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주사기, 붕대, 마취제 사들고 병원 가야 수술받을 수 있다니"

"북한 보위부가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전화 직접 걸어왔다"
"北 주민에 무조건 탈북 권하지는 않는다"…김성은 목사 인터뷰

{※ 편집자 주= 김성은 갈렙 선교회 목사의 이번 인터뷰 기사는 세 번째입니다. 분량이 많아 세 차례로 나눠 송고키로 했고, 첫 번째 기사는 3월 21일 [삶] "내 아내 알몸 화상채팅, 생활비 벌려고 시켰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두번째 기사는 3월29일 [삶] "난 좀전에 먹었으니 이건 아들 먹어"…결국 굶어죽은 엄마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
"북한에서 서민은 수술받으려면 마취제, 주사기, 거즈, 붕대 등을 사 들고 병원에 들어가야 합니다.

병원 안에는 의료용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
탈북민을 지원하는 김성은 목사는 연합뉴스와 지난달 13일과 14일 대면 인터뷰, 이달 9일 전화 인터뷰 등 세 차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일반 환자가 장마당이나 밀수를 통해 의료용품을 직접 구하지 못하면 수술받기 어렵다"면서 "북한은 무상 의료체계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또 "한국의 국정원 격인 북한의 보위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8년 전 북한 인민군 중대장의 도움으로 북한 내의 고아들을 탈북시킨 적이 있는데, 이 중대장이 중국으로 도주했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북한 보위부로부터 협박성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는 "전화는 군대를 이용해 공화국 어린이를 납치해가고 있는데,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2000년에 중국 투먼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갔다가 탈북민 구조활동에 나섰고, 지금까지 구출해서 한국에 데려온 탈북민이 1천여명에 이른다.

그가 인도한 실제 탈출의 현장 모습은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 담겼다.

이 영화는 지난해 1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올해 2월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도 다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작년 10월에는 미국의 600여곳 영화관에서 개봉됐다.

올 초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15편의 예비 후보에 포함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 영화를 계기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 코넬 대학교 등에서 강연자로 초청받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지난 1월31일 개봉됐고, 4월 11일 재개봉됐다.
-- 탈북민 지원활동을 하면서 협박을 받은 적은 없나.

▲ 우리나라의 국정원 격인 북한 보위부로부터 전화가 온 적이 있다.

8년 전 박근혜 정부 말기였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북한 보위부라고 하면서 "공화국 어린이들을 군대를 통해 납치해 가는데, 가만두지 않겠다.

기다려라."라고 했다.

40대 또는 50대의 목소리였다.

-- 보위부의 전화인지 어떻게 확신하나.

▲ 내가 북한에 있는 고아들을 남한으로 데려오는데, 북한 인민군 중대장이 도와줬다.

그는 북한당국에 포착되자 중국 연길까지 도망 왔다.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공안에 체포되고 말았다.

우리의 조언을 무시하고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중국 공안에 붙잡혔고, 북한으로 끌려가서는 바로 총살됐다.

그의 휴대 전화에 내 전화번호가 있으니 북한 보위부가 나에게 전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2개월 정도 후에는 한국 당국의 직원이 나를 찾아왔다.

나를 테러할 공작원들이 북한에서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 때였는데, 당국이 계속 나를 지켜야 했다.

-- 그 이후에는 위험한 일이 없었나.

▲ 문재인 정부 초기에 조선족이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찾아왔다.

북한 고위급 인사가 숙청당했는데, 그 아들을 남한으로 탈출시켜주면 500만달러를 선교 헌금으로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험 삼아 한국에 와있는 탈북민의 북한 내 가족을 찾아달라며 주소를 건네줬다.

불과 2시간 만에 그 사람의 사진이 나에게 왔다.

보위부가 아니라면 이렇게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조선족은 나한테 중국에 함께 들어가 돈도 받고 고위급 아들의 탈북을 돕자고 했다.

나는 중국에 직접 들어갈 수 없고, 중국 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그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나는 그 사람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판단한다.

나를 중국으로 유인해 납치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 그때 당국에 신고했나.

▲ 경찰과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

답변은 황당했다.

물증이 없는데, 어떻게 조사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 현재 본인에 대한 당국의 경호는 잘 되고 있나.

