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곧 줄게' 속아 방 뺐더니…대법 "집주인, 사기죄는 아니다"

"재산상 손해로 보기 어려워"
임차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속여 오피스텔 점유권을 세입자에게서 편취한 집주인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A씨의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오피스텔 임대차 계약 기간을 채우고 퇴거한 세입자에게 임차보증금 1억2000만원 중 5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세입자는 오피스텔 출입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바꿨다. A씨는 “잔금을 나중에 주겠다”고 피해자를 속여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새로운 세입자를 오피스텔에 들였다.1·2심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오피스텔을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음에도 피고인에게 속아 점유를 이전한 것은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라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임차보증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 점유권을 피고인에게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원심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 판례는 ‘재물에 대한 사용·수익권은 형법상 사기죄에서 보호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