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성장의 핵심은 과학기술…이공계 지원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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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홍유석 서울대 공대학장“이공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홍유석 서울대 공대학장은 지난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기초 과학의 가능성을 믿고, 장기적으로 지원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관성 없는 정책은 과학기술인, 국민들, 과학자를 꿈꾸던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모두에게 정부가 과학기술을 경시한다는 안 좋은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어 온, 그리고 앞으로 이끌어갈 이공계를 믿고, 지원해달라”고 거듭 강조 했다.
정부가 내년에 다시 사상 최대 규모로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겠다고 한 데 대해서는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R&D예산으로 대표되는 미래전략을 심도있게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홍 학장은 내년 예산을 증가할때도 신규 예산이 아니라 기존 예산을 복원해주는 방식을 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산을 늘리면서 정부에서는 새로운 실적을 내기 위해 신규 과제를 신청받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예산이 깎인 기존 연구들은 그대로 타격을 받는 것”이라며 “이번에 예산이 깎인 과제에 대한 복구가 훨씬 급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인재양성 사업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반도체 인력 15만 명을 양성하겠다며 관련학과를 만들라고 지시하고 이에 자금을 지원하는 식으로는 언제나 ‘뒷북 인력양성’이 될 수 밖에 없다. 홍 학장은 “특정 전공을 만드는 대신 그 분야에 필요한 7~8개 기초 전공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해야 한다”며 “기초 학문의 가능성을 믿고, 장기적으로 지원한다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선제적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학교 차원의 무전공 선발 확대 정책도 부작용이 많을 것으로 우려했다. 융합시대에 학생들에게 전공선택에 자율권을 주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의대 등으로의 극단적인 쏠림현상이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당초 목적대로 운영이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이다. 홍 학장은 “서울대 같은 종합대학에서 전체 전공을 아울러 무전공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대신 공대 등 단과대학 단위에서 광역 선발을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는 “공대의 경우 1학년 때 수학·과학·컴퓨터 과목을 듣지 않으면 기초가 없어 수업을 따라 잡을 수 없다”며 “최적의 상태로 교육이 가능한 인원 정도를 광역으로 모집하는 수준이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교수를 더 많이 데려와야한다는 것이 홍 학장의 지론이다. 이를 위해 교수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과 선발 방식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먼저 해외로 인재를 찾아가 유치할 수 있도록 학장 직속으로 우수교원 유치기구를 운영할 계획이다.특별 스타트업 패키지도 만든다. 해외의 유명한 교수를 한국으로 데려올 경우 기존 장비를 가져올 수 없어 연구실을 세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학교본부나 공대에서 주는 지원금 외에 1인당 2억원까지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홍 학장은 “연봉은 올려줄 수 없지만 연구 환경만큼은 제대로 조성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수 숫자도 앞으로 2년간 50명을 늘려 375명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홍 학장은 “KAIST 교수진이 500명이 넘는 것과 비교하면 서울대 공대 교수의 숫자가 너무 적고, 매 학기 수업시수는 KAIST보다 3학점씩 많아서 부담이 크다”며 “인공지능(AI), 반도체, K방산 등의 분야 교수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23명에 불과한 여성 교수 숫자도 2년 후까지 35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홍 교수는 “다양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우수한 여성 교수를 늘려나갈 것”이라며 “다양성 위원회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공대의 진입장벽을 낮춰주기 위해 노력한다. 서울대는 ‘이노에듀(Inno-Edu)2031’으로 대학과 학과의 교육과정을 개선하려는 노력 중인데. 그 일환으로 공대차원에서 기초과정을 개혁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고등학교에서 다 배워와야 대학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방식은 지속가능성이 없다”며 “물리Ⅱ, 화학Ⅱ를 배우지 않은 학생도 공대에 오는데 부담이 없도록 프로그램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