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패 없는 AI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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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평석 엑셈 대표이사“아주 작은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한 사람이 전문가다.” 원자 구조 이해와 양자역학 성립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닐스 보어의 말이다. 보어와 동시대를 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전문가의 성공을 보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 뒤에 가려진 숱한 도전과 실패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실패를 잘 피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영화를 보는 방식조차 바꾸었다. 이나다 도요시의 책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에는 영화를 빠른 배속으로 보거나 중간중간 넘기며 보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정답’을 빨리 찾고 싶어 한다. 그런 세태가 영화나 드라마를 10분 이내로 요약해주는 유튜브 영상의 인기로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요약본을 보고 마음에 들어야 영화 시청을 결정한다. 크게 흥행하기 어려운 오컬트 장르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도 유튜브 요약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과 이를 통해 성공하는 방법의 터득이 중요함을 점점 잊고 있다.실패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스티브 잡스의 인생이 잘 보여준다. 대학을 중퇴했고, 창업한 회사 애플에서도 쫓겨났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강렬한 의지 덕분에 실패는 기회가 됐고 그것을 발판으로 큰 성공을 이뤘다. 자신이 해고된 사실을 인생 최고의 선물로 회고하는 것을 보면 잡스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남들이라면 주저앉았을 상황을 극복해야 큰 길이 열린다. 실패 없이는 성공도 없다.
만능인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기업들은 성공의 날개를 달려고 노력한다. AI가 막강한 잠재력이 있고 현재도 복잡한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물이 시행착오 없이 나왔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AI도 사람과 똑같이 시행착오를 한다. 양질의 데이터, 인력, 인프라 등이 갖춰져야 AI의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결국 AI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은 인간의 몫인데 이것은 생각하지 않고 AI에 대한 기대치만 비현실적으로 높으면 실패가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다.
AI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실패한다. 인간은 그것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과 AI가 공존하며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가는 길이다. 사람이든 AI든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후에 성공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