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뭉친 유덕화·양조위… '홍콩 누아르' 되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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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케이퍼 무비 '골드 핑거'홍콩 영화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유덕화와 양조위가 '무간도' 이후로 20년 만에 재회했다. 무간도 시리즈의 각본을 썼던 정문강 감독의 '골드 핑거'를 통해서다. 2003년에 개봉한 '무간도'는 국내 시장, 해외에서 흥행을 거뒀을 뿐 아니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디파티드',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등으로 리메이크되며 홍콩 반환 이후 급격하게 저물어 가던 홍콩영화, 특히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4월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26분.
곧 개봉을 앞둔 '골드 핑거'는 ‘누아르’의 라벨을 달고 홍보가 되는 듯하지만, 사실 누아르와는 거리가 멀다(그렇게 기대하는 관객은 실망이 클 것이다). 영화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더 월 스트리트', 최국희의 '국가부도의 날', 박누리의 '돈' 등에서 보여졌던 국가 금융위기와 증권 사기, 부동산 투기 등의 소재가 적절히 버무려진, 일종의 ‘금융 케이퍼 무비’다.이야기는 1970년대로부터 출발한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건축사 ‘청’(양조위)은 우연히 부동산 사기에 가담하며 홍콩의 부동산 시장을 주무르는 큰 손들의 네트워크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주가 조작, 금융 사기 등을 일삼으며 1980년대 홍콩경제를 주도했던 기업 ‘카르멘 그룹’을 세운다.
그러나 홍콩 반환을 앞둔 어느 시점,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며 문제가 발생한다. 카르멘 그룹과 청 그리고 그의 불법에 가담한 공조자들이 소유한 모든 기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주가가 폭락하고 채권자들의 부도가 이어졌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청과 공조자들을 타깃으로 한 2조 홍콩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수사가 시작된다.수사를 지휘하는 ‘류치웬’(유덕화)은 냉철하고 영리한 인물이다. 청이 제안한 엄청난 금액의 뇌물을 뒤로하고 그의 행적을 집요하게 뒤쫓는다. 그는 10년에 걸친 수사 동안 청의 계속되는 협박과 살인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그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한다.영화는 청과 류치웬의 대결 구도를 보여주지만, 이는 '무간도' 등 여타 누아르에서 보여졌던 (주로 마약) '조직과 경찰의 한판 승부'와는 다른 방식이다. 영화의 중심은 청의 범죄자로의 성장 과정이다. 그의 투기와 사기의 규모가 커지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 한 명씩 추가되는 공조자들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안타깝게도, 중심 캐릭터가 악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수많은 영화의 요약본을 보는 것처럼 진부하고 구태의연하고, 캐릭터의 변신 조차 이 과정의 전과 별 차이가 없는 듯, 밋밋하다.
청이 대규모 사기에 성공할 때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캉캉 댄서들과 반라의 무희들이 단적인 예다. '더 울프 오브 더 월 스트리트'와 너무나도 흡사한 이런 시퀀스는 범죄자들의 한심한 유흥이 아닌, 작전에 성공한 소년들의 '브라더후드'를 찬양하는 듯 한없이 화려하고, 음탕하다. 영화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것도 영화의 진부함을 보태는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일종의 시대극인 만큼 영화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놓치지 않는다. 홍콩 경제의 역사적 레퍼런스는 '골드 핑거'의 몇 안 되는 신선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청이 사들이는 홍콩 랜드마크의 배경을 통해 영국이 홍콩 부동산·금융 시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그럼에도 이러한 배경은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청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간략히, 도구적으로만 사용될 뿐, 이야기의 역사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골드 핑거'는 여러 면에서 아쉬운 작품이다. 영화의 완성도도 그렇거니와, 특히 양조위와 유덕화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두 배우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나서도 끝까지 홍콩영화를 지키고, 시장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몇 안 되는 영화인 중 (두기봉 감독을 포함) 한 그룹이다.영화를 극찬할 순 없지만, 이 작품이 자국에서 오랜만에 높은 관객 수를 기록한 흥행작이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무간도'의 팀이 이루어 낸 감동적인 성취기도 하다. 홍콩 누아르 보다 더 진한 의리를 보여준 이번 프로젝트, '골드 핑거'가 홍콩영화의 또 다른 부상을 상징하는 변곡점이 되기를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