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치킨은 문명화된 음식? [김동욱의 역사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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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잇따라 치킨 가격을 인상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굽네는 배달 수수료와 인건비, 임대료 상승을 이유로 대표 메뉴인 '고추바사삭' 등 9개 치킨 제품 가격을 일제히 1900원씩 인상했다. 굽네가 가격을 올린 것은 2022년 이후 2년 만이다. 치킨·버거 브랜드인 파파이스도 2년여 만에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4월에는 교촌치킨이, 12월에는 bhc가 주요 제품 가격을 3000원 올렸다. 앞서 BBQ는 2022년에 주요 제품 가격을 2000원 인상했다.한때 '서민 음식'으로 불렸던 치킨에 부담스런 가격이 책정된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각종 닭고기 상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닭이 부위별로 분리돼 요리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식탁 위에 오르는 광경이 적지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다리나 날개, 가슴살 식으로 분리된 형태의 닭고기가 친숙하게 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래서 별도로 의식하기 힘든 이 같은 현상을 두고 20세기 초 저명한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손쉽게 표현하자면 닭의 원래 형태를 알기 힘든 오늘날 ‘치킨’이 닭이 양반다리 하고 앉아있는 삼계탕 보다 보다 ‘문명화된’ 음식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던 것이다.엘리아스의 저서인 <문명화 과정>에 따르면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고기 요리를 대하는 서구인들의 태도도 큰 변화를 겪었다.
그 흔적은 서구사회의 각종 예의범절의 변화와 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서양 상류층 식탁에선 요리가 된 동물의 전신이 그대로 올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나 송아지처럼 동물의 전신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오르기 힘든 경우는 그 동물을 대표하는 커다란 부위가 식탁에 올랐다.당연히 생선은 통째로 요리돼 식탁에 전시됐고, 일부 조류는 깃털까지 포함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짐없이 통구이 돼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토끼나 양도 한 마리 전체가, 송아지는 4등분해서 한 토막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이 밖에 사슴 등 사냥한 짐승고기나 꼬치에 끼운 돼지 바비큐 같은 경우도 당연히 한 마리 전체가 온전히 식탁에 전시됐다.
오늘날 사람들이라면 식탁 위에서 송아지나 돼지를 반토막 내던가 깃털로 장식된 꿩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광경이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엘리아스의 평이지만 중세 시대 사람들의 감정은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이처럼 대부분의 짐승은 원형을 유지했다가 잘 잘리는 게 중요했다. 17세기 그리고 18세기까지도 유럽에서 출간된 각종 예법서에선 고기를 잘 자르는 것이 교양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지적되곤 했다.에라스뮈스는 1530년 “고기를 자르는 정확한 방법을 어릴 적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쿠르탱은 1672년 “언제나 가장 큰 몫은 남겨놓고 가장 작은 조각을 가져와야 하며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는 음식에 손대지 마라”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네 바로 앞에 놓인 음식을 달라고 할 때 그들에게 예의 있고 올바른 방식으로 고기를 자를 수 있도록 고기 자르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1650년 독일에서 출판된 <고기 자르는 법에 관한 입문서>에선 “군주의 궁정에서 고기를 잘라 나눠주는 임무는 비천한 일이 아니라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적어도 17세기 프랑스 상류층에선 식탁 위에서 고기를 자르는 일이 사냥, 펜싱이나 춤과 같이 사교적인 남성에게 필수적인 능력으로 꼽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풍습이 서서히 사라진 것은 가족 단위가 축소되면서 가계 규모가 작아진 것과 함께 도살과 같은 작업이 일반 일상생활에서 분리돼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엘리아스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도살된 동물을 식탁 위에서 직접 자르는 행위를 봐야 식욕을 느끼는 수준에서 고기 요리는 도살된 동물과 연관된다는 기억을 되도록 피하고자 하는 수준으로 문명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고기 요리는 대부분 조리 기술을 통해 원래 동물 형태가 변형되기 때문에 식사할 때 그 요리의 기원이 연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문명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서 ‘동물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기 자르는 행위를 점차 불쾌하다고 여기게 되면서 이 같은 불쾌한 행위는 사회생활이 무대 뒤로 옮겨졌다. 상점이나 부엌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고기의 부위별 분해 행위가 처리된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 따르면 중국이 서구사회보다 훨씬 먼저 문명화됐다. 문명화 과정은 중국에서 고기가 사회의 무대 뒤에서 잘리고 썰어져 식탁 위에선 나이프의 사용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정도까지 진전됐다는 것이다. 탕수육이나 난젠완쯔(난자완스) 같은 원재료의 형태에서 극단적으로 멀어진 고기 요리가 등장했을 뿐 아니라 식탁에서 고기를 자르던 칼(나이프)도 완전히 사라지고 젓가락만으로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서양 학자인 엘리아스의 분석이다.
