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계문화유산 '군함도 약속'을 지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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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희찬의 역사영화-진실과 거짓일본 남단 나가사키 항에서 14km 떨어져 있는 동서길이 160m, 남북 길이 480미터의 하시마섬.
"군함도에서 볼 수 있는 시설 설명문에는
아직도 강제동원에 관한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일본인 관광가이드도 강제징용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 의해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해저 탄광이 있던 곳인데 1890년대부터 미쓰비시가 본격적으로 석탄을 캐기 시작했고 1941년에는 채굴량이 41만 톤에 달했다.
바다 밑 탄광이다 보니 작업환경이 극도로 열악했다. 600미터 이상 해저로 내려가서 광구로 기어들어가 누운 채로 탄을 캐야 했고 작업장은 물이 질퍽거리고 온도가 높고 가스 폭발이 일어나곤 했다.작고 좁은 섬에는 광부들과 관리자들을 위한 아파트, 학교, 병원, 절, 목욕탕, 파친코, 영화관 등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바다 위에 떠 있는 군함을 닮았다 해서 사람들이 군함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거주지의 배치였다. 방파제 끄트머리 낮은 곳에는 조선인, 중국인 숙소가 있었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일본 광부들의 주택, 그 위쪽에는 관리인 아파트, 가장 높은 곳에는 관리소장의 사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일제의 식민지 차별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그런데 이 탄광 섬이 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을까?
일본은 나카사키 항의 미쓰비시의 군함 조선소와 더불어 이곳이 비서구 지역에서 산업혁명이 최초로 성공한 유적이라 주장한다.
유네스코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니 그건 따지지 말도록 하자.
다만 이 산업시설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는 알 필요가 있는데 영화 <군함도>는 당시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1945년 기준으로 군함도에는 조선인 500명, 중국인 200명, 그리고 산업위안부 여성들 스무 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이 취업사기, 인신매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광부들은 매일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었고 콩깻묵을 먹으며 그 고된 노동과 폭력 등을 견뎌냈다.대가로 받은 것은 임금에서 건강보험, 퇴직적립금, 국채회비, 국민저금, 숙소비 명목으로 제해지고 탄광 직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적은 금액의 구매표가 전부였다.
이 돈들은 이후 한 푼도 반환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혹독한 작업환경에서 무임금 강제노동을 한 셈이다.
강제로 혹은 속아서 끌려온 이들 중에는 지옥 같은 이 섬에서 탈출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지만 성공사례는 없었던 것 같다.
<군함도>에서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집단 탈출을 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를 이루는데 실제 그런 일은 없었고 군함도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한 이후에, 지옥섬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당시 유네스코는 관련 당사국 간의 합의를 요구했고, 그래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일본 정부가 수많은 한국인, 여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강제징용을 실시했음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시설에서 역사 전체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를 따르겠다는 언급까지 한다.
약속은 지켜졌을까?
군함도에서 볼 수 있는 시설 설명문에는 아직도 강제동원에 관한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일본인 관광가이드도 강제징용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일본은 세계문화유산을 활용해 부지런히 역사 세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시마섬에서 징용자로 일했던 분들 중에서 사망자로 인정된 이들의 가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2천만원을 받았고, 생존자들은 1년에 건강 치료비 명목으로 80만원을 받고 있다.
강희찬 역사소설가·동북아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