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은 장난이 아니다, 실존하는 위험이자 파탄의 도화선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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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 지음
이병철 옮김/바다출판사
404쪽|2만2000원
사람들은 왜 음모론을 믿을까

그는 극악무도한 성도착자를 처단하겠다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피자 가게에 들어가 총을 난사했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나 코멧 핑퐁에는 작은 식자재 창고만 있을 뿐 지하실은 없었다. 당연히 사탄 숭배자나 소아성애자도 없었다.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 빠져들까. <음모론이란 무엇일까>는 그 해답을 찾아 나선다. 책을 쓴 마이클 셔머는 사이비 과학, 미신 등에 맞서는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는 과학 저술가다. 국내에서도 한국어판으로 발간되는 과학 잡지 ‘스켑틱’을 1991년 창간했다.

음모론을 그냥 아이들 장난처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웰치의 피자 가게 총기 난사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음모론이 발단이 된 다른 사건은 그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2019년 3월 한 호주 남성이 뉴질랜드에 있는 모스크 두 곳에 들어가 총을 난사했다. 50명이 죽었다. 그는 비유럽인들이 높은 출산율을 무기로 백인들의 나라를 점령하려 한다고 믿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도 유대인 학살에 음모론을 이용했다. 음모론을 그냥 재미로만 봐선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덜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세 가지 모델로 설명한다. 대리 음모주의, 부족 음모주의, 건설적 음모주의다. 대리(proxy) 음모주의란 정부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예컨대 제약회사의 사기와 횡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기에 코로나19 백신도 믿을 수 없다는 데서 음모론이 생겨난다. 1932년부터1972년 사이, 미국 공중보건국이 매독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며 가난한 흑인들을 모집해, 실제로는 치료하지 않고 매독이 사람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한 흑역사도 있다.
음모론자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될 수 있다. 음모론자 가족 때문에 가정이 파탄나는 일도 있다.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일단은 대화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기이한 음모론에 빠진 맹신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저자도 낙관만 하지 않는다. 음모론을 더 퍼뜨리기 좋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의 논리를 갖춘 과거의 음모론과 달리 요즘 음모론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공포를 주입한다. 음모론에 어떻게 맞설지가 중요해진 시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