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버스 멈춰서나"…심상정도 정계 은퇴, 위기의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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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의당이 4.10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으로 진보 정당이 원내에 진입한지 20년 만이다. 간판 정치인인 심상정 의원도 지역구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정의당은 전통적인 노동 이슈와 새로운 의제인 페미니즘·기후 등의 경중을 놓고 내홍에 시달렸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심 의원 외에 간판급 정치인은 새롭게 배출해내지 못했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연합정당을 시도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정계 은퇴 선언한 심상정

심 의원은 1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저는 21대 국회의원 남은 임기를 마지막으로 25년간 숙명으로 여기며 받든 진보 정치의 소임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정계 은퇴 선언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울먹이며 "오늘은 기자회견으로 대체하겠다"라고 답했다. 심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현역으로 있는 지역구인 경기 고양갑에 출마했지만 3위에 그치며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자리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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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의원은 추가로 배포한 입장문에서 "온몸으로 진보 정치의 길을 감당해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잠재력을 갖춘 훌륭한 후배 정치인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도록 진보정당의 지속 가능한 전망을 끝내 열어내지 못한 것이 큰 회한으로 남는다. 이제 한 사람의 시민의 자리로 돌아가겠다. 진보정당의 부족함과 한계에 대한 책임은 제가 떠안고 가도록 허락해주시고 녹색정의당의 새롭고 젊은 리더들이 열어갈 미래 정치를 성원해달라"고 했다.

이번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2.14%. 그동안 진보 정당이 유의미한 득표율을 얻었던 비례 투표에서조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20년 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지지율 13.1%를 기록하며 비례 8석, 지역구 2석 등 10석을 얻어 원내에 진입했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정의당은 9.6%의 지지를 받아 총 6석(지역구 포함)을 얻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대다수 유권자들의 관심 정당에서 제외됐다.

예견된 위기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고전은 이미 예견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유명무실화와 새로운 간판급 정치인의 부재,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꼽힌다. 21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이 소수정당과 연대·연합할 필요성도 줄어들어 정의당이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양당 체제가 공고화된 상황에서 정의당은 이를 뚫고 유권자들을 설득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내지 못했고, 페미니즘·환경 같은 아젠다들은 기존 지지층의 반감을 불렀다. 당내 분열이 일어나며 기존 노동조합과 영남의 공업지대, 시민사회단체를 기반으로 한 정의당 진보 정치가 한계가 부딪혔다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왔다. 총선 전 박원석 전 의원과 류호정 전 의원, 조성주 전 정책위부의장 등 주요 인사들이 정의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당했다. 박 전 의원 등은 "정의당은 실패했다. 정의당의 비전과 정책, 실천은 낡았고, 당 정체성을 사회운동 정당으로 규정한 행보가 대중정당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을 가져왔다"고 했다. "미투 운동과 당내 성폭력 사건 등을 계기로 젠더, 페미니즘, 청년 등의 '정체성 정치'가 당의 중심 의제와 이슈로 급부상했지만 갈등 해소 방향보다는 갈등을 더 키우는 역효과를 불렀다. 사회적 약자와 보편적 공익을 대변하는 당의 이미지가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류 전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의당이 대안 세력이 아니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당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거꾸로 '운동권 연합 신당'으로 가려 하고, 당내 종파들은 비례대표 순번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운동권 신화에 빠져 '도로통진당'이란 비판을 들어도 쉽사리 내려 놓질 못한다"고 비판했다.

'2중대 딜레마' 속에 분열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연대·연합 여부와 관련해 내부 갈등을 빚어왔다. 거대 양당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어느 편이냐'라는 내용만 주로 부각됐다. 정의당 내부에서 누군가는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쏟아냈고, 또 다른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연대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연대가 진보정당의 위기를 불렀다는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연대에 선을 그었기 때문에 정의당이 위태로워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내홍으로 계파 갈등이 심화됐고 당 분열이란 위기를 맞았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정의당 주류 세력에 대한 비판과 세대교체론도 분출했다.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체인 녹색정의당을 통해 '가치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언했지만 유권자의 관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정의당이 주요 의제로 삼고 있는 여성·노동·기후 문제는 상대적으로 대중적 관심을 이끌기 어렵다. 실제 총선에서도 '윤석열 정부 심판'이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던진 조국혁신당 돌풍에 완전히 밀렸다. 양당제를 공고화하는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고선 진보 정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더 이상 없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김준우 녹색정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선대위 해단식에서 "부족하고 모자랐던 점을 더 성찰하고 철저하게 혁신하겠다. 전당적 토론과 실천, 차기 지도부 구성 등을 통해 새 진보 정치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녹색정의당이 비록 이번 총선에서 원내에 입성하진 못했지만, 많은 언론과 학계 및 전문가집단에서 녹색정의당의 정책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22대 총선은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한국 사회의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녹색정의당의 진보정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