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방안보단 내용 좋으면 그만"…포퓰리즘 空約의 반복

현장에서

원종환 정치부 기자
여러 차례 총선을 치른 경험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공약은 실천 방안보다 좋은 내용을 앞세우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오는 10일 총선과 관련해 ‘쏟아지는 각종 공약의 재원 마련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내용만 확실하면 예산이나 재원 마련을 위한 국민들의 관심은 적어진다”며 “짧은 총선 기간을 고려하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게 공약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을 고민하는 것은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다.

국회의원과 총선 출마자 대부분의 인식 역시 이 중진 의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에게 공약 이행 절차와 기간, 재원 조달 방안 등의 제시를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 66조가 국회의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해당 법안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공약 실현 방법을 공보물에 못 박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법 적용 대상이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 선거’로 좁아졌다. 총선에서 후보자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어떤 공약을 남발하더라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이유다.그러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에 출마하는 총선 후보자는 4개 지자체와 관련해 어떤 공약을 던지든 실현 방안을 밝힐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춘천시장이나 철원군수에 출마하면 공약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이에 선거관리위원회는 2016년 총선에서도 공약 비용을 의무 추계하도록 하는 정치 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여야가 처리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3일 각 정당에서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민주당은 국정 공약 202개를 실천하기 위한 예산으로 총 266조5165억원이 들 것으로 자체 집계했다. 21대 총선(99조원)보다 167조5165억원 늘어난 액수다.

185개에 이르는 공약을 제시한 국민의힘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 추계를 아예 내놓지 않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0대 공약과 관련한 예산 추계는 제출했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할 순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는 서울 올림픽대로 지하화를 비롯해 간병비 급여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착공 등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공약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이번 총선으로 구성될 22대 국회에선 공약 남발에 제동을 걸 장치가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