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순이익 반토막에도…농어민 지원에 올해 315억 쓴다

통화·외화정책으로 번 돈
농어촌 예금이자 지원 논란
한국은행이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반 토막 나는 상황에서도 수백억원을 농어민 이자 지원 기금에 출연하기로 했다. 발권력을 동원해 현금을 찍어내는 한은이 통화 정책을 시행하고 외화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번 돈을 특정 직역 지원에 쓰는 게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한은이 최근 공개한 2023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3622억원 중 315억원을 농어가목돈마련저축기금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당기순이익이 2022년 2조5452억원에 비해 46.5% 감소했지만 이 기금 출연액은 270억원에서 16.7% 늘렸다. 한은은 이 금액을 올해 5회에 걸쳐 해당 기금에 납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2015년부터 9년간 이 기금에 출연한 금액은 3210억원에 이른다.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발행한 뒤 이를 금융회사 및 정부에 대출하거나 국공채·외화자산 매입,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에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한은 적립금과 국고 등으로 귀속된다.

유일한 예외 항목이 농어가목돈마련저축기금 출연이다. 이 기금은 농어가의 재산 형성을 돕기 위해 조성됐다. 은행이 농어민 대상으로 목돈 마련 저축 등 높은 예금이자를 주는 상품을 판매한 뒤 이차보전을 받는 식이다.이 기금에 대한 한은의 출연은 법에 따른 것이다. 농어가저축법에 ‘필요한 금액을 한은이 잉여·적립금에서 출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같은 한은의 농어가 저축 지원 의무는 1976년부터 시작됐다. 근로자 재형저축 지원 항목에 농어가를 추가하면서부터다. 이 내용은 1985년 농어가저축법으로 독립했고, 근로자 재형저축 지원이 1995년 종료된 이후에도 유지되면서 올해까지 49년째 이어지고 있다.

도입 당시엔 근로자 재형저축 혜택에서 배제된 농어민을 지원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근로자를 역차별하는 제도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정부도 2003년 이 법의 폐지법률안을 제출했지만 농가 반발과 농어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한은이 왜 이 기금을 내야 하는지에 의문이 있다”면서도 “법이 강제하고 있어 한은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