이런 엘리아스의 주장에 따르자면 닭의 원래 형상을 떠올리기 어려운 '순살 치킨'은 가장 '문명화된' 형태의 요리가 되는 셈이다.총선이 끝나자마자 잇따라 오르는 외식물가를 보면서 장황하지만 음식·요리의 발전사를 잠시 돌아 봤다. '인간은 그가 먹는 것'(Der Mensch ist was er isst)이기에….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
지난해 4월에는 교촌치킨이, 12월에는 bhc가 주요 제품 가격을 3000원 올렸다. 앞서 BBQ는 2022년에 주요 제품 가격을 2000원 인상했다.한때 '서민 음식'으로 불렸던 치킨에 부담스런 가격이 책정된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각종 닭고기 상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닭이 부위별로 분리돼 요리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식탁 위에 오르는 광경이 적지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다리나 날개, 가슴살 식으로 분리된 형태의 닭고기가 친숙하게 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래서 별도로 의식하기 힘든 이 같은 현상을 두고 20세기 초 저명한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손쉽게 표현하자면 닭의 원래 형태를 알기 힘든 오늘날 ‘치킨’이 닭이 양반다리 하고 앉아있는 삼계탕 보다 보다 ‘문명화된’ 음식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던 것이다.엘리아스의 저서인 <문명화 과정>에 따르면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고기 요리를 대하는 서구인들의 태도도 큰 변화를 겪었다.
그 흔적은 서구사회의 각종 예의범절의 변화와 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서양 상류층 식탁에선 요리가 된 동물의 전신이 그대로 올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나 송아지처럼 동물의 전신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오르기 힘든 경우는 그 동물을 대표하는 커다란 부위가 식탁에 올랐다.당연히 생선은 통째로 요리돼 식탁에 전시됐고, 일부 조류는 깃털까지 포함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짐없이 통구이 돼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토끼나 양도 한 마리 전체가, 송아지는 4등분해서 한 토막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이 밖에 사슴 등 사냥한 짐승고기나 꼬치에 끼운 돼지 바비큐 같은 경우도 당연히 한 마리 전체가 온전히 식탁에 전시됐다.
오늘날 사람들이라면 식탁 위에서 송아지나 돼지를 반토막 내던가 깃털로 장식된 꿩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광경이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엘리아스의 평이지만 중세 시대 사람들의 감정은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이처럼 대부분의 짐승은 원형을 유지했다가 잘 잘리는 게 중요했다. 17세기 그리고 18세기까지도 유럽에서 출간된 각종 예법서에선 고기를 잘 자르는 것이 교양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지적되곤 했다.에라스뮈스는 1530년 “고기를 자르는 정확한 방법을 어릴 적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쿠르탱은 1672년 “언제나 가장 큰 몫은 남겨놓고 가장 작은 조각을 가져와야 하며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는 음식에 손대지 마라”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네 바로 앞에 놓인 음식을 달라고 할 때 그들에게 예의 있고 올바른 방식으로 고기를 자를 수 있도록 고기 자르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1650년 독일에서 출판된 <고기 자르는 법에 관한 입문서>에선 “군주의 궁정에서 고기를 잘라 나눠주는 임무는 비천한 일이 아니라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적어도 17세기 프랑스 상류층에선 식탁 위에서 고기를 자르는 일이 사냥, 펜싱이나 춤과 같이 사교적인 남성에게 필수적인 능력으로 꼽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풍습이 서서히 사라진 것은 가족 단위가 축소되면서 가계 규모가 작아진 것과 함께 도살과 같은 작업이 일반 일상생활에서 분리돼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엘리아스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도살된 동물을 식탁 위에서 직접 자르는 행위를 봐야 식욕을 느끼는 수준에서 고기 요리는 도살된 동물과 연관된다는 기억을 되도록 피하고자 하는 수준으로 문명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고기 요리는 대부분 조리 기술을 통해 원래 동물 형태가 변형되기 때문에 식사할 때 그 요리의 기원이 연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문명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서 ‘동물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기 자르는 행위를 점차 불쾌하다고 여기게 되면서 이 같은 불쾌한 행위는 사회생활이 무대 뒤로 옮겨졌다. 상점이나 부엌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고기의 부위별 분해 행위가 처리된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 따르면 중국이 서구사회보다 훨씬 먼저 문명화됐다. 문명화 과정은 중국에서 고기가 사회의 무대 뒤에서 잘리고 썰어져 식탁 위에선 나이프의 사용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정도까지 진전됐다는 것이다. 탕수육이나 난젠완쯔(난자완스) 같은 원재료의 형태에서 극단적으로 멀어진 고기 요리가 등장했을 뿐 아니라 식탁에서 고기를 자르던 칼(나이프)도 완전히 사라지고 젓가락만으로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서양 학자인 엘리아스의 분석이다.
이런 엘리아스의 주장에 따르자면 닭의 원래 형상을 떠올리기 어려운 '순살 치킨'은 가장 '문명화된' 형태의 요리가 되는 셈이다.총선이 끝나자마자 잇따라 오르는 외식물가를 보면서 장황하지만 음식·요리의 발전사를 잠시 돌아 봤다. '인간은 그가 먹는 것'(Der Mensch ist was er isst)이기에….
김동욱 오피니언부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