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재킷 입고 등장한 '여제' 소렌스탐…여성·주니어에 문 여는 오거스타 [여기는 마스터스!]

'골프여제' 소렌스탐, 그린재킷 입고 마스터스 현장 누벼
지난해 오거스타 내셔널GC 회원된 뒤 첫 공식활동

오거스타 내셔널, 1933년 개장 이후 여성회원 안받아
2012년 콘돌리자 라이스 등 시작으로 여성 늘려
여자아마추어대회, 드라이브칩앤퍼트 등으로 여성 지원
아니카 소렌스탐이 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열린 드라이브 칩 앤 퍼트에서 1등 수상자에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마스터스 미디어 허브 제공
제88회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막을 올린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GC.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명예 시타'를 기다리는 수천명의 패트런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발견됐다. 바로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 그는 클럽하우스 앞 커다란 참나무 아래에서 오거스타 내셔널GC의 회원을 상징하는 그린재킷을 입고 다른 회원들과 환담을 나눴다. 잭 니클라우스, 톰 왓슨, 게리 플레이어가 명예시타를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이번 대회는 소렌스탐이 오거스타 내셔널GC의 회원으로서 맞이한 첫번째 마스터스다. 그가 이 골프장의 회원이 되었다는 소식은 지난해 10월 처음 알려졌다. 물론 골프장도, 소렌스탐 측도 이 사실을 확인해주지는 않았다. 오거스타 내셔널GC의 회원 명단은 철저히 비밀이 부쳐지기 때문이다. 마스터스 대회 기간 그린재킷을 입고 있는 모습을 통해 확인한 여성 회원은 현재 7명이다. 마스터스 대회를 주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GC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클럽으로 꼽힌다. 300명 안팎의 회원으로 유지되며, 기존 회원이 사망하거나 탈퇴해 빈 자리가 생겨야 신규 회원을 뽑는다. 기존 회원이 추천한 인물을 철저히 검증해 회원자격을 부여한다. 마스터스 대회 기간동안 그린 재킷을 입고 있는 있는 이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한 이유다.
7일(현지시간) 마스터스 대회 사전행사인 드라이브 칩 앤 퍼트에서 한 참가자가 칩샷을 하고 있다. /마스터스 미디어 허브 제공
오거스타 내셔널GC는 '금녀(禁女)의 구역'으로도 유명했다. 1933년 문을 연 이후 80년간 여성, 흑인을 받지 않았다. 1990년 론 타운센드 '개닛TV' 회장이 첫번째 흑인회원이 되었지만 여성에 대한 벽은 여전히 높았다. 2002년 여성단체들은 오거스타 내셔널GC의 금녀 정책에 항의해 마스터스 대회 기간에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12년, 오거스타 내셔널GC는 드디어 여성에게 그린재킷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마스터스의 오랜 후원자인 IBM의 최고경영책임자(CEO)에게 주어지는 자동회원 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거스타는 IBM, AT&T 등 오랜 후원사 CEO에서 회원자격을 부여해왔다. 이들은 마스터스 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외빈 환영식에 그린재킷을 입고 참석한다. 그런데 2012년 IBM의 CEO로 버지니아 로메티가 취임하면서 이 제도에 혼란이 생겼다. 여성인 로메티에게는 결국 그린재킷이 주어지지 않았고, 환영식에 홀로 그린재킷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참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물론,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금녀 정책에 대해 개선을 권고했다. 결국 오거스타 내셔널GC는 여성 회원을 전격 받아들였다. 곤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사업가 달라 무어가 1호 여성 회원이 됐고, 전 IBM CEO 지니 로메티, 전 미국골프협회 다이애나 머피 도 그린재킷을 입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회원은 총 7명이다. 프레드 리들리 오거스타 내셔널GC 회장은 지난해 마스터스 대회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여성회원을 늘리고 있다"며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클럽으로 만들고 우리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마스터스 미디어 허브
소렌스탐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자골퍼다. 메이저 대회 10승을 포함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72승을 거뒀다. 여자골퍼로는 유일하게 '꿈의 스코어'라 불리는 59타를 친 기록도 갖고 있다.

여기에 오거스타내셔널GC 최초의 여성 프로골퍼 출신 회원이라는 이력도 추가하게 됐다. 소렌스탐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열린 주니어 대상 이벤트 대회 '드라이버 칩 앤 퍼트'에 그린재킷을 입고 시상자로 나서기도 했다. 오거스타 내셔널GC는 여성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2014년 세계 각지의 여성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위민스 아마추어 대회를 시작했다. 올해로 10년째, 이 대회 출신들은 각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3승,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에서 27승을 거뒀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인 로즈 장(미국)은 두달 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전에서 우승하며 미국 여자골프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슈퍼스타 방신실과 루키 임지유도 이 대회를 거쳤다.
사진=마스터스 미디어 허브
또다른 사전 이벤트 '드라이브 칩 앤 퍼트' 역시 여성 주니어들이 오거스타 내셔널 GC와 골프를 경험할 수 있는 무대다. 리들리 회장은 "주니어와 아마추어를 위한 이벤트를 통해 다음 세대와 세계 각지의 아마추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매해 봄, 남자 골프 최고의 대회인 마스터스를 주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GC이지만 아직 여성 투어 대회를 개최하는데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리들리 회장은 여성투어 개최에 대한 질문에 "추가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적"이라며 우회적으로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오거스타 내셔널GC이 있는 미국 조지아주는 뜨거운 여름 날씨로 악명이 높다. 때문이 오거스타 내셔널GC는 마스터스 기간 최고의 잔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5월 셋째주부터 8월까지 골프장을 폐쇄한다. 리들리 회장은 "우리는 마스터스의 신비로움과 마법같은 순간을 존중해야 한다"며 "또다른 골프대회를 개최하려면 오랫동안,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