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다시 도는 'M&A 시계'…대기업·사모펀드 兆단위 빅딜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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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 이상 매물만 13건…M&A '큰 장'▶마켓인사이트 4월 11일 오후 4시 45분올 1분기 인수합병(M&A) 시장은 참담했다. 조 단위 ‘빅딜’이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총선 이후 불확실성이 옅어지면 M&A 본게임이 시작될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고금리에 짓눌렸던 M&A 시장이 2분기부터 활짝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내 금리가 몇 차례 인하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인수금융 금리가 안정되고 있고, 기업 밸류업 분위기 속에 주가와 실적도 뒷받침해주고 있다. M&A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의 눈높이가 비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오영과 제뉴원사이언스, 녹수 등 시장에 나온 대형 매물이 하나둘 새 주인을 찾아갈 조짐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두자릿수 치솟은 인수금융 금리
최근 연 6~7%대로 안정세 찾아
○숨죽이던 대기업 참전 채비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2분기 들어 조 단위 대형 M&A 매물의 매각 작업이 줄줄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현재 절차가 시작됐거나 상반기 매각이 예상되는 5000억원 이상 대형 거래는 13건, 22조3000억원에 육박한다.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숨죽이던 기업들이 M&A 시장에서 신발끈을 죄고 있다. 현금 확보가 시급한 기업은 비주력 계열사 매각을, 현금이 넉넉한 기업은 몸값이 떨어진 알짜 사업 인수를 위해 레이더를 가동했다. 시장에선 전자로 SK와 롯데그룹을, 후자로는 삼성과 LG그룹을 주목하고 있다.SK그룹은 일부 사업부의 매각 작업을 시작했다. SK렌터카는 이달 새 주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몸값은 1조원대로 거론된다. 롯데그룹도 신동빈 회장이 연초 외신 인터뷰에서 “구조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계열사 솎아내기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프라인 유통 업황이 악화하면서 고전하고 있는 신세계그룹과 재무 구조 악화에 신음하는 CJ그룹도 구조조정을 위해 M&A 시장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으로 보인다.
정반대로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M&A 시장 문을 두드리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그간 M&A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빅딜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타깃을 찾고 있다. 한화그룹도 M&A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기업 중 하나다. 3세 경영이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미래 먹거리를 장착하기 위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매물을 찾고 있다.생존을 위한 밸류업 수단으로 M&A를 검토하는 곳도 있다. 주가 하락에 신음하는 게임사들이 대표적이다. 엔씨소프트는 M&A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박병무 VIG파트너스 고문을 영입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크래프톤은 “매물만 350여 곳을 봤다”며 연내 대형 M&A를 준비하고 있다.
○“1년 반 개점휴업 끝났다”
대형 사모펀드(PEF)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펀드 만기를 앞두고 또는 후속 펀드 조성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매각해 현금 확보에 나서면서다. JKL파트너스의 롯데손해보험 매각(2조원), VIG파트너스의 프리드라이프 매각(1조원) 및 IMM프라이빗에쿼티의 제뉴원사이언스 매각(8000억원)은 이미 주관사 선임을 마쳤거나 계약 체결을 위한 막바지 협상에 들어갔다.CVC캐피탈은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 매각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IMM PE도 국내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 매각을 위해 주관사 선정에 나섰다. MBK파트너스가 포트폴리오 정리에 나서면 국내 M&A업계에 큰 장이 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롯데카드와 모던하우스, 홈플러스 등이 올해 MBK파트너스가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큰 매물로 꼽힌다.PEF 운용사들 사이에서 더 이상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선 안 된다는 위기감도 형성되고 있다. 한 PEF 관계자는 “갑자기 찾아온 고금리 환경으로 M&A 시장이 얼어붙은 지 2년 가까이 지났다”며 “동 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M&A 시장이 1분기 저점을 지나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IPO 시장도 온기
M&A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린 건 “더 이상의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공감대가 생긴 영향이 크다. 인수금융 조달 비용은 M&A 성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두 자릿수로 치솟은 인수금융 금리는 최근 연 6~7%대에서 안정세를 찾았다. 2021년 연 3~4%대 수준보다 높지만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란 게 시장 컨센서스다. IB업계 관계자는 “지금 협상을 시작해도 딜이 종결될 때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약 체결 시엔 금리가 내리진 않더라도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매물을 들여다보는 곳이 대다수”라고 말했다.국내외 주식시장이 연초 활황세를 보이면서 기업공개(IPO) 등 회수 시장이 온기를 찾은 점도 M&A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금리 시절 지나치게 높아졌던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정상화된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협상을 시작했지만 가격과 조건 등에서 입장 차이가 커 지연된 거래들도 올 들어 속속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박종관/차준호/하지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