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들어간 자연 … 예술가가 자연을 사유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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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해가 길어지며 3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서머타임이 시작되었고 이제 베를린은 봄을 맞이하고 있다. 어둡고 긴 겨울을 뒤로 하고 사람들은 야외 테라스와 공원에 앉아 햇볕을 즐기며 자연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자연 속을 몇 시간을 걸어도 독일인에게는 단지 가벼운 산책일 뿐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실제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베를리너에게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듯 베를린의 여러 미술관은 올해의 첫 전시 프로그램으로 자연을 사유한 예술가들을 선보이고 있다.
베를린의 대표적 동시대 미술관인 그로피우스 바우(Gropius Bau)는 자연과 인공의 빛을 매체로 사용하며 인간이 자연과 환경을 지각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탐구한 여성 예술가 낸시 홀트(1938-2014)의 대규모 회고전 《낸시 홀트: 빛의 원 (Nancy Holt: Circles of Light)》을 첫 전시로 열었다. 홀트는 미국 대지미술과 개념미술의 선도적 그룹의 하나로 활발한 작업을 했으나, 그의 남편이자 대표적 대지미술 예술가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 받지 못했다. 이를 만회하듯 전시는 작가의 1960년부터 1986년까지의 설치, 필름, 비디오, 사운드, 사진, 텍스트 작업 등을 포괄적으로 보이며 독일 내 전례 없는 규모로 홀트를 소개한다.미술관에 들어서면 중심의 아트리움 공간에 설치된 ‘전기 시스템 (Electrical System)(1982)’을 마주하게 된다. 100개가 넘는 전구로 구성된 설치 작품은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하며 관객을 작가의 빛의 세계로 초대한다. ‘전기 시스템’은 해와 별 등 자연의 빛이나 인공 빛을 탐구해온 작가가 건축 같은 시스템의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하며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많은 전구를 미술관 전력 시스템과 연결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인지하지 못하는 구조를 시각화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광대한, 숨겨진 네트워크의 파편’을 직면하고 그 안을 거닐며 경험하게 한다.
아트리움을 지나 들어간 여러 개의 전시실에는 설치와 조각뿐 아니라 텍스트, 사운드, 사진, 비디오, 필름, 아카이브 자료 등이 홀트의 예술적 궤적을 조망한다. 다양한 작품들은 작가의 자취를 좇으며 그가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주위를 둘러싼 환경과 자연에 대한 감각 방식 및 인간의 인식 형성 과정을 면밀하게 탐구했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1971년 시작된 ‘위치 탐사 장치 (Locator)’ 연작은 구멍을 통해 한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시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간에 따라 빛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했던 작가의 ‘보는 도구’이자 조각 작품으로 전시된다.
또 다른 빛의 향연을 펼치는 작품 ‘빛의 거울 (Mirrors of Light)’(1973-74)은 직경 24cm 크기의 거울 10개를 사선으로 설치하고 반대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거울에 반사된 원형의 빛을 다시 다른 벽면에 사선으로 그려낸다. 빛과 거울로 전시실을 가득 채운 이 작품은 관객이 공간을 거닐며 거울에 반사되는 빛과 스스로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위치와 방향에 따른 변화를 인식하면서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의 자각을 자각하게 한다’. 전시는 마지막으로 낸시 홀트의 대표작이자 대자연 속에서 장소특정적으로 작업한 ‘태양 터널 (Sun Tunnel)’(1973-76)의 완성을 위한 여정, 즉 이 작품을 실현하기 위해 작가가 수행한 다양한 천문학적 연구 및 조사의 기록을 드로잉, 사진, 필름 등으로 보여준다. 유타 주에 있는 미국 최대 사막 그레이트 베이슨(Great Basin)에 설치되었던 ‘태양 터널’은 4개의 대형 콘크리트 원기둥을 하지와 동지 같은 지점 동안 태양이 뜨고 지는 각도에 원기둥이 일치하도록 십자 형태로 설계 및 설치한 작품이다. 이 같은 홀트의 압도적 규모의 대지미술 작품은 자연을 사유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일련의 탐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감각과 지각, 인식을 통찰하려는 다소 인간중심적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홀트가 쓴 글에서 제목을 가져왔듯이 《낸시 홀트: 빛의 원》은 주기적인 자연과 태양계의 원형적 움직임,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순환을 상징하는 원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작가가 자연과 세계를 사유한 방법을 나타내며 그의 예술적 여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자연으로 나아가 자연을 작품으로 만든 대지미술을 미술관이란 제도 공간 안에서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갑갑한 마음은 전시라는 체계의 한계를 실감하게 했고, 아트리움의 스펙터클과 대조되는 전시실의 단조로운 전시 구성 역시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베를린 구국립미술관(Alte Nationalgalerie)에서는 자연을 숭고하게 그리며 사유한 명작들로 널리 알려진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거장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전시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무한한 풍경 (Casper David Friedrich: Infinite Landscape)》을 선보인다. 