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저출생 극복 공약의 함정

선거 앞두고 쏟아진 저출생 공약
정부 지출 커지면 출산 늘 것 전제

예산과 출산율 상관관계 약해
경제적 요인만 저출생 원인 아냐

생산성 향상·이민에 관심 높이고
혼인제도 사회적 인식 바꿔야

최인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선거 기간이 되니 정당 간에 살벌한 설전이 전개되고 있다. 상대방이 승리하면 마치 나라가 망할 듯이 과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정당은 정책을 통해 국가 운영을 설계하는데 자신들의 정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경우는 정작 드물다. 그나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각 정당이 22대 총선에서 내거는 공약이 무엇인지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방송에 자주 언급되는 6개 정당의 공약집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한 공약이다. 거대 양당은 저출생 대책을 공약집의 첫머리로 소개하고 있고, 녹색정의당도 기후 대책 다음으로 중요시하고 있다. 기타 정당도 두리뭉실하기는 하지만 저출생 대책을 언급하고 있다. 4년 전에 비하면 큰 변화다. 4년 전에는 ‘벤처 4대 강국’ ‘코로나19 극복’ ‘그린 뉴딜 정책’이 각각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정의당의 정책 순위 1번이었고, 저출생에 관해서는 언급도 없었다. 이 시대의 정책 화두가 저출생임을 실감하게 한다. 저출생이 일으키는 경제·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각 정당의 저출생 극복 공약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저출생 원인을 주거 부담, 출산 및 육아 부담, 교육 경쟁, 일과 육아의 양립 어려움에 있다고 진단하고, 이런 제공 원인을 경감하기 위한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한 공공임대 아파트 혹은 주거 지원비 제공, 출산과 육아를 위한 유급 휴가 법제화, 아이 돌봄 서비스 확대 등이다. 한술 더 떠 서울대 같은 학교를 10개 더 세워 입시 경쟁을 없애겠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도 있다. 과도한 입시 경쟁을 없애고 싶다는 선의에서 나왔으니 크게 탓하고 싶지는 않다.

각 정당의 저출생 극복 공약은 국가가 재원을 더 많이 쓰면 출생이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관련 지출 비중과 출산율을 대비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기준 멕시코는 가족 관련 지출 비중이 한국의 반도 안 되지만 출산율은 두 배가 넘고, 튀르키예는 가족 관련 지출 비중이 한국의 3분의 1인데 출산율은 두 배가 넘는다. 유럽 국가들은 가족 관련 지출이 많고 출산율도 한국보다 높은 편이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이민자를 제외하면 출산율은 더 낮다. 2019년 자료를 사용하면 GDP 대비 가족 관련 지출 비중과 출산율의 상관계수 값은 0.01에 불과하다(1이면 완벽한 양의 관계, 0이면 관계없음을 의미). 이에 비춰 보면 국가가 돈을 더 많이 쓰면 출생이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그 이유는 저출생이 오로지 경제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녀에 대한 인식 변화, 여성의 권리 신장, 탈종교 등 다양한 문화적 원인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엄청난 빚을 감수하면서 가족 관련 지출을 늘렸는데도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으면 국가 채무만 증가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과도한 국가 채무는 사적인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그 부담은 머릿수도 줄어든 미래세대에 전가돼 세대 간 불공정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니 저출생 극복을 위해 가족 관련 지출을 증가시키는 데 재정 건전성을 무시해선 안 되고 대체 플랜도 갖고 있어야 한다.

저출생이 가져올 경제적 문제를 완화하려면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이 가장 중요하다. 생산 과정의 자동화, 신기술 개발 등이 생산성 향상에 중요하니 이 부분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이민 유입은 불가결한 요소다. 어떤 형태의 이민, 어떤 규모의 이민을 허용할 것인지가 정책 화두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혼인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약 40%의 신생아가 결혼을 안 한 커플에게서 태어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차별도 없다. 유교 문화가 강한 한국이지만 결혼이 출산에 선행돼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저출생 극복을 위해 바꿀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