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급등'에 장기집권 피로감…에르도안 외면한 표심

"야당 승리, 오직 경제로만 설명"…금리 8.5→50.0% 인상에도 물가 못잡아
범여권 표 분산돼 이스탄불·앙카라 탈환 기대 물거품
'종신집권'까지 바라보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지방선거에서 패한 것은 환율급등과 이에 따른 고물가로 민심이 악화한 탓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1일 친정부 성향 현지 일간 휘리예트는 칼럼에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이 승리한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오직 경제로만 설명될 수 있다"며 의회가 이같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초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시장을 지내며 정치적 기반을 쌓은 이스탄불을 이번에 탈환할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결국 경제 지표에 발목을 잡혔다고 질책한 것이다.

지난 수년간 유례없는 고물가와 리라화 폭락에 시달리면서도 저금리를 유지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작년 5월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 이런 비정통적 통화정책에서 전격 '유턴'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8.5% 선에 머물던 기준금리를 이달 초까지 9차례에 걸쳐 잇따라 인상하며 50.0%까지 뒤늦게 끌어올렸으나 이미 고삐가 풀린 물가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2월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대비 67%를 기록했고 2007년 1달러당 1.1리라 선이었던 리라화 환율은 1일 현재 32.4리라까지 올랐다.

리라화 가치 폭락에 따른 환율 급등은 곧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장바구니 물가와 주거비용 등이 더 가파르게 오르는 탓에 상점들은 수시로 가격표를 고쳐 달고 있지만 이를 임금 상승률이 따라가지 못해 서민층은 더욱 빈곤해졌다.

야당이 강세였던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 대도시의 유권자는 물론 지방 도시까지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확산했다.

여기에 22년간 집권하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당 AKP에 대한 피로감이 더해져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이 야당에 표를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엠레 페케르는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집권당을 심판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선거에서 AKP 등 여권이 산업 지역인 북서부의 부르사와 발르케시르 등 19곳을 잃은 것은 임금 근로자의 생활고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범여권 표 결집에 실패한 것도 AKP의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슬람 색채가 강한 신복지당(YRP)은 과거와 달리 이번 지방선거에 자체 후보를 내세워 총 81개 광역단체장 선거구 중 2곳에서 승리를 거뒀는데 이 때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 표심이 분산됐다.
이번 AKP의 전국 득표율은 35.48%로 야당 CHP(37.76%)에 뒤졌으나 3위 YRP의 6.19%를 단순 합산하면 산술적으로 CHP보다 3%포인트 정도 높다.

아울러 작년 대선(87%)보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8%포인트가량 떨어졌는데 전문가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유권자 상당수가 여당 지지자라고 분석했다.

반면 지난 대선 당시 응집력을 보이지 못했던 야권 성향 유권자는 이번 지방선거 주요 승부처에서 CHP 유력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2019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CHP의 에크렘 이마모을루 지지를 선언해 승리에 일조했던 친쿠르드족 성향의 인민민주당(DEM)은 이번에 자체 후보를 냈으나 쿠르드족 출신 상당수가 이마모을루에게 투표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해설했다.

DEM도 이번 선거에서 4위인 5.70%를 득표하며 남부를 중심으로 총 10개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범여권에서는 YRP가 득표율 3위를 기록하고도 2곳 승리에 그치는 등 사표 비율이 훨씬 높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