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삼성전자 노조의 '소탐대실'

주력 사업 위기에 빠진 회사에
임금 재협상 요구하며 파업 엄포

황정수 산업부 기자
“파업하면 가장 먼저 공격하겠다.” “(임금협상 타결) 발표를 철회하면 살려줄 수 있다.”

1980년대 파업 현장에서 나온 구호가 아니다. 지난 1일 삼성전자의 반도체(DS) 부문 본사 역할을 하는 경기 화성 부품연구동(DSR)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소속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 노조원이 내뱉은 것으로 알려진 폭언들이다.대상은 근로자 대의 기구인 ‘노사협의회’ 소속 삼성전자 직원들. 이날 노조원 200여 명은 DSR 로비에 모여 시끄럽게 투쟁가를 불렀고, 노조 집행부는 경계현 DS부문장(사장)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노조원들이 화난 이유는 임금협상 최종 타결 때 배제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사측과 노사협의회는 지난달 29일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평균 인상률은 5.1%. 지난해 평균 인상률인 4.1%보다 높고, 올해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2.6%)의 2배 수준이다.

전삼노는 반발했다. 노조가 내건 조건(임금 6.5% 인상+특별성과급 200% 지급)이 수용되지 않아서다. 최근 노조 집행부는 “사측이 일방적인 발표를 철회하라”며 각 사업장을 돌면서 파업 엄포를 놓고 있다.산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노사협의회와 임금 인상안을 합의한 것에 대해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은 직원 과반으로 구성된 노조가 없을 경우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협의하고 회사가 임금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일 오전 11시 기준 전삼노 조합원은 2만4876명. 작년 말 기준 삼성전자 국내 정규직 12만4207명의 20%다. 삼성전자 사측이 과반에 못 미친 노조와 임금 인상률을 합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삼노의 임금 인상 투쟁에 대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 약 15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반도체 사업에선 1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했다.

전삼노 집행부는 일련의 투쟁 활동에 대해 “삼성전자를 사랑하고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회사에 “돈 더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건 표리부동이란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이외의 사업 부문 직원들 사이에선 “반도체 직원들이 무조건 보상을 잘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특권의식을 가진 것 같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회사를 먼저 정상화한 뒤 과실을 요구하는 게 누구나 동의하는 합리적인 순서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거위의 배를 가른 기존 노조들의 구태가 삼성전자에서 되풀이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