▲ 박근혜 정부 때는 주기적으로 순찰차가 우리 교회를 돌았고,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안전을 체크하는 연락도 자주 왔다.

당시 정부는 심적으로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문재인 정부 때는 그런 경호가 없어졌다.

국정원 담당 직원한테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아예 전화번호가 바뀌었던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내가 위험하니 돕겠다고 했는데, 국정원의 국내 업무 파트가 사라져서 경호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 현재 대공 수사는 누가 하나.

▲ 법이 바뀌어서 국정원은 대공 수사를 못 한다.

경찰이 해야 하는데, 경찰은 첩보력이 약하다.
-- 본인은 탈북민 지원활동을 하다 몸을 심하게 다쳤다고 하던데.
▲ 탈북민들에게 헌 옷을 전달하려다 다쳤다.

늘리면 늘어나는 3단 이민 가방이 있다.

여기에 헌 옷을 채우면 40∼60㎏ 정도 나간다.

이런 가방 두 개를 어깨에 가로질러 메고, 또 다른 하나는 머리에 이고 두만강 변 얼음판 위를 가다 미끄러지고 말았다.

목이 완전히 꺾였고, 바로 한국에 돌아와 9시간에 걸쳐 수술받았다.

그때 이후 목에는 6개의 철심(쇠못)이 박혀 있다.

-- 북한 주민에게 헌 옷을 제공한 이유는.
▲ 탈북자가 중국에서 잡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옷이다.

탈북 과정에서 옷이 찢어지거나 더러워지게 되는데, 이런 옷을 입고 있으면 의심을 받는다.

헌 옷을 확보하기 위해 군산의 에이스중앙교회 이형렬 목사의 사모님과 여전도회가 아파트 등에서 헌 옷을 수거해서는 깨끗하게 빨고 다리미로 다렸다.

-- 본인은 밀림에서도 다친 적이 많다고 하던데.
▲ 라오스에서는 탈북민과 밀림을 헤쳐 가다 절벽에서 떨어졌다.

그때 담낭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목 통증 때문에 항상 다량의 진통제를 갖고 다니는데, 일단 이 약으로 버티고 한국에 돌아와 수술받았다.

밀림에서 허리를 다쳐서 3차례 시술과 수술을 받기도 했다.

라오스 밀림 지역의 바닥은 황토여서 비가 오면 매우 미끄럽다.

-- 아들이 7살 때 숨졌는데, 구체적인 경위는.
▲ 아들은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뇌 병변 장애가 있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고, 먹을 수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2009년에 탈북민 구조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한 목사님을 만나러 갔다 왔는데, 그 잠깐 사이에 아이는 토한 것이 기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숨지고 말았다.

이 아이에 대한 집착이 컸던 아내는 40일간 먹지도 않았다.

한동안 삶의 의지가 꺾여 있었다.

-- 아이가 태어날 때 겪은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배상받았나.

▲ 배상금으로 병원으로부터 6천700만원을 받았는데, 이는 모두 탈북자 구출에 사용했다.
-- 탈북민은 일반적으로 중국을 횡단해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태국으로 들어가는데, 태국이 가장 안전한가.

▲ 그렇다.

태국에는 유엔 고등난민판무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관이 난민을 받아주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의 서류에 대해 심사한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여서 정치적으로는 북한과 친하다.

베트남이나 라오스에서 바로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베트남에서는 1년, 라오스에서는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자기 나라로 오지 말라는 메시지다.

태국은 21일밖에 안 걸린다.

-- 베트남에 억류돼 있던 탈북민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사건도 있었는데.
▲ 2019년 11월에 탈북민 11명이 베트남에 억류돼 있었다.

베트남 당국이 이들을 북한으로 보내려 하자 여성 2명이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북한에 들어가면 어차피 죽을 건데, 차라리 베트남에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친분이 있었던 영국 BBC 방송에 부탁해 보도되도록 했다.

BBC는 지속적으로 베트남 정부를 압박했고 미국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VOA도 도움을 줬다.

결국 미국 대사관이 움직여서 탈북민들이 풀려날 수 있었다.

-- 북한 주민들은 탈북할 때 독극물을 갖고 나온다고 하던데.
▲ 대부분의 탈북민이 극단적 선택에 사용할 두 가지를 갖고 출발한다.