작가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이 전시는 함부르크 쿤스트할레에서의 개최에 이어 베를린으로 순회하며 봄이 시작되는 4월 19일 열리고, 드로잉과 회화 110여 점을 망라하며 전 생애에 걸친 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오늘날 독일 동북부 지역에 포함되지만 당시 스웨덴이었던 그리프스발트의 유복한 가정에서 10명의 자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고독함과 인간사를 초월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그가 7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형제와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으며 일찍이 삶의 유한함과 덧없음, 인간의 무력함을 깨달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시에 보이는 그의 대표작이자 작가로서 도약점이 된 작품 ‘바닷가의 수도사’(1808-1810)는 바닷가를 걷고 있는 수도사의 모습을 작게 그려 넣은 그림이다. 이 작품 앞에 서면 광대하게 펼쳐진 바다의 풍경에 압도되며 자연과 절대자 앞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임을 상기하고 자연스레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프리드리히는 풍경화를 그리지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보다 스튜디오 안에서 캔버스 위에 구도를 잡고 채색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작가 의도가 두드러진 화면 구도임을 알 수 있고, 이러한 대조에서 강조된 작가의 감정은 더욱 강렬하게 전달된다. 또한 그의 작품 속 뒷모습으로 그려지는 인물을 통해 관객은 스스로를 대입해 회화 속 자연과 세계를 가까이 호흡하게 된다. 더불어 프리드리히의 회화에는 당시 유행했던 독일 낭만주의 사상이 나타난다. 낭만주의는 합리주의 혹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반대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 사조로서 따듯한 인간 감정이 우세했던 중세를 이상적으로 여기며 중세로의 복귀를 추구했던 흐름이다. 자연을 사유하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프리드리히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지하고 수용하는 낭만주의를 추구했음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프리드리히가 중년 이후 한층 완숙해진 예술을 보일 즈음, 낭만주의는 쇠퇴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주의가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그의 작품은 예전과 같은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작가로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며 작업을 했고, 전시에서는 작가 후기의 예술적 시도 및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으로 ‘얼음 바다’(1823/24)를 볼 수 있다. 이는 영국 장교 윌리엄 에드워드(William Edward)의 극지방 항해기에서 영감을 받고 그린 작품으로 에드워드 장교의 범선은 항해 중 빙해에 10개월 동안 갇혀 있다 돌아왔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대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의 존재와 실패를 차갑고 황량한 얼음과 가라 앉은 범선으로 표현하였고,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사실적인 묘사와 다채로운 색의 사용을 보인다. 당대 낭만주의 거장으로 평가 받았지만 프리드리히의 작업은 그의 사후 나치 정권의 히틀러가 가장 좋아했던 화가였다는 이유로 한동안 외면 받았다. 그리고 197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주목 받고 현재에 이르러 수많은 동시대 예술가에 영향을 미친 작가로 재조명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의 감정과 정서의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그가 자주 사용한 드라마틱한 구도나 인물의 뒷모습을 주로 그리는 표현(Rückenfiguren)이 관객의 시점을 동화시키는데 용이하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를 뛰어 넘어 프리드리히가 재조명되는 이유는 자연을 사유하며 인간의 유한함과 무력함을 수용했던 그의 태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겸허한 자세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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