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선대 회장 숨결 고스란히…71년 만에 베일 벗은 'SK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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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5일부터 일반 공개“구부러진 것은 펴고 끊어진 것은 잇는다.”
'SK모태' 선경직물 출발점
최종건, 발품 팔아 기계부품 조립
5년만에 직기 1000대 공장 키워
사업공간·사랑방인 평동 생가
널찍한 대청마루는 우애의 상징
위기 때마다 가족들 모여 회의
1953년 10월 수원 평동 7번지. 스물일곱 살 청년 최종건(SK그룹 창업회장)은 이 집 창고에서 6·25전쟁으로 산산조각난 직물공장 부품을 조립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장을 재건하면 동네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목표 하나로 서울과 수원, 인천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모았다. 최 창업회장은 생가를 창고로 쓰면서 5분 거리에 있는 공장을 5년 만에 직기 1000대를 갖춘 어엿한 직물공장으로 키웠다. 재계 서열 2위 SK그룹은 이렇게 출발했다.
◆발품 팔아 세운 선경직물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이 시작된 곳이자 최 창업회장과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이 살았던 ‘SK고택(古宅)’이 8일 언론에 공개됐다. SK고택은 1111㎡ 규모 대지에 75㎡ 규모 한옥 형태 기념관, 94㎡ 규모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SK그룹은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복원을 완료했다. 삼성, LG, GS, 효성 등 창업주의 생가가 경남 진주 승산마을 등에 복원돼 있지만 SK그룹 창업주의 생가는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최 창업회장의 부친인 최학배 씨는 1921년 논밭이었던 이곳에 76㎡(약 23평)짜리 한옥집을 구해 4남4녀를 길렀다. 생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게 대청마루다. ‘SK가(家) 우애의 상징’으로 불리는 널찍한 공간이다. 최학배·이동대 부부는 4남4녀를 수시로 모아 가족회의를 열었다. 식사도, 손님도 여기서 맞았다. SK 관계자는 “그때의 가풍이 지금까지 이어져 최태원 회장은 종종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과 가족회의를 연다”고 말했다.형제간 우애는 SK를 재계 2위로 끌어올린 버팀목이었다. 1953년 최 창업회장이 선경직물을 창업할 당시 최 선대회장이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알뜰살뜰 모은 유학 자금을 형에게 넘긴 게 대표적이다.
◆사업 공간이자 사랑방
평동 생가는 사업 공간인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 부엌이 생가에서 가장 큰 공간이었다는 게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회사 임직원과 고객을 위해 큼지막한 밥상을 매번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생가에선 선경직물의 성장 스토리도 엿볼 수 있다. 최 창업회장은 1950년대 베스트셀러 인공섬유인 ‘닭표’ 인견을 팔아 사세를 키웠다. 뛰어난 품질 덕에 당시 동대문 시장에선 상인들에게서 “닭표 있냐”는 문의가 쏟아졌고, 도매상들은 현금을 들고 공장으로 찾아와 닭표 인견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선경직물을 만들 때 공구리(콘크리트의 일본말)도 내가 했고, 기계도 내가 놓고, 거기서 잠도 잤다”는 게 최 창업회장의 회고다. 생가엔 두 형제가 수출을 위해 출장 다닐 때 애용한 가방도 복원돼 있다. 안방에 놓인 선경직물의 봉황새 이불은 당시 ‘혼수 필수품 1호’였다.
이날 오전엔 최태원 회장과 그룹 일가 20여 명이 고택을 찾아 안팎을 둘러보고 마당에 느릅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최태원 회장도 이곳에 자주 놀러와 할머니 이동대 여사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오는 15일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수원=김형규/김우섭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