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BMW도 팔았어요"…중국인들 목숨 건 '대탈출'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美 이민 증가율 1위는 中…"정치 종교 자유와 일자리 위해"
중국서 에콰도르 거쳐 미 국경까지 4000㎞ 대장정 감행
사진=AP
미국으로 가는 중국 이민자 수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미국 국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불법 경로로 미국행을 택해 미·중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10배 이상 늘어난 중국 이민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체포된 중국인 수는 3만7000여명이었습니다. 전년 대비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대부분 합법 이민이 아닌 불법 이민이나 망명자들입니다. 이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가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정치·종교적 배경이 주된 이유로 꼽힙니다. 미국 국경에서 체포된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중국의 전면적인 봉쇄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보여주며 '종교적 박해'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모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중국 내 통제가 너무 강해진 데 대한 반발입니다.경제적 요인도 큽니다. 중국 이민자들은 중국 내 일자리가 없어져 먹고 살기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합니다. 청년 실업률을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중국 노동시장은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반면 미국엔 일자리가 넘쳐납니다. 중국인 우모씨는 CNN에 "미국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중고 BMW를 팔고 지인들로부터 1만 위안(1450달러)를 빌렸다"고 말했습니다. 한 중국인 여성은 CBS에 "미국 방문비용 1만4000달러를 충당하기 위해 집을 팔았다"고 얘기했습니다.
전재산을 털어 이들이 택한 경로는 에콰도르에서 시작하는 중남미 대장정입니다. 에콰도르는 중국과 무비자 협약을 체결한 국가입니다. 항공료만 있으면 비자 없이 일단 남미에 안착할 수 있는 곳이죠. 하지만 에콰도르에 내리는 순간부터 고생은 시작됩니다.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 파나마, 멕시코 등 6개국을 거쳐 미국 국경까지 이동할 거리는 3700㎞(2300마일)에 달합니다. 그 거리를 대부분 도보로 이동합니다. 버스와 배를 타기도 하지만 중남미 정글과 밀림에선 무작정 걸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죽고, 다치고, 사기와 소매치기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합법 이민 막히자 손쉬운 난민 경로 택해

사진=로이터
중국인들이 무작정 미국 국경으로 향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비자 받는 게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빡빡해진 비자심사와 미·중 갈등에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중국인이 미국의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획득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가 됐습니다. 2021 회계연도에 중국인 중 미국 방문 비자를 거부당한 비율은 80%에 달했습니다. 2022년 이후에 조금 나아졌지만 팬데믹 이전에 비해 비자 승인 비율은 90%나 떨어졌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난민과 망명에 대해 관대해진 것도 중국인들이 불법에 가까운 육로 이민을 택한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때만 해도 불법 이민자들을 즉각 추방할 수 있는 '타이틀 42'가 건재해 미국 국경 검문은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들어 '타이틀 42'가 사실상 사문화됐습니다.

중국인들은 이 틈을 이용해 미국 망명 대열에 대거 합류하고 있습니다. 망명을 신청하면 일단 수용 시설에 들어가 180일 동안 미국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라큐스 대학에 따르면 중국인 망명 신청이 수용되는 비율은 67%였습니다. 설사 망명이 거부되더라도 대부분 미국에 잠적해 추방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로 남습니다.

망명 수용과 난민 지위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중국인 수만 공식 통계로 15만명을 넘었습니다.

이민 미·중 관계에 시한폭탄되나

사진=AP
중국과 인도, 멕시코를 중심으로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미국 노동시장에서 이민자들의 입지는 확고해졌습니다. 외국 태생 노동자는 미국 노동시장의 19%를 차지했습니다. 5명 중 1명이 이민자 출신이란 얘기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2021년만 해도 그 비율이 17.3%였습니다.

이민자들은 팬데믹 이후 일손이 부족한 미국 노동시장에서 소방수 역할을 했습니다. 소비를 촉진시키고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론 양상이 다릅니다. 급증하는 이민자들은 기존 미국인들의 기득권을 위협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그는 "이민 증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며 "그들의 시간당 임금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지난 2월 조지아대에서 발생한 여학생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베네수엘라 출신의 불법 이주민으로 드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불법 이민의 단속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만약 앞으로 중국계 이민자가 범죄에 연루되면 공화당을 중심으로 반 이민 여론이 들끓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큽니다. 미국은 1882년에 중국 이민을 거부한 '중국인 배제법'을 통과시킨 전례가 있습니다. 이 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의 주적으로 등장하면서 1943년에야 폐지됐습니다.

이민자가 급증하고 국경 심사 관문에 허점이 많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민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서 유권자의 20%가 이민을 대선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았습니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이 비율은 13%였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미국 내 이민의 명암 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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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