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원론 산책] 은행·개인도 통화량 크기에 영향 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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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8
(88) 화폐의 공급화폐를 공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본격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는 대다수 독자는 중앙은행이 나라에 필요한 화폐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또 중앙은행이 화폐를 공급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중 대다수가 화폐의 공급이 중앙은행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화폐의 범위를 M1(좁은 범위)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M1에는 요구불예금이 포함되며, 이 예금의 크기는 중앙은행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화폐를 공급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중앙은행이 한 나라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독점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므로 M1, M2, Lf로 측정되는 통화량 또한 혼자서 결정할 수 없다. 이번 주 한 나라 안에서 사용되는 화폐의 공급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나라의 통화량이 결정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화폐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면 화폐 공급과 관련해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봐야 한다. 우선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화폐가 아닌 현금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현금을 독점적으로 공급한다고 해도 현금을 보유한 일반 국민이 그중 어느 정도를 예금으로 은행에 맡겨놓을지를 결정하므로 유통되는 현금의 양을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다. 게다가 일반 시중은행이 예금으로 맡겨진 현금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업이나 가게에 대출해주는지에 따라서도 시중에 유통되는 현금의 양은 변하게 된다.이처럼 중앙은행이 시중에 현금을 공급한다고 해도 그 돈이 실제로 시중에서 얼마나 사용되는지는 개인과 은행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M1의 크기뿐 아니라 현금의 양조차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조절할 수 없다. 결국 개인과 중앙은행이 아닌 일반 금융기관도 유통되는 현금의 양과 각종 통화량의 크기에 영향을 주게 된다.
현금을 공급하면서도 유통량을 정확하게 통제하지 못함에도 중앙은행이 화폐를 공급하고 통화량을 조절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 나라의 통화량은 결국 공급된 현금을 기반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현금 공급이 줄 경우 통화량이 줄어들고, 현금 공급이 증가하면 통화량이 늘어나는 현상은 매우 높은 상관성을 지닌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때 현금 공급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지난주 칼럼에서 많은 나라가 M2를 기준으로 통화량을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GDP와 M2를 이용해 통화량 조절에 관해 설명하면 나라마다 자국의 GDP에 맞는 M2의 수준을 정해놓는데, GDP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M2가 많이 변하면 중앙은행이 나서서 화폐의 공급량을 조절해 일정 기준으로 정해놓은 수준으로 M2를 조절한다. 중앙은행이 현실에서 일반 은행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화폐 공급량을 조절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대다수의 경우 현금 공급을 통해 화폐 공급을 조절할 것이다.M2가 기준을 벗어나는 경우엔 화폐 공급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화폐 공급량을 조절해야 하는 시기는 GDP가 증가할 때다. GDP가 증가하는 것은 국가 안에 있는 다양한 시장에서 거래가 더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거래 증가는 더 많은 화폐가 필요하므로 늘어난 GDP에 맞게 새로운 기준의 M2가 정해질 것이다. 중앙은행은 새로운 기준의 M2에 따라 화폐 공급량을 조절한다.
중앙은행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통화량이 GDP보다 너무 적으면 교환이 불편해지고, 통화량을 너무 많이 늘리면 돈의 가치를 떨어뜨려 화폐의 신뢰성을 낮추게 된다. 교환경제가 잘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