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적 생산력" 내건 中, 경제 활로 찾을까 [글로벌 핫이슈]

사진=XINHUA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경제 위기를 타개할 경제 정책으로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제시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국 경제 장기 전망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낮은 출산율, 부동산 위기, 소비 둔화 등 악재로 인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예산이 고갈될 것이란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투자가 곧 효과를 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 질적 생산력' 역설한 시진핑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의 발언인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인용해 중국 경제가 갈림길에 섰다고 진단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참석해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시 주석이 새로운 질적 생산력이란 개념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9월 헤이룽장성을 방문하며 이런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신흥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심한 경기 둔화를 겪고 있는 지역에서 새로운 경제 발전 계획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헤이룽장성의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은 지난해 2.6% 증가했다. 중국 경제성장률(5.2%)의 반토막이다. 동북 3성의 출산율도 중국 내에서 밑바닥을 찍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냉각했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겠다고 나선 셈이다.
시 주석이 제시한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두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렸다. 추상적인 개념인 데다 명확한 계획을 담고 있지 않아서였다. 지난 1월 시 주석은 공산당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이 개념을 재차 설명했지만, 명쾌한 해설은 나오지 않았다.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의 경제 정책을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학과 로버트 솔로우의 성장론을 통해 해석했다. 솔로우는 자본, 노동, 인적 자원 등 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요 요소의 생산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성장이론을 제시했다. 기술 등 무형 요소도 함께 발전하면서 경제 성장이 원만하게 이뤄진다.

시 주석은 여기에 마르크스가 제시한 새로운 생산력이 확대되면서 달라지는 체제의 변화를 엮었다. 수공업이 발달한 뒤 봉건 영주 제가 확산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된 뒤 부르주아가 탄생했다는 이론이다. 중국도 새로운 생산력을 찾으면 사회 체제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마르크스와 솔로우의 개념을 뒤섞은 혼합물인 셈이다. 배리 노턴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를 두고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을 뒤섞은 '괴상한 잡종 정책'이다"라고 비판했다.


中 경제 해결은 제조업 혁신?

중국이 신성장동력을 염원하는 이유는 경기 둔화 때문이다. 지난 30여년 간 중국은 노동과 자본 증가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켰다. 싱크탱크인 아시아생산성기구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 인구는 1억명 늘었고, 자본 보유량은 2001년 GDP의 258%에서 2021년 349%로 증가했다. 자본과 인구가 함께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률도 가팔라졌다.하지만 최근 들어 두 요소의 성장률이 정체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행정부) 발전연구센터는 최근 발표한 ‘중국발전보고 2023' 보고서에서 지난 12년 동안 중국의 노동연령 인구·전체 인구가 정점을 찍은 이후 인구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중국 인구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자 부동산 수요도 감소했다. 부동산 투자가 감소하자 도시화 속도는 줄었다. 토지 개발로 얻는 수익이 줄자 부동산 개발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신뢰는 붕괴했다. 자본의 생산성이 감소한 것이다. 인구와 자본 모두 생산성에 한계가 보이자 시 주석이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는 새로운 질적 생산력의 핵심이 제조업에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경제 이론을 역행하는 발상이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이 제조업을 통해 성장한 뒤에 서비스업이 활성화된다. 출산율이 줄고 자본생산성이 체감하게 되면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주력해서다. 내수 경기가 확대된 뒤 금융, 관광, 문화 산업의 수익성이 제고되는 식이다. 중국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6년 33%대에서 2020년 25%대로 감소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제조업을 더 육성할 방침이다.
중국 정부는 기술 진보에 주력했다. 차세대 제조업을 선도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2016년부터 예산을 쏟아부었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 사물인터넷(IoT), 신재생에너지 등에서 혁신의 기회를 찾겠다는 의도였다. 2020년까지 5년간 중국 정부는 과학기술에 2조 9000억위안(같은해 GDP의 2.8%)을 투입했다. 세금 감면, 저리 대출 등을 포함하면 각종 부양 정책의 정부의 비중은 60%를 넘겼다. 노턴 교수는 "역사상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 지원정책 중 가장 큰 규모였다"라고 평가했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 넣듯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성과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호주의 싱크탱크인 호주 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인류의 64가지 핵심 기술 중 11가지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논문 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영향력 측면에서도 53가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5세대 이동통신(5G)을 비롯해 전기차, 바이오 제조, 나노 공학 등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다.

세계지식재산기구(WPO)가 조사한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도 중국은 지난해 12위를 차지했다. 중국과 1인당 GDP가 비슷한 국가들은 60위권에 머물렀다. 기술 인프라와 특허 출원 수, 논문 인용 횟수 등에서 다른 국가를 추월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중국 당국은 석연치 않은 입장이다. 과학기술이 진보하는 속도에 비해 실체가 있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다. 지난 2022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며 반도체 수입 경로가 차단된 뒤 이런 지적이 나왔다. 반도체 산업이 사실상 해외 부품업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같은 해 오픈AI가 AI 챗봇인 챗 GPT를 선보이자 산업 경쟁력마저 뒤처져 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산업 생산성도 점차 둔화했다. 2006년 중국 정부는 15년간 경제 성장에서 기술의 기여도를 6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중국 경제성장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밑돌았다. 예상과 달리 기술 진보가 경제성장으로 직결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혁신 전략이 효과를 내기까지 최소 5~10년은 걸릴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부어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카네기 평화재단에 따르면 중국의 경기가 확장하고 시장이 활성화된 경우 적자가 나는 스타트업에 앞으로 5년 이상은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지난 2010년부터 10년간 중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적자가 쌓이는 구간인 '데스밸리'를 벗어나 대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다만 현재 중국 경제는 2010년대와 달리 침체에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 정부도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0년부터 4년간 중국 당국의 기술 혁신 자금의 원천인 지방정부 기금은 80%가량 감소했다.매트 시한 카네기 평화재단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중국 경제가 계속 둔화하게 되면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고 혁신 전략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며 "기업들도 결국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주력하고, 지방정부는 앞으로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