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대표 교수에 "착취" 독설…의료계 한목소리 못내고 내홍만

'통일된 목소리' 요원한데 전공의-교수 갈등 불거져…강온·세대 갈등 심화
의사들, '원점 재논의' 반복…의협·의대교수들 "재논의가 0명은 아냐" 여지도
의대교수 사직서 효력발생 '성큼'…"정부, 수습 능력 없는것 아니냐" 목소리
4·10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장기간 이어진 의정 갈등을 이제는 봉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강경파와 온건파, 대한의사협회(의협)의 현 비대위와 차기 회장 사이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전공의 대표가 의대교수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새로운 갈등이 불거졌다.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도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그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낸 사직서의 효력 발생 시점이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은 더 극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 전공의 대표 "의대교수는 착취 관리자"…의사·의대교수 "분노·불쾌"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SNS에 의대 교수들을 "착취사슬 관리자"라고 표현한 글을 올렸다.

박 위원장은 '1만2천명에 휘둘리는 나라, 전공의를 괴물로 키웠다' 제목의 한겨레신문 기사를 링크하며 "전공의들에게 전대미문의 힘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병원"이라고 기사 본문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수련병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에는 "수련병원 교수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들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는 내용이 담겼다.장기간 의료 공백 상황의 해결을 위해 의료계가 결속을 도모하는 상황에서 의대 교수들과 병원을 비판한 것이다.

이 글은 의대 교수들을 비롯한 의료계에 퍼지며 곧바로 논란이 됐고, 의대 교수들을 비롯한 의사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자신의 SNS에 "오늘 하루 종일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이 올린 포스팅 때문에 시끄러웠다"며 "워딩의(이) 부적절하다는 주장과 교수들을 비롯한 일부 의사들이 분노하거나 불쾌해하는 것에 대해 저도 동의한다"고 지적했다.강홍제 원광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자기 지지 세력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실망이다"며 "사제지간이 아닌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라면 더이상 전공의를 교수들이 지지할 필요가 없다"고 적었다.

한 의대교수는 "뜻을 함께하고자 사직서도 냈고 어쩔 수 없이 당직서고 환자와 정부 양측에서 욕먹으면서도 축소진료하고 전공의 후원하는 방안에 찬성표 던지고 있는데 이런 글을 보니 기분이 참 안 좋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박 위원장의 SNS 글과 이로 인한 교수들의 비판은 가뜩이나 사분오열된 의사들 사이의 갈등이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의료계에 통일된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온건파-강경파로 갈리고, 의협 비상대책위-차기 의협 회장, 박 위원장-차기 의협 회장 사이 비판이 오가며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의료계 강경파-온건파 갈등에 기약 없는 의정대화
의료계 내에서는 '2천명 증원 전면백지화'를 포기하고 어느 정도 증원을 용인하는 쪽으로 여지를 둬야 한다는 온건파와 정부가 증원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화는 없다는 강경파가 맞서고 있다.

같은 의협 내에서도 현재 의협을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음달 취임하는 임현택 차기 회장은 강경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협 비대위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게 반드시 '0명'은 아니라고 여지를 보여 주목된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일각에서 '의협이 일부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는 말에 "원점 재논의나 백지화를 0명 증원으로 이해하면 그렇게 오해할 수 있다"며 "원점 재논의와 백지화는 2천명이 무리하게 증원돼 진행되고 있다는 데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백지화가 '0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정작 2달 가까이 의료 현장을 떠나 있는 전공의들이 의협 비대위와 전의교협의 생각에 동의하는지는 미지수다.

대전협은 2월 20일 성명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천명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 등 7가지 요구안을 발표한 이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공의 내부에서는 증원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들이 입을 닫은 가운데, 차기 의협 회장인 임 당선인 역시 의협 비대위의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새다.

임 당선인은 오히려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쪽이고, 현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대신 비대위원장을 수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일한 의사 법정단체인 의협에서 비대위와 차기 회장 당선인의 내분이 일다 보니 통일된 안을 만들거나, 정부와의 소통 창구를 단일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공의 내부에서도 대전협과는 별개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직 전공의 1천325명은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각종 피해를 봤다며 오는 15일 박 차관을 직권 남용 및 권리 행사 방해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다.

원고 측 대표자는 이번 고소가 대전협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 의대교수들 "4월25일 대규모 사직" 압박…현장 의사들 "시간 얼마 없다"
의료계가 좀처럼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현장에 남은 의료진들은 더 이상 남아있는 시간이 없다며 파국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교수 A씨는 "총선 패배 후 정부가 의료개혁의 동력도 잃었고, 병원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 유급 사태를 수습할 능력도 없는 게 아니냐"며 "고집인지 무능인지 알 수 없는 정부의 행태 탓에 현장만 아수라장"이라고 질타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 B씨 역시 "이제는 정말 현장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소모적인 논쟁을 이제는 멈춰야 할 때"라고 토로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정부에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면서 오는 25일 의대교수들의 대규모 사직이 예상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의비는 지난 12일 "병원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와 4월 25일로 예정된 대규모 사직은 현재의 의료붕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5일은 의대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지 1달이 되는 날이다.

민법은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 사직 의사를 밝힌 뒤 1개월이 지나면 사직의 효력이 생긴다고 본다.

대학 측이 교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있지만 25일이면 사직서를 제출한지 1달이 지난 만큼 이때부터 실제로 사직 상태가 돼 병원을 떠나는 의대 교수들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의대들 중에서는 교수들이 쓴 사직서를 교수 비대위가 모아 가지고 있으면서 제출하지 않고 있는 사례도 많고, 의대 학장이 가지고 있으면서 대학 본부에 전달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대 교수 중에서는 이런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약정이 있는 근로계약'을 한 경우도 있다.

다만 실제 실제로 사직이 효력을 발생하는 사례가 무더기로 나타난다면 안 그래도 의사 부족에 힘들어하고 있는 대형병원의 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전의비는 최창민 위원장(울산대 의과대학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무협상, 무대책이 계속된다면 환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