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 뛰게 하는 서울 남산의 전시… "운동화 신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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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방문하실 땐 꼭 운동화를 신어 주세요'
한 전시의 초대장 마지막에 적힌 문구다. 체육관도, 운동장도 아닌 전시장에 올 때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희안한 부탁이다. 남산공원 바로 앞까지 올라야 겨우 보이는 건물. 그 마당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부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전시장 입구까지 가는 길을 '러닝 트랙'처럼 꾸몄다. '드레스코드가 운동화'인데다 마라톤 트랙을 따라 입장해야 하는 전시의 정체는 서울 회현동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달리기 :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다. '20세기 스포츠 영웅'으로 불리는 에밀 자토펙의 어록에서 따 온 제목처럼, 이 전시는 '인간의 달리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림, 설치작, 영상부터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까지 '러닝'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을 맞이하는 건 작품이 아닌 러닝머신 두 대다. 전시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쉬지 않고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한 층 위엔 관객이 직접 러닝머신을 뛸 수 있는 체험형 작품도 놓였다. 서울을 비롯해 모로코, 호주, 핀란드 등 6개 국가의 대표적 러닝 코스를 화면 위로 보며 달릴 수 있다. 편한 신발을 신고 온 관객들만 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 드레스코드가 운동화가 된 이유다.
전시장 한켠, 넓은 흰 벽 앞엔 달리는 모습을 한 해골이 걸려 있다. 인체의 뼈마디엔 마치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도가 남긴 듯한 설명들이 붙어 있다. 이 달리는 해골의 정체는 이형구의 '호모 푸각스'다. 몸에 대한 집요한 상상과 탐구를 하는 작가 이형구가 이번 전시를 위해 내놓은 신작이다. 그는 인류가 '잘 달리기 위해' 수십만 년에 걸쳐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상상하며 이 조각을 만들었다. 그가 작품의 부분마다 남긴 메모를 읽어내려가다보면 관객은 멀지 않은 미래에 '진화한 우사인볼트'가 동네 공원을 평범히 뛸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달리기를 춤으로 표현한 작품도 등장했다. 전시장 구석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검은 공간이 관객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실제 사람 크기만한 화면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화면이 동시에 켜지면 그 속에는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뛴다'는 행위를 각자 달리 해석해 창작한 춤을 보여준다. 춤을 추는 안무가들 사이로는 어떤 음악이 흐른다. 2016년 스티브 라이히가 발표한 곡 '러너'가 그것이다.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출발선에서 발을 뗀 러너가 결승선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노래로 표현했다. 출발 지점인 1악장은 빠른 속도로 곡이 전개되고, 페이스를 찾는 2악장과 3악장에서는 잔잔한 선율이 흐른다. 결승선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마지막 악장에선 다시 곡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윗층으로 올라서면 88개의 골판지 상자가 쌓여 하나의 장벽을 만들고 있다. 지문의 작품 '88개의 DC 모터, 코튼 볼, 골판지 상자'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88개의 골판지 상자에 모터를 달아놓은 공을 연결했다. 공은 골판지에 부딪히며 툭탁거리는 소리와 진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부딪힘이 마라톤 출발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나가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신체만 있다면 누구나 운동선수다' 전시장의 층을 올라갈 때마다 러닝에 관련한 동기부여 문구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손기정, 엘리우드 킵초케 등 세계를 평정한 마라톤 선수들의 여정과 일기도 소개한다. 모든 전시를 본 후 다시 밖으로 나가며 보는 러닝 트랙은 들어올 때 그것과 달리 보인다. 마치 신고 온 운동화의 끈을 다시 고쳐 묶고 뛰어들어 나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한편으로는 특별한 주제 의식이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시가 상업적 전시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것이다. 류준열 배우의 사진 작업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나이키 런과 협업한 달리기 체험이 작품들 사이에 갑자기 등장하도록 만든 맥락 없는 전시 구성도 아쉽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한 전시의 초대장 마지막에 적힌 문구다. 체육관도, 운동장도 아닌 전시장에 올 때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희안한 부탁이다. 남산공원 바로 앞까지 올라야 겨우 보이는 건물. 그 마당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부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전시장 입구까지 가는 길을 '러닝 트랙'처럼 꾸몄다. '드레스코드가 운동화'인데다 마라톤 트랙을 따라 입장해야 하는 전시의 정체는 서울 회현동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달리기 :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다. '20세기 스포츠 영웅'으로 불리는 에밀 자토펙의 어록에서 따 온 제목처럼, 이 전시는 '인간의 달리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림, 설치작, 영상부터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까지 '러닝'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을 맞이하는 건 작품이 아닌 러닝머신 두 대다. 전시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쉬지 않고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한 층 위엔 관객이 직접 러닝머신을 뛸 수 있는 체험형 작품도 놓였다. 서울을 비롯해 모로코, 호주, 핀란드 등 6개 국가의 대표적 러닝 코스를 화면 위로 보며 달릴 수 있다. 편한 신발을 신고 온 관객들만 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 드레스코드가 운동화가 된 이유다.
전시장 한켠, 넓은 흰 벽 앞엔 달리는 모습을 한 해골이 걸려 있다. 인체의 뼈마디엔 마치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도가 남긴 듯한 설명들이 붙어 있다. 이 달리는 해골의 정체는 이형구의 '호모 푸각스'다. 몸에 대한 집요한 상상과 탐구를 하는 작가 이형구가 이번 전시를 위해 내놓은 신작이다. 그는 인류가 '잘 달리기 위해' 수십만 년에 걸쳐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상상하며 이 조각을 만들었다. 그가 작품의 부분마다 남긴 메모를 읽어내려가다보면 관객은 멀지 않은 미래에 '진화한 우사인볼트'가 동네 공원을 평범히 뛸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달리기를 춤으로 표현한 작품도 등장했다. 전시장 구석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검은 공간이 관객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실제 사람 크기만한 화면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화면이 동시에 켜지면 그 속에는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뛴다'는 행위를 각자 달리 해석해 창작한 춤을 보여준다. 춤을 추는 안무가들 사이로는 어떤 음악이 흐른다. 2016년 스티브 라이히가 발표한 곡 '러너'가 그것이다.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출발선에서 발을 뗀 러너가 결승선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노래로 표현했다. 출발 지점인 1악장은 빠른 속도로 곡이 전개되고, 페이스를 찾는 2악장과 3악장에서는 잔잔한 선율이 흐른다. 결승선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마지막 악장에선 다시 곡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윗층으로 올라서면 88개의 골판지 상자가 쌓여 하나의 장벽을 만들고 있다. 지문의 작품 '88개의 DC 모터, 코튼 볼, 골판지 상자'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88개의 골판지 상자에 모터를 달아놓은 공을 연결했다. 공은 골판지에 부딪히며 툭탁거리는 소리와 진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부딪힘이 마라톤 출발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나가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신체만 있다면 누구나 운동선수다' 전시장의 층을 올라갈 때마다 러닝에 관련한 동기부여 문구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손기정, 엘리우드 킵초케 등 세계를 평정한 마라톤 선수들의 여정과 일기도 소개한다. 모든 전시를 본 후 다시 밖으로 나가며 보는 러닝 트랙은 들어올 때 그것과 달리 보인다. 마치 신고 온 운동화의 끈을 다시 고쳐 묶고 뛰어들어 나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한편으로는 특별한 주제 의식이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시가 상업적 전시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것이다. 류준열 배우의 사진 작업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나이키 런과 협업한 달리기 체험이 작품들 사이에 갑자기 등장하도록 만든 맥락 없는 전시 구성도 아쉽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