시안화칼륨(청산가리)과 면도날이다.

상황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가족 5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일이 있었다.
-- 탈북 유형 중 연고 형이 많다고 하던데.
▲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 북한에 있는 나머지 가족을 데려오는 것을 연고 형 탈북이라고 한다.

이런 유형의 비중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치료 목적으로 한국에 오는 경우도 있다.

북한에서는 무상 의료라고 하지만 일반 주민이 수술받으려면 주사기, 마취제, 붕대, 거즈 등 의료품을 구입해서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

병원 내에 의료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 나와 있었던 탈북민이 암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중국 의료수준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한국에 와서 수술받기도 한다.

-- 북한에서 수술받으려는 사람이 마취제 같은 것을 어디서 구하나.

▲ 돈이 있으면 구할 수 있다.

장마당에서 살 수 있고, 중국 밀수를 통해 구할 수도 있다.

-- 탈북 비용이 많이 뛰었다고 하는데.
▲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코로나 직전에는 2천만원이었다가 그 직후에는 5천만원으로 뛰었다.

지금은 한국까지 오는 비용이 1억원으로 급상승했다.

북한 주민들은 100만원을 구하기도 어렵다.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작년 7월부터 반(反) 간첩법이 시행되고 있다.

탈북민을 돕는 브로커는 자칫하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그 법률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이동하는 것도 위험해졌다.

중국 내 열차나 버스에는 안면 인식 장치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탈북 비용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 이제는 탈북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봐야 하나.

▲ 탈북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내 브로커에게 "중국으로 그냥 보내달라. 나를 팔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의 유흥업소에 넘겨달라는 것이 아니다.

농촌의 나이 많은 사람에게라도 시집을 가겠으니 일단 북한에서 중국으로 데려가달라는 것이다.

-- 남한에서 돈을 벌어서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주는 루트도 이전보다 위험해졌나.

▲ 북한 내 송금 브로커가 있다.

내륙 지역까지 찾아가 지정된 사람에게 돈을 전달하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이다.

그 수수료가 원래는 30%였는데, 지금은 60%로 뛰었다.

-- 현재 북한에서 탈북 지원 요청이 계속 들어오나.

▲ 지금은 거의 없다.

다만, 이미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이 남한행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오는 경우는 있다.

탈북 비용이 급상승해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한다.

얼마 전에 3명 데려왔는데, 과거에는 그 돈으로는 30명은 데려올 수 있었다.
--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문화적 충격을 많이 받을 듯한데.
▲ 아내가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합기도장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따라가자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를 합한다고 하니 기도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했다.

합기도의 뜻을 오해한 것이었다.

탈북민은 언어도 과격하다.

아내는 한국에서 대학에 다녔는데, 등교하면서 "여보, 나 학습을 혁명적으로 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탈북민들은 혁명적이라는 말을 이렇게 자주 쓴다.

어떤 탈북민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상사가 '에이포'를 갖다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자존심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퇴사한 것이다.

내가 에이포(A4)가 뭔지를 이야기해주자 그는 "아니, 네모난 종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들었을 텐데, 왜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느냐"면서 화를 냈다.

-- 탈북민 중에는 북한에서 불법적인 일에 관여했던 사람도 있나.

▲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다.

인신매매, 밀수, 마약 등과 관련한 일을 하다 적발돼 남한으로 도망 온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일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 2019년 11월 동해안으로 탈북한 북한 선원 2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어부 2명은 16명을 죽인 흉악범이어서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 맞다는 게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는데, 그 정도의 흉악범이라면 남한이 받아들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 아닌가.

▲ 어떤 탈북자라고 하더라도 한국 땅을 밟으면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들이 잘못했다면 한국 법원의 판결을 받아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더욱이 그들이 흉악범이라는 근거는 없다.

2명이 16명을 죽였다는데, 그런 살인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그 많은 사람이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살인이 진행되려면 혈흔을 비롯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고깃배를 타봐서 아는데, 그 정도의 작은 배에서 그런 대규모 살인은 불가능하다.

그들 2명은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자발적인 의사를 표시했다고 당시 정부는 밝혔지만, 사진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그들 2명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보는가.

▲ 북한 내 탈북 브로커라고 생각한다.

