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적절히 통제해야 필수의료 살아난다[사설]

과도한 실손보험이 의료체계를 망친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보건복지부 주최 토론회에선 “비급여와 실손보험을 통제하지 않으면 건강보험 제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한정된 건보 재정으로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를 충분히 지원하려면 실손보험을 통제해 비급여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은 질병·상해 치료 시 보험 가입자가 낸 의료비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진료비는 건보가 적용되는 ‘급여’(건보 보장+본인 부담)와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로 나뉘는데, 실손보험은 급여 중 본인 부담과 비급여 대부분을 보장한다. 환자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는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2022년 기준 가입자가 3997만 명에 달하는 ‘국민 보험’이 됐다.

하지만 실손보험 때문에 병원은 과잉 진료를 부추기고 환자는 의료 과소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작용이 커졌다. 자연히 건보의 재정 부담이 가중됐다. 도수치료, 마늘주사 등 치료 효과가 불투명한 진료도 급증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는 2010년 8조1000억원에서 2021년 17조3000억원으로 늘었다.실손보험은 필수의료 공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도 꼽힌다.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진료 시장이 커지면서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의료 사고 위험이 적은 피부과 등에 몰리는 반면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기피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혜택을 필수의료 중심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미국 의료보험은 가입자의 자기 부담을 늘리는 식으로 설계돼 있다. 그래서 가벼운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드물다. 독일은 비급여 진료를 받으려면 환자가 의사 소견을 받아 공공보험에 사전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과잉 진료를 막는 장치다. 반면 국내 실손보험은 이런 통제 장치가 거의 없다.

그동안 건강보험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실손보험을 맡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그나마 두 부처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최근 의대 증원과 함께 의료 개혁이 이슈가 되면서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실손보험과 비급여 과잉을 제대로 수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