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1000살까지 살면서 바다에서 서핑을 할 것이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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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영국의 생물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는 1000살까지 살 수 있는 인간이 이미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아주 건강한 삶을 사는 상태로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000살이 된 인류는 휠체어를 탄 모습이 아니라,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서핑을 하는 모습에 가깝다.
의학 교수와 철학 교수 공저
기술 진보와 인간 진화의 미래
1000살까지는 아직 조금 급진적으로 보일진 몰라도, 유전자 편집 기술이나 몸속을 돌아다니며 암세포를 미리 감지하는 초소형 로봇 등 인류의 노화 방지와 수명 연장을 위한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다. 이처럼 노화와 죽음 등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잠재적 위험과 윤리적 문제 등을 연구하는 운동을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한다. 최근 나온 신간 <호모 엑스 마키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인류에게 가져오는 기회와 위험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모 엑스 마키나'는 '기계가 된 인간'이란 뜻으로, 유전공학 기술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한 인간이다. 의학 교수이자 항노화 연구 전문가 베른트 클라이네궁크와 철학 교수 슈테판 로렌츠 조르그너가 함께 썼다. 클라이네궁크는 기술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조르그너는 기술 변화에 따른 문화적 흐름과 전통적 가치관의 변화를 주로 다룬다. 트랜스휴머니즘과 유전자 기술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유전자 진단은 지난 20년간 일상처럼 이뤄졌다. 산전 진단이 대표적이다. 임신 중 태아 검사는 이제 흔한 일이 됐고, 유전자 질환이 발견되면 태아를 포기하는 일도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다운증후군으로 불리는 21번 삼염색체성 장애 아이가 태어나는 건 드문 일이 됐다. 이미 우리는 유전자 진단만으로도 아이를 낳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들은 부모가 자녀의 건강을 위해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행위가 큰 틀에서 교육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녀가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교육하는 일이, 자녀나 후손이 잘 살 수 있도록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로 개선해주려는 유전자 편집·변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설명이다.시험관 아기 같은 체외 수정 과정의 배아 단계에서 유전 질환을 인지하고 치료할 수 있는 착상 전 유전 진단이 대표적이다. 원하지 않는 유전자는 제거하고, 필요하다면 원하는 유전자를 추가할 수 있는 이른바 '맞춤 아기'의 탄생은 더이상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이 트랜스휴머니즘이 가져올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예견하는 건 아니다. 발전한 기술의 혜택을 입을 만한 재산과 건강한 유전자를 갖지 못한 사람은 사회에서 차별 혹은 낙오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이른바 '유전 강화 프로젝트'가 우생학을 떠올리게 한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한 주제를 놓고 두 저자의 엇갈린 의견과 토론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컨대 두 사람은 중국 최초로 유전자 변형을 통해 태어난 신생아를 바라보는 입장이 정반대다. 개별 사안에 대해 별도로 각자의 입장을 서술한 뒤 이어지는 둘의 대담은 기술 미래 시대에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