
△세계의 영향력있는 연구자 (2017)
△대한민국 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2024)

박동휘/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