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서 쉽게 사는데…액상전자담배 판매 '0갑'

규제 사각지대 놓인 전자담배

당국 "현행법상 담배 아니라…"
판매량 공식 통계조차 없는 상태

소매점 4000곳서 유통 활발
구매 쉬워 청소년 무방비 노출
전문가 "온라인 판매 규제해야"
서울 역삼동 24시간 무인점포에 설치된 액상형 전자담배 자판기. 정희원 기자
액상형 전자담배가 최근 널리 퍼지고 있음에도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독성은 일반 연초 담배, 궐련형 전자담배와 다를 바 없지만, 판매량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없는 상태다. 온라인을 통해 구하기도 쉬워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쥴 사태’ 이후 방치에 통계 전무

7일 전자담배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합성 니코틴 액상을 판매하는 전문 전자담배 매장만 국내에 4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 통계는 전무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가 매년 상·하반기 발간하는 ‘담배시장 동향’ 문건을 보면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2020년 40만 갑을 기록한 이후 2021년 하반기부터 집계 대상에서 빠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9년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쥴) 흡연자들의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국내 제품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졌고 이때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가 공식적으로 중단돼 통계도 없어졌다”고 말했다.정부는 2019년 10월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대책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미국에서 발생한 폐 손상 사망 사례를 계기로 문제가 된 액상 담배 쥴 등은 회수했지만 유해성 연구 등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전자담배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업계는 이미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제조성분 공시 규제’가 국내엔 지금까지도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무분별한 액상 수입 및 제조뿐 아니라 탈세가 이뤄지는 ‘음성 판매’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도환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 부회장은 “소비자가 흡입하는 합성 니코틴 액상이 어떤 제재도 없이 제작되고 있다”며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액상을 코일로 가열해 흡입하는 방식이다. 도심 곳곳의 전자담배 매장이나 무인 자판기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정부는 ‘합성 니코틴은 담배가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규제 부재 상태를 인지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규제 멈춘 사이, 청소년 이용 급증

정부는 2025년 11월 담배유해성관리법이 본격 시행될 때 합성 니코틴 액상도 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사이 중독에 취약한 청소년의 액상 담배 이용은 점차 늘고 있다. 2023년 질병관리청의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통계’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남학생은 2020년 2.7%, 2021년 3.7%, 2022년 4.5%로 증가하는 추세다. 궐련에 비해 어른에게 ‘걸릴’ 염려가 적고, 건강에도 ‘덜 나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액상형 전자담배가 청소년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소년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지난 5일 방문한 서울 역삼동 무인 자판기에선 신분증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성인 인증을 했다. 이곳은 인근 청소년에게 핫스폿으로 통하고 있다. 청소년 사이에선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 등에서 성인 인증을 통해 기기와 액상을 구매하는 방식이 공유되고 있다. 일반 담배는 온라인 구매가 불가능하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진입장벽이 낮은 전자담배에서 시작해 궐련으로 넘어가는 청소년이 많은 만큼 당장 온라인 판매부터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