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그림자 세금' 부담금, 얼마나 문제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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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정부가 세금과는 별개로 특정 공익사업에 쓰려고 부과하는 부담금 91개 가운데 32개를 폐지하거나 감면하겠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국민 생활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 ‘그림자 세금’이라 불리고, 기업 경영에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준조세’로 인식되던 부담금의 개선 방안이어서 눈길을 잡아끕니다. 부담금은 지난 20여 년간 11개 줄어드는 데 그쳤는데요, 왜 그동안 정리를 안 했나 싶기도 합니다.

청소년에게도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대표적 부담금인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담금’(입장권 금액의 3%)이 폐지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이 각종 할인을 받아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데 1만~1만1000원은 듭니다. 그중 500원의 부담금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다는 부담금을 청소년 등 영화 관객이 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이 밖에도 부과 목적이나 적절성 등에서 의문을 남기던 부담금이 많이 줄어듭니다. 해외로 나갈 때 내야 하는 출국납부금은 목적이 개발도상국 질병 예방이라고 합니다. 이 납부금은 1만1000원에서 7000원으로 낮아집니다. 유효기간 10년인 복수여권 발급 때 붙는 국제교류기여금은 한국국제교류재단 운영 기금으로 쓰이는데, 이것도 1만5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인하됩니다. 모두 청소년도 내야 하는 부담금입니다.

부담금은 왜 만들어졌고, 세금과는 어떤 점에서 다르며, 국민경제에 왜 부담을 주는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수혜자로부터 공익사업 재원 걷는 부담금
시장원리엔 맞지만 현실 적용 쉽지 않아

게티이미지뱅크
부담금이란 특정 공익사업에 드는 비용을 그 사업과 관련된 사람이나 기업 등에 부담시키기 위해 매기는 돈을 말합니다. ‘분담금’ ‘부과금’ ‘기여금’ 등 명칭은 달라도 이런 목적에서 만든 것을 통틀어 부담금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낭비 줄이는 효과

중요한 건 부담금을 납부하는 국민과 기업이 특정 공익사업을 필요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또는 특정 사업의 수혜자여야 합니다. 그래서 부담을 지는 의무자를 기준으로 ‘원인자(이용자) 부담금’ ‘손괴자 부담금’ ‘수익자 부담금’ 등으로 나눌 수 있어요. 수도법 제71조에 ‘원인자 부담금’ 규정이 있는데요, 수돗물을 많이 쓰는 주택단지나 산업시설을 짓는 경우 또는 수도시설을 망가뜨린(손괴) 자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익자 부담금은 정부 허가 개발사업의 시행자가 얻는 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개발부담금, 정부 허가 농산물 수입업자에게 부과하는 농산물수입이익금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정부가 경제주체들의 어떤 행위를 유도하려는 유도성 부담금도 있지요. 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에 미달하는 기업에 부과하는 장애인 고용부담금,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배출부과금, 인구집중을 막으려는 과밀부담금 등이 그런 예입니다.부담금은 경제학적으로는 환경오염 물질 배출과 같은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y)’의 개선을 위한 수단이자, 공익을 증진하는 ‘가치재(merit goods)’의 공급을 늘리기 위한 도구입니다. 외부불경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시정하고자 매기는 세금을 영국 경제학자 아서 피구의 이름을 따 ‘피구세(pigouvian tax)’라 부르는데요, 이게 부담금의 이론적 배경이죠.

잠깐 설명을 따라가 볼까요?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나오는 경우 사회적 한계비용은 사적 한계비용보다 크게 됩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최적 생산량보다 많이 생산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 정부는 두 비용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액을 생산자에게 세금으로 부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적 한계비용과 일치하는 수준까지 사적 한계비용이 높아집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줄고 사회적으로 최적의 공급량을 찾게 됩니다.

편익원칙 따르는 이상적 제도부담금은 공익사업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세금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부담금은 특정 사업과의 관련성이 중요합니다. 세금은 그런 사정과 무관하게 일반 국민에게 부과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부담금은 ‘피구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세금 부과의 원리를 따릅니다. 세금 부과 원리는 크게 ‘편익원칙(benefit principle)’과 ‘지불능력원칙(ability-to-pay principle)’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담금은 바로 편익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도 나오는 편익원칙은 정부와 납세자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대가’에 기초한다고 봅니다. 정부가 개인에게 혜택을 제공하면, 개인은 그 대가로 세금을 낸다는 거죠. 이런 계약적 교환관계가 공공부문에서도 작동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추가적 소비를 배제하기 어려운 공공재의 특성상, 무임승차(free-riding) 문제가 숙제로 남습니다. 이에 반해 지불능력원칙은 개인이 얻는 편익과 공공서비스의 재원 마련을 별개로 생각합니다. 세금은 공공재 공급을 위해 각각의 부담 능력에 맞춰 강제로 부과하는 것이라 보는 거죠.

