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vs"회사 성장에 발목"…75년 동지 영풍과 고려아연은 왜싸우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75년 창업동지는 왜 싸우나
영풍그룹을 공동창업한 장병희 창업주(왼쪽)와 최기호 창업주(오른쪽)의 동상. 영풍그룹 본사 1층에 위치해 있다.
강남 논현동의 영풍그룹 본사. 영풍빌딩 1층 로비 가장 눈에 띄는 곳에는 1949년 영풍그룹을 공동창업한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의 동상이 있다. 영풍의 석포제련소와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에서 만든 서로의 비철을 섞어 만든 75년 동업의 상징이다.

하지만 창업주의 동상은 더이상 우애의 상징이 아니게 됐다. 고려아연은 우호지분을 확보해 영풍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독립 경영까지 시도하고 있다. 영풍은 이를 막기 위해 고려아연에 대해 소송까지 제기했다. 둘 사이는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해석이다. 영풍그룹이 창업 75년만에 두개로 쪼개지기 직전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함께했나

재계 28위 영풍그룹의 시작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년후인 1949년 11월 ‘영풍기업사’였다. 장 창업주(1913년)와 최 창업주(1909년생)는 같은 황해도 사리원 태생으로 해방이후 북한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월남한 인물들이었다. 서울 남대문에서 장 창업주는 전기기구와 농기계, 최 창업주는 발동기(발전기) 등을 판매했다. 두 사람은 같은 고향, 비슷한 나이, 사업을 한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아 금세 친구 같은 관계가 됐다. 서로를 높이 평가해 공동 창업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사업을 접고 부산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게된다. 두 사람은 1952년 각각 절반의 지분으로 다시 영풍해운을 세운다. 당시 광업을 주로 했지만 1960년대들어 회사를 급격히 키울 기회가 찾아온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 철강과 비철의 ‘소재 자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소재 회사를 키우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영풍은 제련소를 짓기로 한다. 영풍은 1970년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제련소를 준공하는데 연 1만톤의 아연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아연 생산시설이었다.

고려아연의 탄생은 1974년이다. 당시 석포제련소가 있던 석포는 낙동강 상류라 물 오염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이 강한데다, 주변도 산지라 공장 확장에 제약이 컸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경상남도 온산에 비철금속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고, 영풍은 이 단지에 제2제련소를 지어 생산능력을 높이고자 했다. 영풍의 사업계획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고려아연 온산제련소가 탄생했다. 박정희 정부는 “한국을 대표할만한 이름의 아연회사를 별도로 만들어 육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고,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고려아연(KOREA ZINC)’이 됐다. 당시 영풍은 총 1억원을 출자해 50% 지분으로 고려아연을 창업했다. 회사는 대한민국의 중화학공업 성장과 함께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린다.1990년대 들어 오너 2세대 경영이 시작됐음에도 양측의 공동경영 체제에는 문제가 없었다. 영풍 경영은 장형진 회장이, 고려아연은 최창걸 회장이 전담하는 구조가 됐지만 지배구조는 안정적으로 유지됐고 갈등도 없었다. 양측은 영풍의 지분을 20% 중반으로 비슷하게 유지했고, 영풍이 다시 자회사로써 고려아연을 지배하는 식이었다. 두 아버지가 함께 사업을 이끌었던 것을 봐왔던 만큼 오너 2세대인 두 회장의 관계 역시 1세대 오너들만큼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공동영업·인적 교류·정보 교류가 그 상징이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아연, 황산 등 비철금속 제련분야에서 원료를 공동으로 사와 제련하고 다시 공동으로 판매했다. 공동 영업과정에서 얻는 각종 정보들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공유됐다. 같은 영풍빌딩 건물에서 함께 일하던 양사 직원들은 서로의 사무실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고려아연으로의 파견도 많아 한 부서내에 부장은 고려아연 직원이 과장은 영풍직원이 맡는 일도 많았다.

다만 2000년대 들어서 갈등의 토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최씨 오너가가 영풍의 지분을 팔면서다. 모종의 이유로 최창걸 명예회장 등 최씨 일가는 개인 지분을 매각했다. 최 명예회장은 2006년 영풍 지분 약 6%를 한번에 매각하기도 했다. 신기술 도입과 재무 투자 등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최 씨 일가가 지분을 팔면서 이를 충당했다는게 고려아연측의 설명이다. 특히 상대 사업엔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동업자 정신에 기대 지분을 시장이 아닌 영풍과 장 씨 오너가에 팔았다는 것이다. 반반구조가 무너지면서 결과적으로 영풍은 사실상 장씨 일가가 지배하는 회사가 됐다. 자연스레 당시 영풍이 가지고 있던 27%대의 고려아연 주식도 장씨측의 지분이 됐다. 고려아연의 경영은 최씨 오너가가, 소유는 장씨 오너가가 하는 기묘한 동거 체제가 이렇게 시작됐다.


