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노인 운전사고 증가…'고령자 면허' 제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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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직접 차를 몰다가 충돌 사고를 냈다. 여왕의 남편이 이틀 새 두 차례나 교통사고를 내 상대 차 탑승자가 다치자 영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필립공의 나이는 98세. 상황은 필립공이 사과 성명을 내고 운전면허를 포기하며 수습됐다. 한국에서도 고령자 운전에 의한 사고가 늘고 있다. 택시업계에서는 40%가량이 노인의 기준인 65세 이상일 정도로 연령대가 올라갔다.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포함한 고령자 운전사고가 늘어나면서 노인 운전을 규제하고 면허증을 반납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외에서도 노인 면허에 신중을 기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포기하는 고령자 비율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고령사회의 노인 운전면허, 적극적으로 제한해야 하나.

[찬성] 면허 노인 500만 명, 부주의 사고 늘어…자격 심사 강화 필요…해외도 규제 강화

경찰청 추계에 따르면 2022년 438만 명이던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2025년에는 498만 명으로 늘어난다. 2030년에는 725만 명, 2040년에는 1316명으로 급증한다. 이 추세대로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2년 3만4652건으로 증가한 통계 결과가 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가 20만9654건에서 19만9863건으로 소폭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2023년 3월, 전북 순창군의 농협 조합장 투표소에서 줄을 선 투표 행렬에 트럭이 덮치면서 4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운전자는 74세였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가속페달)을 잘못 밟아 생긴 어이없는 사고였다. 77세 운전자가 승합차로 지역아동센터 건물을 들이박은 사고도 있었다. 뒤차가 앞차를 추돌하는 정도의 사고는 다반사다. 모두 음주 운전이 아닌 단순한 부주의 사고다. 고령자들은 사고 후 “어떻게 된 일인지 사고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나이 들면 감각과 지각 능력이 떨어지거나 운동신경이 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에 대해 전 세계 대다수 나라가 경각심을 갖고 엄정한 대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술에 취하면 그만큼 상황판단이 늦어지고 반응도 느려지는 등 운전에 부적합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타인의 피해는 인명을 앗아갈 정도다. 심신이 모두 약해지는 고령자의 운전이 그런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앞서 노인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해왔다. 반납 시 은행 금리 우대, 백화점 물품 무료 배송, 택시비 할인 같은 인센티브를 내세웠다. 80세면 면허 자동 말소(뉴질랜드), 운전 능력 평가를 거쳐 속도와 운행 거리를 제한하는 등의 조건부 면허제(미국·독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반대] 자동차는 필수품, 택시 기사에겐 생업…젊은 운전자 사고도 잦은데 차별 안돼

교통사고는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난다. 인간사회의 한계다. 다만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고 새 모델이 나오면서 자율 운전 기능이 속속 등장하는 등 안전성이 강화되고 있다. 사고도 차량의 종류를 비롯해 지역과 도로 여건, 발생 시간대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단순히 운전자 나이만으로 분류해 노령자 운전이 꼭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지 과학적·객관적 신뢰 통계부터 내야 한다. 실제로 자율 차의 완성도가 나날이 높아지면서 차량 안전사고는 줄고 있다.설령 노인 운전사고 비율이 약간 더 높다고 해도 본인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면허 반납이나 중지를 강제할 수단은 없다. 어떤 공인 면허증에 대해 나이를 기준으로 효력 중지를 하나. 의사·변호사·세무사·공인중개사 등 국가가 발급하는 면허증은 모두 나이와 관계없이 유효하다. 면허증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합리성도 없다. 더구나 자동차는 현대사회의 생활필수품이다. 대도시와 달리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은 지역의 고령 거주자들이 자동차를 이용하지 못하면 불편함이 커진다.

흔히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이에 따른 차별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의료·보건·영양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면서 60~70대 정도는 노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80대에도 건강하고 판단력도 좋은 건강한 사람이 많다. 배타할 대상이 아니라 이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택시 기사 가운데 고령자도 많지만 그들 또한 어엿한 사회인이고 직업인이다. 적은 소득 때문에 젊은 층이 기피하고 있어 고령 기사를 배제하면 택시업계가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는다. 노인 운전을 배제하려면 대중교통망을 보강해야 하고 고령자의 이동도 보장해야 한다. 면허증 포기에 대한 인센티브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할 예산은 있나.

√ 생각하기 - 포기 인센티브, 야간 운전 제한 등 병행 가능…자율주행 발전에 기대

단순히 나이만으로 면허증 강제 반납받기나 효력 정지는 어렵다. 인센티브를 내세워 자진 반납하게 하거나 운전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게 좋다. 노인 운전에 대한 페널티의 세기도 관건이다. 또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고속도로나 야간 운전을 제한하는 문제를 공론화해볼 필요가 있다. 조건부 면허다. 나이 기준도 일반적 ‘노인 기준’인 65세보다 신축적으로 세분화하는 게 좋다. 65세와 80세 이상은 심신 건강 조건이 다르다. 한국에서 행정 서류상 최고령 택시 기사는 92세(2024년 3월 기준), 80대 기사도 2000명에 육박한다. 해외의 ‘합리적 차별’ 제도를 잘 연구해 적용하는 것도 좋다. 어떤 방안이든 비용은 든다. 자동차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자율주행차가 속속 등장한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자율주행의 완성도가 높아지면 이런 논란도 불필요해진다. 기술이 인간 사회의 고민을 덜어주는 좋은 사례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