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가 실패하지 않은 이유… 'SDV' 진화의 조각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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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 기고문애플이 10년간 공을 들였던 ‘애플카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비판과 아쉬움의 목소리도 많이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한 층 더 성장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틀을 많이 남겼다는 것이죠. 미국 시사주간지 디애틀란틱은 “애플카는 한 대도 팔리지 않았지만, 자동차 산업에는 큰 혁명이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애플카의 주된 목표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카’, 지금으로 말하면 SDV(Software Defined Vehicle)에 가까웠습니다.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시장에 ‘소프트웨어’라는 화두를 던진 기업 중 하나였죠. 실제 애플카 프로젝트는 2014년 스마트폰을 자동차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애플 카플레이’를 선보였고, 차량에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SDV 시장은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오는 2032년 글로벌 SDV 시장은 2,490억달러(약 332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연평균 성장률은 22.1%에 달합니다. 실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은 현재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기술에 방점을 찍습니다. 애플카는 끝났지만 여기서 파생된 다양한 아이디어와 인력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자동차 산업을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을 위한 준비단계 ‘SDV’
자동차 산업은 점차 완벽한 SDV로 진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SDV는 직역하면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입니다. 소프트웨어가 주행 성능은 물론 편의, 안전기능, 차량의 품질 나아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까지 규정하는 형태를 말하죠.자동차에는 매우 다양한 기능들이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결함이 발생하면 서비스센터를 찾아 직접 수리를 맡겨야 했습니다. 완벽한 SDV 세상에서는 이같은 번거로움이 사라집니다. 소프트웨어로 하드웨어가 통제되기 때문에 무선 업데이트만으로 결함을 잡을 수 있습니다. 유사한 형태가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운영체제(OA)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애플이 ‘애플카’ 개발을 선언했던 것도 자동차가 추후 스마트폰과 같은 형태로 하드웨어가 제어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SDV 시대에는 스마트폰처럼 자동차도 인터넷에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선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합니다. 이것은 OTA(Over the air) 기능이라고 합니다. SDV로 가는 전제조건 중 하나입니다. 자동차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이 OTA 기능을 통해 무선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죠.
이제 완성차 업체는 차를 팔고 서비스센터에 역할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서비스 업체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히려 차를 파는 것 보다 이후 업데이트 된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이 더 큰 수익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예가 테슬라죠. 테슬라 차량은 오토파일럿 등의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SDV에는 더 다양한 기능이 소프트웨어 형태로 접목될 수 있습니다. 연료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연비가 개선될 수도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수신하고, 타 차량과의 통신 기능을 접목하면 진보한 자율주행도 가능해집니다. 결론적으로 완전자율주행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 SDV로의 전환은 필수조건이 됩니다.
SDV 진화의 조건
자동차가 SDV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난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제어시스템의 통합입니다. 컴퓨터 시스템의 전체 설계를 흔히 ‘아키텍처’라 부릅니다. 자동차에도 다양한 기능을 배치하는 전기전자(E/E)적 아키텍처가 적용됩니다.과거 자동차의 아키텍처는 ‘분산형’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달리 자동차는 제어해야하는 하드웨어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스마트폰은 운영체제 하나로 하나의 하드웨어를 제어합니다. 하지만 자동차에는 스마트키, 브레이크, 사이드미러 등 각각 다른 기능들을 하는 하드웨어가 존재합니다. 여기에는 기능별로 전자제어유닛(ECU)이 필요합니다. 이같은 ECU들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하청업체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개발됐습니다. 기능별로 운영체제(OS)가 다르고 작동 버튼도 제각각입니다. 각 기능이 차량 안에 모두 독립적으로 분산된 형태의 아키텍처입니다. 이럴 경우 OTA를 통한 무선 업그레이드가 매우 어려워지죠. 하지만 테슬라의 전기차 이후 이같은 분산형 구조는 중앙집중형 구조로 컨트롤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테슬라에는 물리적 버튼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태블릿에서 자동차의 모든 기능들이 작동됩니다. 다양한 ECU를 통합 컨트롤 하는 중앙집중형 컨트롤 유닛이 존재하고 이 유닛의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별 하드웨어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죠.
SDV로 가기 위해 현재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이같은 집중형 설계구조를 검토하고 채택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은 기능이 비슷한 것들을 묶어 상위 제어유닛을 두는 도메인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파워트레인 등 큰 틀에서 유사한 ECU를 묶어 도메인컨트롤유닛(DCU)으로 통합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부터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들이 더 중요해집니다. 기능별로 세부기능을 제어하는 적합한 운영체제 개발이 필요합니다. 큰 틀의 기능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통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차량의 성능과 단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됩니다. 소비자 접점이 높은 다양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의 기능이 늘어날수록 이를 제어하는 통합 소프트웨어도 더 복잡해지는 구조입니다. 보안도 중요한 영역 중 하나입니다. 딜로이트 글로벌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기업 최고투자책임자(CTO) 75%가 추후 투자니즈가 가장 큰 기술분야로 ‘사이버보안’을 꼽았죠. 여러 가지 기능이 통합되고, 통신이 이뤄지는 SDV에서 보안 소프트웨어는 안전과 직결되는 요소입니다. 과거에는 한 번의 해킹으로 한 가지 기능을 제어할 수 있었다면, SDV에서는 상위 유닛 해킹이나 통신 게이트웨이 해킹시 자동차 전체를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춰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2022년 7월부터 자동차 사이버 보안 국제 기준을 제정한 바 있습니다. 유럽출시 신규차종의 경우 해당 인증에 따라 사이버보안 관리 시스템과 무선 업데이트에서 보안 기능 탑재가 의무화 됐습니다. 점차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이같은 소프트웨어 보안에 따른 대응도 또 하나의 과제가 됐습니다.
‘SW’ 기술 확보에 총력
SDV로의 전환은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상당히 큰 변화입니다. 우선 밸류체인 자체가 송두리째 바뀝니다. 기존에는 대규모 생산에 특화된 협력업체 중심의 수직계열 납품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러 기능이 통합되면서 협력업체와 완성차업체의 협업이 매우 중요해지고 잇습니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설계 과정에서 자동차 전체 시스템과 성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위상도 높아집니다. 과거에는 1차 협력업체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제조 협력사들이 소프트웨어 업체에 맞춰야 하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소프트웨어 기술 내재화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룩스리서치에 따르면 차량 1대 생산 비용 중 소프트웨어 투입 비중은 2000년대 20% 수준에서 2030년에는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재확보가 관건입니다. 자동차 부분 소프트웨어 인재는 글로벌 시장을 놓고 봐도 매우 드문 편입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자동차 부분의 독자적인 개발 플랫폼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는 애플 서비스 핵심 인재들을 지난해 임원으로 영입한 바 있습니다. 아우디는 25년까지 IT 전문인력을 최대 2,000명까지 추가 영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 역시 공격적으로 소프트웨어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18조원을 투입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2022년 인수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그룹내 SDV 사업 센터로 두고 공격적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KG모빌리티도 별도의 SW 전담조직을 통해 SDV 전환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이버보안솔루션 업체인 페스카로 등 IT 기업들과 전략적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외부와의 협업도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김태호 |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투자본부 팀장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관찰하고, 이를 주도하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 마중물을 공급합니다. 그래서 매일 스타트업을 만나 혁신적인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스타트업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여러 경험에서 쌓은 넓고 얕은 지식이지만 스타트업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