◆왜 싸우나

갈등이 본격화된 시점은 고려아연의 오너 3세 체제가 시작되면서다. 2020년대 들어 최창걸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에서 물러난뒤 고려아연의 키를 쥔 최윤범 회장은 회사를 전통적인 비철금속 회사가 아닌 신재생에너지·2차전지 소재·리싸이클링 등을 아우르는 혁신기업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려면 부채를 늘려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했다. 배당도 최대주주인 영풍이 원하든 만큼 늘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차입 경영’이 가풍인 장씨 오너가 측이 고려아연의 투자계획에 대해 주주총회 등에서 높은지분을 토대로 반대하자 독립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영풍의 ‘안정 경영’ 기조에 영풍과 고려아연 모두 부채비율이 약 30%에 불과하다. 다른 대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든 낮은 수치다. 고려아연은 국내 2차전지 산업 벨류체인내 핵심 회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영풍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에만 안주하면 미래가 없다'는게 고려아연측이 꾸준히 주장하는 바다. 고려아연은 우선 우호지분을 확보했다. 2차전지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파트너사들과 유상증자나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지분싸움을 준비했다. 2022년 8월4일 고려아연 이사회 전날 장형진 고문은 뜻밖의 안건을 전달받았다. 다음날 열릴 이사회에서 한화그룹이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안을 의결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고려아연이 독립에 나서기 위해 기습한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장 고문은 허탈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최윤범 회장이 선친끼리 약속했던 75년간의 공동 경영 역사를 깨질 위기라고 생각해서다. 장 고문은 장고 끝에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당 안건을 반대하면 행여 고려아연과 영풍의 우정이 금이 갔다는 세간의 이야기를 들을까 불참을 결정한 것”이라는 게 장 고문 측근의 이야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3세인 최 회장을 잘 설득하면 공동경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사회 11명 중 영풍 측 인사는 장 고문뿐이었다. 이후에도 고려아연은 현대차, LG화학 등에게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을 하며 영풍측 지분율을 낮췄다.

지난 3월에는 본격적인 경영권의 독립을 알리는 신호탄을 쐈다. 원료 공동구매, 제품 공동판매 등 공동경영 활동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 동업의 상징이었던 서린상사는 경영권을 가져오려고 하고 있다. 서린상사는 영풍그룹의 비철금속 유통을 독점하는 영풍측 회사다. 영풍과의 인력 교류을 끝냈다. 영풍빌딩을 떠나고, 그룹 로고도 변경하기로 했다.

과거 영풍그룹의 역사를 함께 한 고려아연 측 인사들은 "영풍의 '배신'과 '내로남불'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영풍이 과거 공정거래법의 강화로 순환출자를 해소해야하는 과정에서도 동업자정신을 존중해 일체 개입하지 않았는데, 영풍에 대한 장씨 일가의 지배구조가 확고해지자 고려아연 경영에 개입하려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영풍측은 이별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75년간 이어져온 동업자 정신을 고려아연측이 일방적으로 끊으려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영상의 개입으로 회사성장을 막고 있다는 고려아연의 주장에 대해서도 “최대주주로서 기업의 무리한 확장 시도를 지적하는건 당연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영풍측은 신사업 진출에 무작정 반대하는게 아니라 불투명한 투자와 경영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이 자본잠식 상태인 이그니오 등 해외기업을 인수하고, 이미 시장 포화상태인 동박시장 등에 무리하게 진출하려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장형진 고문은 최근 영풍 임원들에게 “영풍은 양가가 75년간 서로에 대한 신뢰와 땀으로 일궈온 기업인데 한 개인 주주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이것이 무너지고 깨져가는 것이 안타깝고 몹시 마음 아프다”며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모든 걸 안고 가겠다는 생각이고, 창업주 선대부터 이어져온 동업의 전통과 정신을 내 대에서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풍에겐 헤어지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고려아연의 경영망과 정보망은 영풍에게 중요한 경영수단이다. 아연과 황을 상대적으로 적게 생산하는 영은 고려아연의 판매망에 기대 ‘규모의 경제’에 의한 협상력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려아연은 아연을 88만t을 생산했지만, 영풍은 32만t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환경이슈에 의한 소송, 행정처분등으로 영풍의 올해 아연생산량은 절반이하로 급감할 예정이다. 만약 고려아연 독립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재무상의 문제가 생기면 고려아연의 지분을 줄여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막대한 배당금도 줄어들게 된다. 영풍은 최근 5년간 배당금으로 3576억원을 가져갔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양측의 관계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시각이 많다. 고려아연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두고 전면전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경영권 독립시도에 있어서 영풍이 이를 막을 실질적인 ‘카드’가 없다는 분석이다. 영업망 분리, 인적분리 등을 막으려면 이사회에서 견제가 필요한데, 현재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영풍측 인사는 장형진 고문 단 1명뿐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영풍측의 지분이 약 35%, 고려아연측의 지분이 약 10%였지만 영풍은 동업관계를 고려해 영풍측의 이사 진입을 자제해왔는 설명이다. 영풍으로서는 동업자 정신을 살려 고려아연의 독립성을 어느정도 보장해주겠다는 의도였지만, 현재로서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신규 이사 선임은 주주총회 사항이지만 현재는 고려아연이 외부 우호지분을 끌어들이면서 영풍측 32%vs 고려아연 33.2%가 되면서 이사회 변경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영풍측이 향후 영풍측 이사를 늘리려 해도 주총에서 어려운 표대결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다만 소유권을 두고서는 장기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고려아연측에서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체 지분을 늘려 32%에 달하는 영풍의 지분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란 관측이다. 현재 영풍은 고려아연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인데, 재판 결과에 따라 유상증자 시도가 막힐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풍에 경영상 타격을 줄 수 있는 행위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래야만 영풍의 재무구조를 흔들어 추가적인 고려아연 지분매입을 막을수 있기 때문이다. 영풍은 그동안 고려아연으로 부터 받은 배당 거의 대부분을 고려아연 지분의 추가 매입을 위해 사용해 왔는데, 재무구조가 나빠지면 지분매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고려아연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계열분리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으로 줄이고, 겸임 임원도 없어야 한다. 경영분리가 예정돼있는 만큼 임원겸임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지만, 영풍측 지분을 3% 미만으로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