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예술가는 붓 대신 기타를 들었다…그림에서 들리는 ‘Space Od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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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환 개인전 ‘So Near So Far’
BB&M 갤러리에서 5월4일까지
/BB&M제공
‘포스트 민중미술’ 세대를 대표하는 배영환(55)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Space oddity’가 발매된 1969년 태어났다. 작가의 꿈을 그리던 1990년대 청계천 노점상에서 팔던 불법 복제 음반으로 듣고 나서부터 미지의 세상을 마주한 이야기를 다룬 이 노래에 푹 빠졌다. 이후 30여년간 작가로 활동한 배영환은 문득 자신이 쌓아온 예술세계의 시작점이 궁금해졌다. 자신과 나이가 같은, 평생 즐겨 들은 이 노래를 머릿속에서 되뇌이며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낸 이유다.서울 성북동 BB&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배영환 개인전 ‘소 니어 소 파’(So Near So Far)는 한국 현대화 과정에서 벌어진 사회적 문제점을 짚어온 배영환이 방향을 틀어 현대화를 겪어온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전시다. 낭만 가득한 취향을 오롯하게 드러내는 ‘올드팝’을 작업 재료로 삼았다. ‘Space oddity’와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명곡인 닐 영의 ‘heart of gold’,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다.
전시를 상징하는 대표 작품은 표제작인 ‘So Near So Far’다. 서툰 솜씨지만 직접 기타로 연주한 세 곡을 배경음악으로 깐 로드무비 형식의 영상작품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배영환은 “‘Space oddity’는 내가 낯설어지는 순간, ‘heart of gold’는 변치 않는 고결한 자아를 찾겠단 의지, ‘Wish You Were Here’는 이 모든 걸 겪은 다음 당신과 평온하고 싶다는 이야기”라며 “나름대로 내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전시장 벽 면에 걸린 평면작품들은 표제작에서 파생된 작품들로, 제작 방법이 흥미롭다. 뇌파 측정기를 끼고선 세 곡을 연주할 때 발생한 그의 뇌 파장 데이터로 만들었다. 이 데이터를 3D 프린터에 입력해 코딩을 거치면 하늘에서 산등성이를 보듯 울퉁불퉁한 등고선이 나오는데, 이를 부조로 만든 것이다.금박 사이엔 푸른색과 보라색의 색감이 도드라진다. 난도가 높은 연주 부분에선 스트레스 파가 나오고, 연주가 잘 이뤄지는 지점이나 배영환의 감정 자극하는 가사가 흘러나올 땐 이완기 뇌파가 감지되는 것을 색깔로 표현한 것이다. 배영환은 “예술이나 뇌과학이나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해 뇌파를 측정해봤다”고 했다. 동양화로 미술 기초를 다진 화가답게 뇌파로 자신의 머릿속을 추상화한 것이다.부서진 병 조각들과 그 위에 놓인 투박한 기타, LP 대신 돌덩이가 조용하지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턴테이블이 설치된 ‘처음처럼’은 전시 하이라이트다. 레드 제플린이나 이글스 같은 옛 밴드의 영상에서나 볼 수 있을 트윈넥 기타가 눈길을 끈다. 도시 개발로 철거된 동네에 버려진 가구와 자개장을 수거해 배영환이 직접 제작했다. 그는 “2000년 이후 작업을 한꺼번에 뭉쳐놨다”고 했다.
옆에 놓인 턴테이블에 대해선 “두개골과 비슷한 모양의 돌덩이니까 내 머리나 마찬가지”라며 “편하게 말하면 자화상 같은 거다”라고 했다. 전시장 곳곳에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뇌파로 만든 작품이 걸렸단 점에서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오브제라 할 수 있다.작품의 제작 방식이 남다르고 안에 담긴 메시지를 쉽게 파악하는 게 쉽지는 않다. 다만 흘러나오는 명곡들을 들으며 작품을 따라 내면을 관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양혜규, 이불, 김범 등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한국 동시대 미술의 거장이 된 작가들도 전시장을 찾아 작품들을 눈여겨보고 갔다고 한다. 전시는 5월 4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