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시간에 압도되지 않는 '장기적 탐욕'

황인호 바운드포(Bound4)대표
지난달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 2024’에 참석했다. 지난해 바운드포가 엔비디아 인셉션 프로그램 참여 스타트업으로 선정되면서다. 기조연설이 진행된 1만8500명 규모 실내경기장은 만석이었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아키텍처 ‘블랙웰’을 소개했다. 발표 전 그를 맞이하는 환호와 박수가 가득했다. “이곳은 콘서트가 아니라 개발자 콘퍼런스”라는 너스레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때 ‘30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엔비디아 설립 후 젠슨 황 CEO가 입지전적인 삶을 살며 오늘의 위치를 다지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짧지 않은 기간, 나였다면 버텨낼 수 있었을지 스스로 되물었다.시간이 길고 짧음은 ‘주관’의 영역이다. 체감시간은 ‘상대적’이다. 이를 분명하게 느낀 건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과 계획 및 전망을 이야기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테면 필자는 ‘단기(short term)’는 1년, ‘장기(long term)’는 5년 단위로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 벤처투자자와 엔지니어 다수는 단기 5년, 장기 10년 기준으로 말했다. 관점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외부요인이다. 자본 시장 규모, 투자 생태계, 성장 가능성을 비롯한 ‘환경’이다. 둘째는 내부요인이다. 심리적 안정감, 자신감, 회복 탄력성 등 ‘개인’ 상태다.

‘장기적 탐욕(Long-Term Greedy)’이란 문구를 직장 생활 시절 이름표 옆에 붙였다. 1970년대 구스타프 레비 골드만삭스 CEO가 처음 사용한 단어다. 그는 ‘단기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장기적’인 안목을 강조했다. 낯선 과업이 주어질 때면 ‘언젠간 이 과업이 성장에 도움 될 것’이란 믿음이 필요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어 이 문장을 읽고 힘을 얻었다. 그러고는 일을 건넨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식은 그저 탐욕일 뿐이다. 1995년 젠슨 황이 대만 TSMC에 편지를 보내 GPU 생산을 부탁했다. 이때 64세이던 모리스 창 TSMC 회장이 32세 젠슨 황에게 직접 전화로 승낙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 두 기업은 수십 년간 밸류체인에서 서로가 본질적으로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삶을 구성하는 부차적인 요소는 모두 소거하고 ‘고유성’을 찾을 때, 복잡다단한 현실이 명료해지고 안정될 수 있다. 시간에 압도되지 말고, 시간을 압도하자. 누구든 장기적인 탐욕을 꿈꿀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