북한 내부에는 남한의 탈북 지원 단체들과 연결된 브로커들이 있다.

탈북 일을 도와주고는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

북한 내 브로커들은 그 선원 2명이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탈북단체들에 알려왔다.

즉, 흉악범이 아닌 탈북 브로커라는 것이다.

-- 탈북 브로커가 왜 동해안을 통해 남한으로 왔다고 생각하나.

▲ 브로커 행위가 북한 보위부에 포착되는 바람에 동해안으로 도주한 것으로 본다.

동해안은 중국 경비선이 있는 서해안보다는 탈북이 쉽다.

상황에 따라서는 일본으로 갈 수도 있다.

-- 북송된 그 선원 2명은 어떻게 됐을까.

▲ 당연히 공개 총살됐을 것이다.
-- 남한에 온 탈북자가 다시 자발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 한 탈북자는 남한에서 살다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는 북한에서 남조선 사회가 잘못됐다는 강연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는 친구들 앞에서 말실수를 했다.

"남조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 못 나가는 이런 날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 좋겠는데"라고 했다.

얼마 후 보위부가 그를 불렀다.

보위부 직원은 "남조선에서 얼마나 잘 살았길래, 비 오는 날 삼겹살에다 소주를 먹니?"라면서 추궁했다.

남조선을 동경했다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것이 확실해 보였다.

결국 그는 다시 북한에서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 북한에 들어갔다 왔으니 한국 현행법상 2년 정도 감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외에도 갈렙 선교회 교인으로 있다가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람이 2명 있다.

그들은 다시 한국으로 오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나에게 전해오고 있다.

-- 본인은 탈북민을 만나면 무조건 남한행을 권유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 탈북민들은 남한으로 가다가 체포될 수도 있다.

한국에 와서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북한에 있는 우리 엄마는 살아 있을까", "내 동생은 결핵에 걸렸는데 어떻게 됐을까"라면서 계속 걱정한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면 50∼60%를 브로커에게 뜯긴다.

나머지도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차라리 운반용 자전거, 미싱기 등을 북한 주민들에게 주면 그들이 그걸로 북한에서 밥벌이하면서 가족들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 남한행을 권유해도 거부하는 탈북민이 있나.

▲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민 중에는 남한행을 도와준다고 해도 북한에 가족이 있다면서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 남자와 살다가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다시 북한으로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 미국에서 일부 북한 옹위 세력이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를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미국 공영방송인 PBS가 올해 1월부터 이 영화를 미국 전역에 내보내고 있는데, 미국에 있는 일부 북한 옹호 세력이 영화에 문제를 제기했다.

PBS가 이 영화를 내보내기 전이었다.

그때가 아카데미상 후보작 평가 시기였다.

그들은 북한이 살기 어려워져서 주민들이 탈출하는 것인데, 그렇게 된 근본 원인에는 미국의 경제 제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영화에 담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공영방송으로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 이런 움직임이 결국 '비욘드 유토피아'가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나.

▲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측면도 있다고 본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영향이 됐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유력매체들은 비욘드 유토피아가 아카데미상 다큐 부문에서 유력한 최종 후보가 될 것으로 전망했었다.

-- 북한이 고난을 겪는 것에는 미국의 제재 영향도 있다는 그들의 논리는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 들의 논리는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난에 미국의 정책이 영향을 준 부분도 있겠지만, 미국이 그런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은 북한 정부가 제공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집중하느라 주민들을 굶긴 측면도 있다.

북한이 미사일 1∼2회 발사하는 데 투입하는 돈으로 엄청난 규모의 쌀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가 없다면 북한 주민의 고통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근본적으로는 북한 체제의 내재적 모순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 본인은 4월에 미국 대학 등의 초청으로 출국한다고 하던데.
▲ 하버드 대학을 시작으로 터프츠대학교, 코넬대학, 미국 최대의 기독교 대학 리버티 대학교를 방문한다.

비욘드 유토피아 영화 상영과 Q&A(질의응답)를 하게 된다.

이번 방문은 6주간 일정이다.

다양한 단체들이 영화와 탈북 사역 관련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를 초청해서 일정이 꽉 차 있다.

올해 9∼10월에 미국을 다시 방문해서 상영회 Q&A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 (취재지원 홍지희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