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현황 파악도 못하면서 "PF 시장 문제없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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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급변하는데 '반쪽 통계'뿐“아무래도 숫자가 정확하지 않아 공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위기 대응·모니터링 체계 갖춰야
이유정 건설부동산부 기자
올해 1분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현황을 묻는 말에 정부 관계자가 내놓은 답변이다. “PF 시장이 실종됐다” “어디를 찾아가도 대출받을 수 없다”는 시행사의 주장에 이른바 ‘팩트 체크’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증권사 직원이 알음알음 만들어 나돌아다니는 비공식 자료가 가장 공신력 있다고 얘기할 정도다.부동산 PF 시장과 관련된 공식적인 숫자는 금융감독원이 분기별로 집계하는 대출 잔액과 연체율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 숫자는 3개월이 지나야 집계가 완료된다. 몇 주 새로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뒷북 통계’다.
이 숫자가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대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새마을금고 등 금융당국이 관리하지 않는 기관의 실적은 취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9월 기준 금융당국이 밝힌 PF 대출 잔액은 134조원이었지만,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총 202조6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새마을금고와 증권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을 포함한 숫자다. 김정주 건산연 연구위원은 “부동산펀드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 포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시장에서 불거지는 ‘4월 위기설’에 “시장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회의적인 반응이다. PF 시장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도, 정확한 통계도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최근 1년간 정부가 PF 관련 대책을 10여 차례 쏟아냈는데 시장에서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총선 이후 ‘옥석 가리기’에 본격 나서기로 했지만, 시장에선 오히려 우려가 앞선다.PF 부실 사태는 시행사와 금융사의 탐욕, 공사비와 금리 인상 같은 외부 환경 변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복잡하게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시장이 이 지경이 되도록 늑장 대응한 정부의 직무 유기도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PF 문제가 불거졌을 때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감원이 갖고 있던 내부적인 숫자가 다 달랐다”며 “부처 간 역할 분담은커녕 부처 내 담당 부서를 찾는 데조차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부동산 시장은 경기 사이클이 존재한다. 이번 위기를 잘 넘긴다고 해도 비슷한 문제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결정 구조와 시스템,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의 “괜찮다”는 말에 ‘이번만 잘 넘겨보자’는 의중이 담겨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