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해서웨이의 모성스릴러 … "모성은 사회적 미신이자, 강요된 성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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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나무 덤불을 사이에 둔 두 집. 두 집의 구성원들은 둘도 없는 이웃이자, 친구다. 두 아이들, 테오와 데미안, 엄마들인 앨리스 (제시카 차스테인)와 셀린 (앤 해서웨이), 그들의 남편들 역시 하루를 마무리 할 때쯤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집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는 막역한 친구 사이다. 특히 엘리스의 아들인 테오와 셀린의 아들인 데미안이 그러한데, 이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서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단짝이다.
어느 날, 데미안이 감기에 걸려 학교를 쉬고 집에 머물게 된다. 늘 그렇듯, 셀린은 집 안 청소를 앨리스는 정원을 가꾸는 사이, 데미안은 자신이 만든 새장에 새를 넣으려다 난간에서 떨어진다. 앨리스는 위태위태한 데미안을 구하기 위해 난간에서 떨어지라고 외치며 아이를 달려갔지만 한 발 늦은 것이다. 이 사고로 데미안은 죽게 되고, 나머지 두 집의 가족들 5명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영화는 알록달록한 2층집과 화려한 홈 드레스를 입은 두 엄마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행복한 서막으로 전개되지만 데미안의 죽음과 함께 곧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본체를 드러낸다. 브누아 들롬의 <마더스>는 엄마의 사랑을 그리는 가족 멜로드라마가 아닌, 모성의 극단과 허구를 경고하는 모성 스릴러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미워도 다시 한번>, <맨발의 기봉이>, <그것 만이 내 세상> 같은 한국 영화들처럼, 할리우드에서도 모성을 강조하는 수 많은 영화들이 양산되어왔다. <스텔라 댈러스>, <밀드레드 피어스>를 포함한 이른바, ‘모성 멜로드라마 (maternal melodramas)' 들은 1930년대와 40년대의 할리우드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장르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강인함을 보여주며 ‘모성 신화’를 견고히 한다는 점이다. 대중 문화에서 모성은 아이와의 교감과 경험을 통해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 아닌 (여성이라면) 본능적으로 생겨나거나 부여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성은 아이의 출생과 함께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준비하는 신적 존재로 변모하는 것, 혹은 변모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마더스> (원제는 Mothers’ Instinct, <어머니들의 본능>이다) 는 그러한 전통적인 ‘모성’의 이면을 조명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이의 죽음을 맞이한 엄마, 그리고 그녀의 선택을 통해 모성이 아이의 운명을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부과하는 사회적 미신이자, 강요된 성역할임을 시사 한다. 예를 들어 아들을 보내고 난 후 셀린의 남편은 셀린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그녀를 죄악시 한다. 전업주부인 그녀가 “집에서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셀린은 남편의 비난에 동의를 하면서도 정작 친구인 앨리스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 앨리스가 정원에서 데미안이 난간에서 서 있는 것을 보고도 더 빨리 그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역시 비슷한 생각으로 자책을 하고 있던 앨리스는 동시에 그러한 셀린이 자신의 아들인 테오에게 복수심으로 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셀린의 앨리스를 향한 원망 (이는 부분적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감당할 수 없기에 택한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과 엘리스의 셀린을 향한 두려움은 영화 후반을 향하며 점차로 고조되고 급기야는 상상치도 못한 비극으로 치닫으며 영화적 반전을 형성한다. 이번 <마더스>로 연출 데뷔한 브누아 들롬은 <그린 파파야의 향기>, <시클로> 를 포함한 수 많은 걸작들의 촬영을 맡았던 촬영감독 출신이다. 영화는 대부분의 데뷔작이 그러하듯이, 매끄럽다기 보다는 성긴 구석이 더 많지만 ‘모성 신화의 철저한 파괴’라는 흥미롭고도 파격적인 주제를 비교적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강요된 모성으로 인해 두 가정이 시체더미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후반은 그 어떤 호러 영화의 클라이맥스 보다도 더 섬찟하고 강렬하다. 이러한 파격적인 엔딩에 있어서 로맨틱 코미디의 아이콘, 앤 해서웨이의 기여가 크다. 네러티브의 전개에 따라서 점점 어두워지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은 마치 점점 부패해가는 사과의 단면처럼 점층적이고 위협적이다. 과연 (배우를 포함한) 영화 자체의 파괴력이 감독의 연출력을 넘어서는 흥미로운 예가 아닐 수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