편익원칙은 수혜자와 세금 부담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입니다. 정책 설계만 잘하면 공공사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 통로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이용자 부담금(user charges)을 확대하고 있고, 독일에선 특별부담금이란 제도를 통해 편익과세 원칙을 구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1961년부터 부담금 제도를 도입한 우리나라에선 경제개발 시기인 1980년대에 부담금 종류가 크게 늘었어요. 이에 무분별한 부담금의 신·증설을 막고 부과와 징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 2002년부터 시행하기에 이릅니다.

NIE 포인트

1. 경제학에서 외부성(externality)이 무엇을 뜻하는지 공부해보자.

2. 공공재의 특성에서 나타나는 무임승차 문제의 사례를 알아보자.

3. 여러 세금의 종류 가운데 편익원칙이 적용된 사례를 찾고 함께 토론해보자.

청소년도 '영화 부담금' 내게 하는 건 비정상
엄격한 통제 없어 국민경제에 해악 끼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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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금은 이론적으론 훌륭한 공공사업 재원 마련 수단이지만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성패가 크게 갈립니다.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고 일반 국민에게 부과하는 경우, 또는 원하는 정책 효과가 나타나도록 유도하는 기능 없이 그저 재정 수입을 충당하는 게 목적이 돼버리면 문제가 커지죠.

부담금, 목적에 맞게 거두고 쓰나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부담금은 영화로 인해 수익을 보는 특정 이해관계자가 아닌, 일반 국민에게 부과하는 식이 됐습니다. 영화산업 진흥이라는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일반 세금과 다를 바 없어진 거죠. 청소년에게도 영화 부담금을 걷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입니다. 국제교류기여금, 출국납부금, 재건축부담금(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국납부금은 국제질병퇴치기금 마련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실은 해외로 나가는 일반 국민에 매기는 세금이 된 지 오래입니다.

세금은 법률에 종류와 세율을 정하도록 하는 조세법률주의를 따릅니다. 그런데 부담금은 이런 엄격한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부담금의 부과 조건이나 요율(가격) 등을 상위 법령에 명시하지 않고, 법률적 근거가 약한 행정규칙과 조례 등에 위임하는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어, 도심 혼잡통행료, 수계별 물이용부담금 등은 각 정부부처 시행규칙과 고시,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요율을 둘러싼 논란이 자꾸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애초 징수 목적과 다른 사업에 사용하는 부담금도 있어요. 전기요금에 3.7%씩 더 붙여 거두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원래 취약계층 지원이나 전력산업 연구개발 같은 ‘전력 공익사업’에 쓰여야 합니다. 그런데 올해만 해도 전기차 보조금 지급액 폭증에 따른 에너지 특별회계의 적자를 메꾸는 데 1조3000억 원, 기후환경기금에 가져다 쓰는 게 2000억 원입니다. 전력기금의 절반이 이렇게 사용됩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과도하게 많이 배정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력기금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덜하다 보니 정부가 ‘쌈짓돈’처럼 쓰고 있는 겁니다. 이번 개선 작업에서 전력기금은 내년 7월 이후 2.7%로 요율을 낮추기로 했습니다.

행정편의적 징수금 정도로 여겨

부담금이 특정한 행정 목적을 달성하고 사회적 비용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음에도 실제론 국민과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들은 부담금이 세금을 거두는 우회 수단이 됐고, 기업의 경영 효율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름하여 ‘준조세’로 작용해 국민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는 겁니다. 준조세란 기업이 순수한 생산비용 이외에 비자발적으로 지는 금전적 부담을 통칭합니다. 주택분양사업자에게 부과하던 학교용지부담금이 하나의 예입니다. 학령인구가 크게 줄어 학교를 신설할 수요가 줄었고, 건설부동산 산업은 큰 침체를 겪고 있는데도 학교용지부담금을 관성처럼 부과하던 것을 이번에 폐지하기로 했죠. 올해 한시적으로 감면해주기로 한 개발부담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담금은 부과 주체인 정부부처가 각각 개별적으로 운용하고 있어 국가재정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그동안 왜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을까요? 부담금도 일종의 행정규제라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생겨난 규제는 뿌리 뽑기 어렵죠. 행정 부문이 갈수록 비대화한다는 파킨슨 법칙도 부담금 제도의 온존과 확대의 이유가 됩니다. 부담금은 또 세금에 비해 국민 저항이 심하지 않고 기금이나 특별회계 형태로 관리하다 보니 감독이 엄격하지 않아 공무원들이 쉽게 거둬 쓸 수 있는 돈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폐지된 부담금은 별로 없고, 종류와 규모는 계속 증가해왔죠. 그동안 20년 이상 유지된 것만 60여 개에 이릅니다. 그 규모는 2002년 7조4000억 원에서 20년 만인 2022년 22조4000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는 연간 국세 수입의 6.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NIE 포인트

1. 조세법률주의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 원칙인지 알아보자.

2. 기업들이 각종 부담금을 ‘준조세’라고 일컫는 이유에 대해 파악해보자.3. ‘그림자 세금’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함께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